"한 단계를 뛰어넘었다. 어려운 고비를 넘긴 것이다. 몇 주를 미루고 감정적으로 힘들어하던 것이었고, 어려운 작업을 해냈다."
하고 상담 선생님은 말해 주었고, 곧바로 이어 물었다.
"어떻게 미루지 않고 해낼 수 있었을까?"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여기서 하지 않으면 좌절감이 감당 안 될 정도로 너무나 클 테니까 했던 것 같아요."
상담 선생님은, 이번 일련의 과정을 볼 필요가 있고, 왜 미루는지도 봐야 한다고 말했다.
내 인생에서 미룬 것에 대한 선명한 기억은 대학원 때다. OO대(서울 소재 상위 대학) 면접을 두 번 만에 붙었다. 첫 번은 이론 질문에 대답을 전혀 하지 못해서 떨어졌고, 둘째 번은 학부 때 원어연극을 줄곧 했었는데 그때 암기했던 대사를 전부 외며 연기를 보이며 합격했다.
1학기 시작 전 방학에 희곡 스터디를 하는데, 나 자신이 실력이 부족하고 선배들이 쟁쟁해 보였다. 위축되었다. 대학원 입학해서 방학 스터디 때부터 공부하기가 싫어지고 재미가 없었다. ##대(지방대)서는 주목받던 사람이었는데, 실력 있는 학생들이 모여 있는 OO대에 와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부족하다 여겨지고 위축된 것이 컸을 수 있다는 얘기가 상담 때 오고 갔다.
"하지만, 대학원 때 미루던 것과 이번에 미루다가 해낸 것은 차이가 있다. 지금은 상담학 전공을 하며, 상담사가 되기 위한 과정이 어떻게 되며, 내가 현재 어디쯤 와 있는지를 알기 때문에 과거 때와는 다를 것이다" 하고 상담 선생님은 내게 말했다.
위축감을 이야기해서였을까? 곧이어 최근 교육받았던 '상담 시연 워크숍' 이야기가 나왔다.
상담 시연 워크숍에서 나는 상담자 역할을 했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다. 한 조가 되어 내담자 역할을 한 50대 여성분에게 위축되었고, 내담자의 기에 압도되어 그분의 감정을 쫓아가지 못했다. 윗사람에 대해 위축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시연 과정 중에 영향을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감정 반영을 하지 않았다. 질문만 툭툭 던졌다. 이유는 감정을 제대로 반영해 주지 못한다면 아예 하지 말자는 생각에서였다.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면 흐름을 끊게 되니깐 제대로 하지 못할 거면 아예 하지 말자는 생각에서였다.
"가설이지만, 내담자의 감정들이 나의 감정들과 클릭되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 같아. 아직 그 감정들을 보기 싫은 것인지, 보지 못하는 것인지 여러 이유로. 상담 시연 수업은 긴장되는 공간이야. 상담학과에서 교수님들, 학우들 등 피드백이 좋았는데, 상담 시연 수업에서도 좋은 피드백을 받고 싶고 인정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본인답지 못하게 감정 반영을 제대로 못해 준 것일 수 있어."
"감정 반영을 제대로 하지 못할 거면 아예 하지 않는다는 것도 완벽주의 성향과도 연관되고, 그래서 미루는 것과도 연결돼."
"그런데, 선생님. 상담 시연 워크숍에서의 시연은 부족했지만, 피드백을 나누는 과정에서 저의 부족한 점을 알 수 있어 좋았고, 기대 이상이었어요. 또한 소장님이 해 준 저에 대한 피드백도 좋았어요. '금방금방 받아들이네요', '잘 받아들이네요', '금방 늘겠어요' 등등. 그리고 월요일 상담사례연구 수업에서, 그리고 주말 상담에서, 이 모든 과정들이 통합되어 입체적으로 배움의 과정으로 저에게 들어오는 과정이 너무 좋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상담에 매료돼.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자기의 감정을 알아차림에 대한 욕구 충족 등 중독성에 빠지는 거거든."
"그런데, 윗사람에게 위축되는 것은 어떤 경우에 그런가? 시연 과정에서 내담자가 어떠했길래 압도되었어?"
"목소리가 크고 자기 이야기를 막 해댔고, 자기주장이 세 보이고, 강압적으로 들렸고, 상담자인 내가 내담자인 저분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지 못하면 drop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본인이 상담자인데 내담자를 맞춰 줄 생각을 했나? 왜? drop 할까 봐? 본인이 상담자로서 인정을 받지 못할까 봐? 누군가 내담자가 만약에 “이것도 못해!”라고 하면 상담을 못 하겠네?"
"못할 것 같아요."
"혹시 본인에게 “이것도 못해요?” 하면서 “이것 좀 해봐, 잘 좀 해봐”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을까?"
"나에게 그런 사람은 없었던 것 같고,...... 나 자신이 나를 비난한 것 같아요."
나 스스로 나에게 비난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나를 비난한 건 나 자신이었던 것 같았다.
"왜? 그게 내가 편하니깐!
남이 나를 비난하지 못하도록 내가 나를 비난한 거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어!"
언제부터 그랬을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은 여기서 이렇게 말했다.
"그것도 궁금하지만, 여기서 볼 것은 본인이 지금 여기까지 온 데 대한 장점이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고, 현재도 수술 두 번에, 이혼 중에, 회사에서는 대인관계 문제 중에, 상담 공부에, 수련 중에, 등등 어떤 사람은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한 일을 OO(화자)이는 현재 다 겪고 있으면서 공부까지 하고,...... 어려운 과정을 보내고 있어. 대단한 거야. 이 부분에 대해 정말 칭찬을 해 줘야 해."
"나에 대한 칭찬은 들을 때 기분은 좋지만, 와닿지가 않아요. 금방 잊게 돼요. 수업시간이나 상담, 워크숍 등에서의 피드백이나 통찰되는 부분은 실감 나게 즉각적으로 나에게 와닿는데, 이런 칭찬은 머리로는 오는데 나에게 착 달라붙는 느낌이 안 들어요."
"지금까지 부정적 피드백이 나의 옷이었고, 그것이 나에게 더 편한 상태여서 그래. 새로운 친구를 사귀어야 해. 긍정적인 정서와 긍정적인 피드백과 친해져야 하는데, 그것은 고치기가 오래 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