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감정의 부모이다

감정 알아차림<2022.5.18>

by 세만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이혼 과정은 그 자체로 힘들다.


서울 가정지방법원에 갔다. 첫 조정기일이었다. 12월 16일 이후 남편을 처음 보았다. 조정기일 시간은 OO시였고, 나는 한 시간 전에 도착했다. 3층에 올라가서 조정 위원실로 가기 위해 코너를 도는데 저 멀리 남편의 모습이 보였다. 갑자기 배가 아팠고 화장실로 도망가듯 피신했다. 배는 더 아파왔다.

'변호사님은 곧 오실 텐데, 나는 여기서 30분을 있어야 하나?' 생각했다.

그리고 55분 변호사님 전화 주실 때까지 정말 화장실에 그렇게 있었다.


조정 위원실 앞 배치된 의자들이 주욱 벽에 붙어 가로방향으로 늘어져 있었고, 남편은 벽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 의자에 변호사 분과 함께 앉아 있었다. 나 또한 그랬다. 서로 얼굴을 마주하지는 않았다. 조정 위원실에 입장했다. 출석 확인을 하고, 피고 쪽 변호사와 남편은 밖으로 나가 대기하게 하고, 원고인 나와 변호사님만 남게 했다.


조정 위원실 상담사는 물었다.

“결혼 의사를 1에서 100퍼센트로 했을 때 얼마나 되느냐?”

“100%입니다.”

“부부 상담을 하실 의향이 있느냐?”

“없습니다”.

“결혼 생활에 대해 뭐라고 말하고 싶은지, 이혼을 결정한 주된 사유가 무엇이었나요?”

“현대판 노예였습니다.”

“노예라는 것이 심리적인 것을 말할까요?”

“심리적인 것도 있고, 경제적인 것도 모두 포함입니다. 제가 버는 돈은 원금 이자 상환, 어린이집 비용 등등 생활비로 나가고, 부족한 돈은 남편에게 타 썼습니다. 가계부도 남편이 원할 때는 보여 줘야 했고, 원하지 않을 때는 보여 주지 않아도 됐습니다. 제가 카드비가 조금이라도 오버되면 남편에게 타써야 하는 돈이 늘어나 눈치가 보였습니다.

아이와 제가 같이 있을 때는 남편에게 화를 절대 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아이가 있을 때 일부러 화를 내거나 폭력적인 성향을 보였는데, 아이 때문에 참고 살았는데,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심정인지 의견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번 이혼 과정 중에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왜 당당하게 살지 못했는지. 3월에 수술을 두 번 했습니다. 3월 초 굳어 있는 맹장염이 발견되어 수술을 했고, 3월 말에 난소에 혹이 커서 난소 제거술을 했습니다. 다행히 난소 제거까지는 가지 않았고, 방광만 한 사이즈의 큰 혹을 무사히 제거했습니다. 저는 의식을 치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간을 보내며 생각이 정리되었습니다. 현재 저는 제 인생의 1막을 끝낸 것 같습니다. 이제 2막을 살고 싶습니다. 나 OOO으로서의 인생과 아이 엄마로서의 인생을 잘, 지금처럼 성실히 살고 싶습니다.”

이번엔 우리가 밖으로 나갔고, 피고 쪽 변호사와 남편이 들어갔다. 남편의 목소리가 조그맣게라도 들리면 싫었다. 긴장되고, 무슨 소리를 할까 싶었고, 나에게 피해 가는 이야기는 아닐지 싶어 신경이 쓰였다. 남편의 호소도 끝이 났고, 다시 나는 변호사님과 조정 위원실로 입실했다. 조정 위원실 상담사는 두 팀의 의견을 취합하여 원고와 피고 쪽 모두에게 전하며 그 내용을 재확인했고, 공유했다.


면접교섭권과 이혼 전 가양육비만 협의를 끝내고 조정은 결렬로 끝냈다.


상담 선생님은 판사에게 전달했고, 나와 남편, 양측 변호사는 조정실에서 판사와 마주 앉았다. 이혼 의사를 다시 물었고, 아까 나온 내용을 다시 확인했고, 결렬되었다는 문장을 듣고 끝났다.

조정이 안 되면 소송으로 간다. 재판. 조정기일이 처음에 OO월이었는데, 두 번이 미뤄져서 오늘이었다. 우리는 이혼 성사를 위해 남편의 귀책사유를 입증할 자료를 준비해야 한다. 카톡을 주고받은 내용도 좋다고 한다. 몇 달 전 귀책사유와 관련하여 톡 내용 부분을 캡처하여 카테고리별로 모아 변호사 사무실로 전달한 바 있었다. 당시 따로 녹음을 해 놓은 것도, 톡을 따로 저장해 놓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적잖이 당황했는데, 다행히 2년 치의 카톡은 다운받을 수 있었다. 시부모님께 힘들었던 마음을 말씀드린 문자도 다행히 있었다. 신혼 초 문자였다. 남편의 과격성이 드러났던 내용이어서 이 문자라도 확보된 것이 다행이라 여겨졌다.


보기 싫었던 당시의 남편과의 톡 내용을 다시 봐야만 했다. 관련 내용 캡처하고 정리해서 사무실에 넘겨드리는 것만도 2주일이 소요됐다. 정말 내 정신건강에 안 좋았다. 독하고 험한 내용의 톡을 일일이 다 보고 그때의 시간을 떠올려야 했기에 참으로 잔인했고 리얼했다.


'나의 결혼생활은 무참히 리얼했고 강압적이었으며 억압받아 왔구나!' 하고 생각했다. 우울감이 깊어졌던 것 같다.


