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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만월 Aug 05. 2022

위로는 여유에서 비롯되었다

감정 알아차림<2022.8.5>


얼마 전 브런치에 올렸던 '칼 로저스'에 대한 나의 깨달음은 어디로 갔을까?



며칠 전 추가 대출을 알아보기 위해 은행에 갔다. 전날 지참 서류를 고객센터 전화로 알아보았다. 신분증, 주민등록초본, 주민등록등본, 등기권리증, 등기사항전부증명서, 전입세대 열람확인서, 인감증명서 2통, 건강보험자격 득실확인서, 2개년 소득금액증명원 등을 안내받았다. 주민센터에도 가고, 홈텍스에 들어가고, 국민건강보험공단에도 들어가고, 대법원 인터넷 등기소에도 들어가고 필요한 서류를 모두 구비했다. DSR은 이미 40퍼센트를 넘었기 때문에 담보대출이든 신용대출이든 내가 받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래서 안내받은 것이 본 은행의 제2금융권의 대출이었다. 애초 희망 대출금에서 1/3가를 받았다. 매월 이자는 7퍼센트 대가 넘었다. 중도상환이자 지출금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했다.


은행 대출을 알아보러 간 이유는, 이혼 재판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 퇴사일보다 앞당기고 싶다는 마음에서 금전적인 문제의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현재 남편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는 이상 나의 DSR 비율은 40 밑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오롯이 나의 거래로 대출을 받아 원금 이자를 계속 갚고 있는 나의 상황에서 이혼이 결론 나지 않을 때까지 나는 빚만 쌓이고 있다.


제2금융권에서 대출금이 내 계좌로 송금되었다. 이 돈으로 올 하반기는 버틸 수 있을 만큼은 되었다. 하지만 이 돈으로 지금 당장 퇴사를 하기에는 매달 나갈 돈이 많다. 그리고 그만큼 이자도 많이 나간다.


이혼, 퇴사, 금전 등 참 빡빡하고, 은행에 추가 대출을 알아보다가 상황을 설명하다가 내 입으로 이혼 중에 있어 몇 개월 후면 상황이 좋아진다. 지금 몇 개월만 금전이 좀 해결되면 되는 건데, 어떻게 안 되겠느냐 하며 주저리주저리 창구 직원에게 떠들어댔다. 소용없었다. 당연한 건데, 왜 그 앞에서 안 해도 될 말을 꺼냈는지.......


창고 직원은 서류 등을 처리하다가, "큰 결정을 하셨네요. 저는 아이가 둘인데, 얼마 전 남편과 정말 큰 일들이 있었는데, 정말 어려운 생각까지 갔었어요" 하고 말해 주었다. "네, 맞아요. 어려운 생각이에요. 어려운 과정이네요" 하고 나는 응했다.


한 시간 가량의 업무가 끝났고, 창구 바로 맞은편 소파에 털썩 앉았다. 매월 나가야 하는 이자가 얼마든지 간에 어쨌든 대출금은 받았다. 그래도 지금 급여와 대출금을 더하면 올해는 문제없을 거다. 하지만, 더 이른 퇴사는 불안정하다. '위험'을 무릅쓰고 나의 '감'으로 올해 하반기, 나의 미래를 '용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밀고 나가야 하는지를 그 소파에서 계속 고민했다. 


연차를 냈다. 오전 변호사 사무실에 들렀다가 바로 사무실에 복귀하려 했으나, 은행 업무가 길어지면서, 아니 은행 업무 중에 하루의 나의 순간이 폭삭 주저앉았다. 점심 전에 복귀할 수 있었으나 연차를 냈다. '갑작스럽게 연차를 내서 죄송합니다' 하고 회사에 연락을 드렸다.


'아, 오늘 상담사례 배분 심사 미팅이 있었지. 이것도 다음번으로 미루자' 하고 상담 연구소에 전화를 걸었다. 그동안 개인상담을 개인적으로 구해서 하고 있었고, 사이사이 워크숍도 들었고, 심리검사 및 개인상담사례 슈퍼비전도 받고 있고 하니, 웬만하면 편하게 오세요 하고 데스크 직원분이 말씀해 주셨다.

"네. 그럼 원래 약속대로 오후에 가겠습니다" 하고 끊었다.


