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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만월 Jul 19. 2022

쓰레기통

수필<2013.4.22>

  예전 어느 겨울날이었다.

  그날은 바람이 너무 세차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오늘 날씨처럼 나도 참 휘청휘청거리는구나!’ 하는 생각에 왠지 마음이 안 좋았다.


  요즘 들어 안 좋은 일들이 겹쳐 인생사가 참 피곤하구나, 괴로워하고 있던 터였다. 나의 어린 시절 차곡차곡 쌓아두고 담아두었던 많은 문제들이 어른이 되어서 폭발했구나, 하니 왠지 서글퍼졌다. 2년 전부터 상담실 문을 두드리며, 오랫동안 마음속 깊이 묵혀 두었던 나의 묵은 감정들을 들춰내다 보니 나 스스로에게 느껴지는 심각함이 더해지는 것 같았다.


  ‘바람아, 바람아, 넌 잘도 부는구나! 아무것도 두려워 않고 네 갈 길을 가는 네가 난 참 부럽구나.’


  그때 먼발치서 바람에 대굴대굴 굴러다니는 쓰레기통이 하나 보였다. 쓰레기통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내 인생은 저 쓰레기통만도 못한 걸까?’ 하는 생각에 내가 한심하기까지 해 보였다.

 

  하지만 바람을 피하려고 우연히 옆으로 시선을 돌리니, 그 옆에 굳게 서 있는 다른 쓰레기통 하나가 더 보였다. 그 쓰레기통은 쓰레기들로 꽉 차 있었다. 먹다 남은 음료수 캔, 우유 곽, 테이크아웃 플라스틱 커피 용기, 마구 구겨진 쓰레기 뭉텅이 등등 쓰레기통 밖으로 비집고 나와 있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람에 데굴거리는 저 쓰레기통에 쓰레기가 가득 차 있었다면, 힘없이 바람에 날리며 굴러댔을까?’      

  

  ‘아, 이거구나!’ 마치 누군가가 나를 응원해 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쓰레기가 분명 지저분한 것일지라도 그와 같은 쓰레기가 우리 안에 가득 채워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분명 우리를 세우는 토대가 되어 줄 수 있을 테니. 


  그동안 나는 내 안에 있던 ‘쓰레기’를 단지 지저분한 것이라고만 여겼지, 어떠한 의미 부여도 할 줄 모르고 지냈다.


  ‘이 쓰레기가 없었으면 난 정말 정처 없이 바람 부는 대로 데굴데굴, 저 빈 쓰레기통처럼 굴러다닐 수밖에 없었겠다.’


  찰나에 든 우연한 생각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나를 짓누르고 있던 우울한 생각들, 고단한 생각들은 서서히 물러갔다.

  

  나에게 부족한 점이 보이면,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노력할 뿐이다. 그 부족함을 나 자신의 부정적인 면모로 해석하지 말자. 나의 쓰레기는 내게 거름이 되어 줄 것이라고 부단히 믿자.


  나의 부족함으로 인해 바람에 데굴데굴 대는 쓰레기통을 볼 수 있었고, 그 옆에 일절 요동 않고 굳게 서 있던 쓰레기통의 존재 또한 인식할 수 있었다. 나의 부족함, 나의 힘들었던 시간들은, 나의 삶을 더욱 견고히 하며 나의 길을 더욱 넓게 터주었다.      


  주눅 들 필요 없다! 우리의 인생을 살아 내면, 우리의 '인생 꽃'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무럭무럭 피어날 것이다. 우직한 쓰레기통이 자기 자리에서 담담히 사람들의 쓰레기를 담아내고 있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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