그런데 조정이 결렬되면 그 작업을 또 해야 할 수 있다.

'아, 생각만 해도 머리통이 지끈지끈하다.'

이런 행위 자체가 시간이 아까웠다. 귀찮기도 했다.

그냥 도깨비방망이 뚝딱 하면 변호사 분들이 알아서 착착착 하고, 판사님이 땅땅땅 결론 내려서, 눈뜨고 일어나면 나는 자유인이다! 했음 싶었다.


진이 빠졌다. 건물로 들어간 지 한 시간 하고도 반 시간이 지나서야 밖으로 나와 양재역에서 전철을 탔다. 이 과정은 언제 끝날까?


폰에서 유튜브로 들어가서 타로카드를 보았다.

타로카드 리더가 4~5개의 카드를 각각 한 장씩 나란히 놓는다. 나는 나의 기운을 모아 그들이 배치해 놓은 카드 한 그룹을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올 하반기 운의 흐름, 올 하반기 나타날 좋은 일, 미래의 수호신이 지금 나에게 주는 메시지 등등 리더들이 들려주는 희망찬 미래의 예언을 들었다.

‘아, 나에겐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구나!’ 하며 안도감을 느꼈다.


나의 미래는, 이 이혼 과정을 두고도 한 치 앞도 가늠할 수가 없다. 나의 미래는 어떠할까? 지금처럼 그대로일까? 타로카드에서 말하듯 신나고 기쁘고 즐거운 일들이 내 눈앞에 펼쳐질까?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기만 했다. 한숨이 나왔다. “후우~!”


그런데 타로카드 리더는 확실하게 말해 준다.

"한 달 뒤는 좋은 일들이 일어난 대요. 그동안 신경 쓰이던 일들이 전부 정리되고, 금전운도 따라준다고 카드에서 보이네요."

이것만큼 내 미래를 확실하게 말해 주는 것이 없다. 그래서 나는 몇 달 동안 출퇴근길에서 버스에서 전철에서, 심지어 점심시간 혼자 밥 먹을 때도 유튜브로 무료 타로카드를 본다. 마약과도 같은 것일까? 현실에 대한 불안감을 타로 리딩으로 달래고 있는 듯 말이다.


리더들이 해 주는 말에 눈물 날 때도 많다. 위로받고 위안받고 지지받고. 이것처럼 나를 위로해 주는 것도 없다.


현재 내가 보는 ‘인생’이란 친구는 막막한 친구다. 막연하다. 애매모호하다. 불투명하다. 확신할 수 없다. 단언할 수도 없다. 그 친구가 파워가 워낙 세다. 결론이 어떻게 날지 모르겠는, 이 지긋지긋하리만큼 힘든 이혼 과정이 도대체 언제 끝날지 몰라 답답함이 느껴지는 것과 매칭이 되었다. 현재 내 인생에서의 변화와 이혼 과정에서의 변화가 속성이 같다고 느껴졌다.


평소 퇴근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집에 왔다. 세수만 겨우 하고 편안 복장의 차림으로 갈아입고는 방바닥에 누워 버렸다. “휴우~!”


모든 일에는 끝이 있게 마련인데, 그 끝이 과연 올까 싶은 생각에 조바심이 생긴다.

정말로 ‘쉼’이 있는 하루하루를 살아갔음 싶은데 그 쉼이 쉽게, 내게 오질 않는다.

닿을 듯 말 듯, 아니 말 듯, 말 듯, 말 듯, 나를 놀려댄다.

시지프스의 반복되는 고된 고문의 시험에 든 것과 같은 기분이다.


오늘 저녁 투사적 기법 수업 시간 다루었던 로샤 검사 사례 보고서상의 내담자는 부모님이 초등학교 때 이혼하고, 아버지는 그 뒤 따로 살다가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술집을 운영하고 밤에 와서는 집에서도 술을 마셨다. 내담자는 초등학교 시기에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


나의 현실과 비교가 되었다. 친정집에서 아이를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 보살펴 주고 계시고, 나는 상담 학도라고 최선을 다해 아이의 기분을 살피고 그때그때 아이의 감정을 다뤄준다. 돌 때부터 친정집에서 자랐기에 아이의 양육 환경 변화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야간에 상담 공부를 하고, 수업이 없는 날엔 친정집에 가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주말은 무조건 아이와 함께 있는다. 나는 오래 다닌 회사가 있고, 이혼 과정에 들어가는 시간들은 회사에서 다 내어준다.


나는 힘들다. 지친다. 피곤하다. 걱정된다.

그런데, 저 내담자의 어머니는 이혼을 하고 생계를 유지하고자 갖은 애를 썼다.

내담자는 외롭게 컸다.


나는 감사함을 강요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 강요하는 것마냥 '저 내담자의 어머니의 상황에 비하면 나는 정말 행복한 고민인 거지' 하고 순간적으로 생각이 들었다.


비교당하는 내담자의 어머니는 뭐가 되고, 힘들다고 호소하고 있는 내 마음은 뭐가 되나!


감정은 남의 상황과 비교해서 경중을 따지고 정도를 따지는 존재가 아니다. 그냥 감정 자체만으로 귀하게 여겨주어야 한다. 다른 것은 볼 필요도 없다. 나를 살게도 죽게도 느껴지게 하는 나의 감정이 힘들다고 하면, 감정의 주인인 나는, 내담자의 부모님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내 감정의 부모이다. 부모에게 상처받고 큰 어른들이 얼마나 힘듦을 호소하고 있는가!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상담사는 그 힘들다는 호소를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들의 힘든 감정을 어떤 이에게도 보살핌을 받지 못해 상담실로 온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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