은행을 나와 다시 집으로 갔다. 누웠다가 눈을 떠보니 상담 연구소 약속 한 시간 전이었다. 부랴부랴 짐을 챙겨 다행히 늦지 않게 갔다. 지난번처럼 소장님 책상 바로 앞에 두 개의 간이의자가 놓였고, 나와 다른 분이 앉았다. 그동안 무엇을 공부했고 사례를 받기 위해 준비를 했는지 확인받는 자리였다. 그리고 상담 시연을 해 보였다. 내가 먼저 상담사 역할을 했고, 다른 분이 내담자 역할을 했다. 시연이 끝나고 내담자 역할을 한 분은 잠시 나가 있었고, 소장님은 나에 대한 상담 시연에 대한 피드백 등을 해주었다.


"선생님은 아우라가 있어요. 달라요, 포스가. 상담 잘할 거예요. 기대가 돼요." 지난번과 같은 피드백을 또 해주었다. 오전에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며 사정사정하던 나의 현실이 오버랩되었다. 내가 지금 같은 시공간에 있는 게 맞나? 하는 기분이었다. 오전은 내가 빨리 지나치고 싶은 과거이고, 지금은 내가 빨리 맞이하고 싶은 미래인 것 같은, 그리고 내 존재 자체는 나의 현 상황에 놓여 있는, 그래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다 따로 노는 것 같은 따로국밥이었다.


내담자 역할을 했던 분이 이번엔 상담사 역할이 되었다. "오늘 어떤 일로 오셨어요?" 하고 물었다.

"사실, 오늘 제게 일이 있었어요. 퇴사를 좀 더 일찍 하기 위해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을 다녀왔어요. 지참해야 할 서류들을 이리저리 알아보고......, 그래서 좀 지치는 것 같아요. 퇴사하면서 회사 직원들도 다 정리해 버리고 싶거든요."

"그들에게 어떤 마음이 드시는 거세요?"

"'어디, 나 없이 잘해봐라' 하는 마음도 들고, 묵묵히 일했는데, 대우받지 못한 기분도 들고, 아래 직원들 챙기는 것도 이제 피곤하고요, 예전 힘든 직원하고 오랜 시간 버텨 왔고, 상담일 하기 위해 현실적인 직장을 버티면서 다녀왔고."

"지금 이야기하면서 어떤 감정이 제일 드세요?"

"대접받지 못한 저 자신에 대한 안쓰러움이요. 그런데, 제가 요구하지 않았어요. 누구한테 뭐라 하겠어요. 제가 저를 위해 요구하지 않았으니......."

말을 이어가는 내내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이렇게 눈물을 흘리니깐 마음이 좀 차분해지네요."


사례 배분심사는 통과했다. 사무실을 나서며 무거운 마음을 한 숟가락 떠 낸 것 같았다.



다음 날, 퇴근 후 한 시간 뒤, 개인상담사례 슈퍼비전을 받았다. 미국에 거주 중인 여대생을 상담 중에 있는데, 2회기까지 했고, 내담자와 목표를 설정했고, 목표에 대한 전략을 수립하지 못한 상태에서 슈퍼비전을 통해 도움을 받고 싶었다.


지난번 처음 슈퍼비전을 받던 날에 비하면 덜 떨었다.

내담자는 미술에 재능이 있고 좋아하지만, 본인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기준에서 미술을 포기한 내담자였다. 그림을 그리는 순간만큼은 열 시간이고 몰입을 하고, 그 시간 내내 행복해한다. 하지만 그 내담자는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재능임을 몰랐다. "몰입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건 큰 축복이에요. 귀한 거예요. 아껴 주어야 해요. 몰입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사람들은 그것을 몰라 찾고 싶어 해요."

평소 감정 표현을 않던 내담자가 성큼 "좋아요"라고 말했다.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 된 것 같아 좋다는 거였다.


하지만, 그것이 다였다. 내담자의 주호소 문제는 온데간데없었고, 그 주변 문제들만을 다루고 있었다.


지난 첫 사례의 경우는 내가 상담자로서 제대로 된 감정반영을 잘해 줄 자신이 없어 질문만을 해댔었는데, 이번엔 해석과 감정반영을 했다. 그리고 내담자가 환하게 웃으면 "좋아요"라고 말했고, 나는 그런 내담자의 재능에 대해 지지를 해주었다.  


