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편해졌어요. 얼마 전 동료 A 씨와 이야기를 했어요. 동료 A 씨는 제 행동 하나하나에 서운한 감정으로 일희일비되고 감정이 업 앤 다운되는 것이 제게 보였고, 어느 날 오전에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동료 B 씨는 저를 오래 봐 왔고, 자기감정에 있어 안정감이 있는 사람이라서 덜 신경 쓰였지만, 동료 A 씨는 불안정해 보였어요.”
“두 사람을 통해 나의 단점이 보였고, 그 문제들을 직면해야 하니깐 두 사람을 보기 싫었고, 어려웠다. 오늘 오전에 내가 느낀 것에 대해 동료 A 씨에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 이야기하자고 제안을 했던 것이다” 하고 말했다.
내 이야기가 끝나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데 있어 팀장님과 상의하고 싶은 부분들이 많았는데,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자신이 혼자 일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에 너무 답답했다고 이야기했다.
충분히 이해가 되었고, 나도 회사 일로 상의가 필요할 때는 언제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다음 날부터 신기하게도 편해졌다. 여전히 나는 두 명과 점심을 같이 먹지 않고 나 혼자 먹었고, 업무 이야기 외엔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고, 업무 이야기도 꼭 필요한 이야기만 몇 마디 하고 난 게 전부라 사무실이 여전히 조용했지만, 그런데도 분위기는 편해졌다. 나의 상태를 동료 A 씨에게 얘기하고, 그 친구도 어느 부분 나의 상태를 알게 되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알게 되면서 서운한 감정들이 사라져서였을까. 그로 인해 동료 B 씨도 조금은 편한 느낌을 받는 것 같았다.
나의 문제를 직면하고, 나의 문제를 수용하려고 노력했고, 수용했다. 받아들였다.
받아들이는 과정은 힘들었다. 그러고 나니, 내 트리거 trigger가 사라졌다. 그 둘에게서 나를 건드리는 문제가 사라진 것이다.
상사에게 그간 나를 보살펴 주지 않았다는 억울함이 있었다.
나를 너무 힘들게 했던 직원이었는데, 엉뚱하고 이상한 행동들이 많아지면서 결국 퇴사하게 된 사람이다. 1년도 더 지났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그 사람 이야기를 꺼내면 눈물부터 났다. 예전에 한 번은 너무 힘들었는지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친한 분을 가림막 삼아 꺼이꺼이 대성통곡을 하며 운 적이 있었다. 전날 그 직원에게 붙잡혀 두 시간이 넘게 진 빠지도록 이야기를 주고받는 상황이었고, 그것이 너무 힘들었는지 다음 날이 되었는데도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의 상태였다.
“몸이 안 좋아서, 나 오늘 일을 못 할 거 같아요” 하고 그 직원에게 말하고 점심이 되기 전 짐을 챙겨 회사를 나왔다. 회사 앞 정거장에서 버스를 잡아 타고 바로 집으로 갔다. 이 순간만 생각하면 여전히 눈물이 났다.
‘이건 풀어야겠구나! 상사에게 말해야겠다. 나는 아직도 힘들다고. 당신이 관리자로서 방관자로 있었기 때문에 나는 너무 힘들었고, 지금도 그 상처가 아물지 않고 있다’라고.
그 상사는 감정적인 사람이 아니고, 내가 말을 하면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해 줄 것이다라는 믿음은 있어서 내가 다 지난 이야기라 하더라도 표현을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대상에게 표현하지 못하면, 엉뚱한 대상에게, 쌓아놓고 담아놨던 감정을 해소시키게 된다라고, 상담 공부를 하며, 심리검사를 받으며, 알게 된 내용을 여기에도 적용시켰다. 나는 상사, 곧 회사에 화가 났고, 억울하니, 대상인 회사, 곧 상사에게 이야기를 해 보자 하고 말이다.
“남자 직원과 힘들 때 말을 한 적이 있어?”
“있어요. 일 년에 한 번 정도. 그리고 그 직원이 크게 문제를 일으킨 경우에는 상사에게 메일을 보냈고, 사실 위주로 간결하게 썼어요. 감정을 배제하고.”
“상사와 면담을 할 때는 어떻게 얘기했어?”
“너무나 해프닝들이 많아, 막상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면, 상사가 자신도 그 직원으로 인해 힘들었던 사건들을 이야기해 주면서, 그리고 내가 갚아야 하는 아파트 대출금 등이 얼마인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상기시켜 주면서 면담을 해주었어요.”
“그 상사는 OO(필자)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 같아?”
“저도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저도 요즘 저에 대해 제가 누구인지 모르겠거든요. 저에 대해 잘 모를 것 같아요.”
당시 회사 카페테리아에서 대성통곡한 날, 그래서 내가 집에 가고 있는 중에 상사에게 전화가 왔었다. 정말 일도 아닌, 그동안 내가 알아서 잘 해오던 일, 그리고 정말 지시할 만한 사항도 아닌, 너무나 작은 일을 나에게 물었었다.
그때 드는 생각은 바로 ‘내가 울었다는 게 이분 귀에 들어갔구나. 걱정돼서 전화를 한 거구나’였다. 밖의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하는데도 어딘지 등의 질문은 일절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아무 내용도 없는 질문에 대해 평정심을 찾고 업무적으로 답변을 드리고는 끊었다.
상사는 내가 괜찮은지 상태 체크를 했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때 차라리 감정을 참지 말고, 속상한 걸 얘기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게요. 저는 상사가 나의 상태를 체크하려고 걱정이 돼서 전화했다는 걸 알면서도 왜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요?”
어떻게 보면, 상사는 내가 다른 여직원들에 비해 어려움을 호소하지 않고 묵묵히 견디면서, 참으면서 일을 하고, 어떤 면에서는 꼼꼼하게 유능하게 일을 하는 면도 있고 하니깐, 내 걱정을 덜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간극이 컸다. 표현을 하지 않으니 그 고통을 아무도 모르는데, ‘내가 말을 안 했어도, 그때 몇 번 얘기했으면 알아서 챙겨줘야 하는 거 아냐’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나를 지켜주지 않고, 극한의 상황으로 갈 때까지 견딘다. 견디고 견디며 나에게 명분을 만든다. '나는 할 만큼 했다!' 하고 말이다. 중간에 말을 해 버리면 해결이 되어 버려 나의 힘듦이 반감되기 때문에 남들에게도 그만큼 나의 힘듦을 수용받지 못한다는 생각에서였을까!
나의 힘듦을 온전히 수용받기 위해 나를 극한으로까지 버티었다. 하지만 나는 그가 퇴사한 지 일 년이 더 지난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눈물이 쏟아진다. 나를 해하면서까지 버틴 셈이다.
교육분석 마지막 소감을 나누면서, “저 상사에게 말 안 할래요. 다음에 혹시 힘든 일이 생기면 그때 그 힘든 문제에 대해서 표현하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