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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만월 May 09. 2024

선감사; 희망하고 확신하고픈 마음

5월 8일 19:01 강릉행 KTX 821 안에서

Part I.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은

KTX 타는 시간이다.

서울역에서 가면 50분

청량리에서 가면 30분

그래서 서울역이 더 좋다.

20분은 참 크다.

30분은 참 아쉽다.

커피 한 잔이 참 아쉬웠다.

커피 한 잔이 아쉽다는 걸 알까.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간은

KTX A와 D석이다.

B와 C석보다 더 안쪽이고

풍경이 보이는 창이 옆에 있어

아늑하면서도 답답하지 않다.

나에게는 스위스 기차 여행이다.

A석에 앉으면 B석에 누군가를 바랐고

D석에 앉으면 C석에 누군가를 바랐다.

옆으로 기대고 싶다는 걸 알까.


어떻게 출퇴근을 하세요? 동료가 물어본다.

KTX 타고 가는 동안 스트레스가 다 풀려요.

참 긍정적이다 한다.

나처럼 부정적인 사람도 없는데...


KTX가 있어 너무 다행이다.

차비를 계산 못 할 만큼 좋다.

대체할 수 있는 쉼을

KTX 만 한 걸 찾지 못했다.


예전에 시장 끄트머리에

원룸을 구한 적이 있다.

그때 경춘선 기차가 다녔는데

그 소리가 좋아서 계약했다.

다들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 소리가 좋았다.

아침에도 밤에도.


지금 지내는 서울집 바로 앞에

경춘선이 멈추면서 조성된 공원이 있다.

로수에 꽃과 나무, 조경을 잘해 놓았는데

맘껏 부릴 수 있는 그 여유가 좋아서 산책했다.

아침에 산책 나왔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어쩔 땐 밤이 되어서야 집에 들어갔다.

다들 이해하지 못했다.

나는 그 여유가 좋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6시 퇴근하여 방금 전

7시 1분 강릉행 KTX 821을 탔다.

벌써 상봉역이다. 아쉽다.

상봉역에서부터는 남은 20분이 참 빨리 지나간다.


내가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감사하다.

KTX 기차 삯을 결제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차창 밖으로 풍경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풍경을 배경 삼아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다.

양평역에서 내려 용문행 경의중앙선을 타고 가는 10여분 간 

아이를 곧 본다는 설렘 감사하고

용문역에서 차를 가지고 나와 기다리시며

딸의 택시비를 아껴주려는 어머니에게 감사하다.

아이와 매일 6분씩 대화를 나누며 꿈을 키워주시려는 새아버지에게 감사하고

나를 친딸처럼 여기시고 나를 돕고자 자신의 치부를 내보이신 것에 감사하다.

온갖 짜증을 다 받아주시는 친아버지에게 감사하고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아 주시는 에 감사하다.


KTX A와 D석은 나만의 공간이지만

나만의 것이 되기까지 나와 함께하고 있는 것들은 참 많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하지만 보려고만 하면 보이는 것들이다.


무엇인가를 누리는 시간 속에서

나와 같이 움직이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다.

무엇을 누릴 때는 감사가 먼저여야 하는 것 같다.

감사가 먼저여야 할 때는 무엇을 누리고 있을 때인 것 같다.


Part II.

예전에 선도문화진흥회에서

희망이 확신이 되게 하는 기술로 마음기지개를 제안하는

온라인 강연을 개최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마음을 여는 기지개는 감사함이라고 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 희망이 확신으로 변하는데

감사하는 마음은 새 기운을 불러오기 때문이란다.


특히 선감사(先感謝)를 제안하는데

선감사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하는 감사이고

조건 없는 감사란다.  

결과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희망하고 확신을 갖는 감사란다.


감사하자 감사하자 써대는 나의 글에는

희망하고 싶고 확신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

내가 없어질 걱정에 절망하며

파묻히는 두려움과 불안을 마주 않고 회피할래.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래.


그러는 것일지라도

'희망해도 돼. 그리고 확신해도 돼.'

주문을 외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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