나는 나의 상담에 도취되어 있었다. 축어록을 풀며 개인상담사례 슈퍼비전 보고서에 이 부분을 신나게 적었는데, 진정 내담자의 주호소문을 놓치고 있었고, 내담자에게 해준 나의 반응에 도취되어 있었다.


상담수련 팀원들이 묻는 내담자가 주호소로 말했던 문제와 관련된 질문에는 내가 아는 것이 전혀 없었다. 내담자는 감정표현을 하지 않고 참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과연 나에게 자신의 주호소 문제와 관련해서는 말을 한 적이 있었나? 생각하니, 없었다.   


구조화도 문제가 되었다. 아무리 미국 시간과 한국 시간 간의 시간차가 존재하더라도, 매주 1회 상담이 지켜지지 않았고, 상담자인 나의 개인적인 이유로 취소되고 연기된 적도 있었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는 내담자인데, 과연 나는 내담자에게 신뢰를 주고 있었나. 그것부터가 기초가 되어야, 내담자가 나에게 깊이 묻어 둔 감정을 표현하지 않을까.


내담자의 문제를 듣고, 당연히 내담자는 어떠어떠한 감정을 느꼈겠구나 하는 생각에 질문을 하지 않은 것도 많았다. 대부분 나의 추측으로 질문이 없었다.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나답게 살지 못했다는 생각에 고민에 빠져 있었던 과거의 나에 꽂혀 내담자를 통해 '나'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얼마 전 브런치에 올렸던 '칼 로저스'에 대한 나의 깨달음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나의 경험에서 비롯되는 나의 감정에서 내담자를 이해하고 있었다. 흔히 사람들이 공감으로 착각하는 그 공감을 하고 있었다. 민망했다.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다.


로저스 이론을 통해 나는 자연과 음악에 최근 심취되어 있었다. 그 자체로 생기 있고 내가 느끼는 순간순간을 공감해 주는 대상이므로. 하지만 자연과 음악은 각박한 나의 현실에서는 여유가 없었다.



슈퍼비전을 마치고 그날 밤 KTX를 타고 친정집에 갔다. 아이도 여름방학을 맞이했다. 아이와 할 일을 스케줄을 짰다. 토요일 밤에 KTX를 타고 아이와 서울 집에 왔다. 일요일 OO 소재 과학관에 갔다. 이곳을 너무 좋아해 두 번째 방문이었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입체관이었다. 의자가 완전히 젖혀져 누울 수 있고, 천장에서 영상이 나왔다. 우주 관련 20분 정도의 만화 영상이었다. 한 편을 보고 나왔는데, 또 보겠다고 해서 데스크로 갔더니, 이미 이후 영상은 다 예매가 끝났다. 아이에게 설명을 해 주었으나, 소용없었다. 아이는 우겼고, 영상관 앞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싫어, 싫어' 소리만 연신 꺼냈다. 나는 단호하게 "그럼 다 울고, 저쪽에 엄마는 앉아 있을 테니, 와" 하고는 벤치에 앉았다. 1~2분이 지났을까. 직원 두 분이 아이를 데리고 안 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보여 놀라서는 얼른 쫓아갔다. 직원분들이 부모님을 잃어버려 아이가 울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분들께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고 아이를 데리고 과학관을 나섰다. 밖은 비가 엄청 쏟아지고 있었다.


아이와 나는 우산 하나로 같이 쓰고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갔다. 아이도 나도 흠뻑 젖었다. 비를 맞고 가는 내내 아이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아이가 짠하기도 하고, 뭔가 즐겁고 행복한 여름방학 추억을 못 만들어 준 것 같아 속도 상했다. 비는 왜 이리 오는지, 비 내리는 하늘을 쳐다볼 여유는 없었다. 과학관 방역 시간 동안 잠시 맞은편 커피숍에서 아이와 스무디를 마시며 창밖 가로등 위 새 두 마리를 보았던 순간이 내 여유 시간의 전부였다.


그다음 날은 삼촌네 집에 갔다. 4살 터울인 조카를 보며, 동생이라고 예뻐라 하는 아이를 보면서도 마음이 짠했다. 그다음 날은 티니핑 뮤지컬을 보러 갔다. 처음 뮤지컬을 보는 것이라 아이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다행히 너무 신나 하고 공연을 집중해서 보아서 마음이 놓였다. 그리고 양평행 KTX를 타고 아이와의 단둘의 시간을 마쳤다. 양평역에는 어머니가 마중 나와 있었다. 어머니 차를 타자 '여유'가 생겼다.



