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들이 자기감정 표현을 하다가
그 감정을 가장 처음 느낀 때가 언제예요, 물으면
하나씩들 있다. 신기하게도.
별일 아니라고 하는 기억이라면서도
한번 말을 하기 시작하면 울기 시작한다.
그냥 그런 것들이에요. 뭐가 없었어요.
근데 말하니깐 눈물이 나네요.
장면으로 기억되는 것들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다.
나의 초기기억을 물으면 '유리조각'이다.
발바닥 정중앙 점은 수술을 하면 없어지나.
그리고 기억나는 한 장면은
한 중년 여성과 한 중년 남성이 나체로
서로 마주 보고 서 있는 장면이다.
꿈속이다.
한 어린아이는 그들 사이에 있다.
쭈그려서.
무섭다. 그들이 관계를 할까 봐.
그 여자 아이는 중학생 1학년쯤 되었을까.
그녀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꿈속 한 장면으로 각인되어 있다.
초기기억을 묻듯 최근기억을 묻기도 한다.
그럼 또 한 개씩 한 개씩 풀어낸다.
그들은 별일 아니라고 또 말을 한다.
하지만 별일 아니지 않다.
별일 아닌 건 아무것도 없다.
어떤 것이든 별일이다.
나를 향해 미소 지어주는 사람의 모습은
나의 최근기억이다.
나의 초기기억과 최근기억은
통합이 되지 않는다.
중년 여성은 만 43세
어린아이는 만 6세
감정분화가 되지 않았어.
성격 검사 한 세월이 내가 얼만데.
나중에 조금 더 커서 와요.
그때 다시 검사해 봐요.
다시 검사하자고 하는 경우도 별로 없어요.
지금 6살 정도 수준이니
사춘기 좀 지나고 다시 와요.
무얼 할 때 가장 행복했어요.
음.. 기억이 나질 않아요.
언제가 가장 행복했어요.
뉴질랜드에 10개월 있었는데, 그때가 생각나요.
돌아가면서 생각해 봐요.
떠오르지 않으면 초등학교 때 뭘 좋아했는지 생각해 봐요.
네.
서글펐다.
그렇게 오랜 세월 상담을 받았어도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주어지는 미션들은 잘한다.
인간관계 내 감정들은 어색하다.
내담자들의 어색한 감정 마주하기를
어설픈 상담자가 경청한다.
이해가 가지 않아 질문을 한다.
그래도 이해가지 않아 최대한 집중한다.
사고가 막혀 의식의 흐름이 막히면
내담자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다.
몸이 경직되면 마음도 경직된다.
2022년 만 6세.
지금 2024년 몇 세쯤 되었을까.
만 6세의 기억이 만 43세의 기억을 덮어버린다.
초기기억의 강력함이다.
초기기억을 그렇게도 묻는 이유이다.
표현을 못 하면 이미지라도 그려보라 묻는다.
무슨 색깔일까. 어떤 모양일까.
지금 이 공간에 그게 있다면 어디에 있을 것 같을까.
집요하게 물어대는 초기기억이다.
나의 초기기억은 손도 대지 못한 채
내담자들의 초기기억만을 대신 물어뜯는다.
나의 초기기억은 누추하다. 남루하다. 화가 난다.
나이를 먹어가는데도 여전히 순수한 것 같단 소릴 듣는 내가
그렇게 멍청할 수가 없고 한심할 수가 없다.
만 43세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