내가 로저스의 이론을 이야기하며 자연과 음악에 위로받고 자연과 음악 자체에 나 자신을 이해한다며 주저리 대었던 나의 현실은 어머니의 도움으로부터 생긴 '여유'에서 가능했다. 나는 퇴사 문제와 대출 문제, 이혼 문제 등으로 신경을 쓰면서 몇 날을 급체하며 심한 두통에 시달렸다. 하지만 아이와의 약속이 먼저였다. 친정집에 가서 부모님이 아이를 살펴 주어 나는 이불을 깔고 누웠다. 그러고는 밤 9시도 안 돼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녘에 엄청난 빗소리에 깼다. 주룩주룩 내려대는 빗소리에 속이 다 후련했다. 폰을 꺼내 비가 오는 소리를 동영상 촬영하고는 카카오톡 프로필에 올렸다. 그리고 어울리는 음악을 올렸다.


'여유'가 다시 찾아왔구나. 나의 여유는 오롯이 나로부터 나온 여유가 아니었다. 대출을 알아봐 준 은행 창고의 직원, 상담사례 배분을 해준 연구소 소장, 부담스러운 슈퍼비전을 끝내고 나눈 상담수련 팀원과 슈퍼바이저, 아이를 금이야 옥이야 살펴 준 부모님, 그리고 힘들면서도 매달 금전을 해결해 주는 직장......,


몇 날 며칠 급체하고 토하고 심한 두통이 반복되었던 것은 멈췄다. 내 카카오톡 프로필은 여유가 넘친다. 로저스 이론은 그제야 내 안에 다시 들어왔다.


아이의 방학을 하루 남겨 놓고,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 나, 그리고 아이와 양평의 어여쁜 커피숍을 갔다. 산책로도 있고, 갤러리도 있고, 맛있는 빵도 있고, 실내 이층 계단이 있었다. 샹들리에가 놓여 있고, 정원에는 예쁜 꽃도 피어 있고, 분수도 있고, 호수도 있고, 작고 예쁜 동상도 있었다. 참 예뻤다.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은 커피숍 실내에서 이야기를 하셨고, 아이와 나는 수시로 드나들며 밖 산책로를 들락날락하며 둘만의 재밌는 시간을 보냈고, 이층 계단을 올라서는 티니핑 뮤지컬 공연장 앞에서 샀던, 야광봉 검을 숨기며 찾는 놀이를 했다. 이층 공간 한쪽에 놓여 있는 클래식한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바로 옆 삼각대에 놓인 스케치 한 장이, 어제서야 비로소 느낀 여유를 밖으로 구현해 놓은 공간 같았다.



슈퍼비전이 끝났던 날, KTX를 타고 양평역에 도착해서 택시를 탔다.

택시 안 트로트가 들렸다.


    넓고 넓은 이 세상에

    말도 많고 탈도 많지만


    결국 하나 원하는 것

    함부로 가질 수 있나


    누구나 그놈에 사랑 때문에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다


    그래도 오늘 나는 행복하다

    너와 이렇게 춤을 춘다


    근심 걱정 쌓인 날들

    언제나 다시 찾아오지만


    욕심 하나 벗고 나니

    기쁨의 꽃이 핀다


    누구나 그놈에 사랑 때문에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다


    그래도 오늘 나는 행복하다

    너와 이렇게 춤을 춘다


    영희네도 철수네도 부럽지 않다

    난 너만 있으면 된다


    슬픔도 미움도 모두 던졌다

    흔한 미련도 없다


    누구나 그놈에 사랑 때문에

    사랑 때문에 울고 웃는다


    그래도 오늘 나는 행복하다

    너와 이렇게 춤을 춘다


    너와 이렇게 춤을 춘다

                                       - 조항조, '그놈에 사랑' -



위로는 여유에서 비롯되었다.

나의 여유가 어디서 오는지 각자가 봐주어야 할 몫인 것 같다.

개인이 할 수 없다면 그(녀)의 여유를 찾아주는 것이 상담사의 역할일까.

상담사 이전에 나 자체로서의 여유가 내담자에게도 전달되지 않을까.

그 여유에 대해서는 겸손히 맞이해야 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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