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컨디션을 찾은 아이의 기차여행

기차 안 아이와 나

by 세만월

오, 아이가 깼다.

나는 일어나 봐, 경치 봐봐, 이런 소리는 전혀 안 했다.

도리어 싫어할까 봐.


서서히 눈을 뜬다. 눈을 비빈다.

한동안 멍하니 심각한 표정으로 앞을 주시하고 있다.

나는 가만히 둔다.


엄마, 여기는 지옥이야, 한다.

나는 그저 조용히 웃기만 한다.

그리고 그저 가만히 그를 지켜본다.

눈은 그를 보지 않고 말이다.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른다.

아, 돌아왔구나.

아이가 갑자기 말을 한다.

엄마, 나 방금 동굴 봤어. 조금만 늦었으면 못 볼 뻔했어.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작은 동굴을 지나치다가

그걸 아이가 보고는 내게 말한 것이다.


엄마, 나 배고파.

아, 돌아왔구나. 아이는 제 컨디션을 찾는다.

2시간 넘게 자고 일어나서 피곤이 풀린 것 같다.

나는 아이가 자는 동안 아이에게 엽서를 썼다.

오늘 일찍 일어나 많이 피곤했을 텐데

엄마가 짜증을 낸 것 같아 미안하다는 내용이었다.


엄마, 파도가 세다.

엄마, 미역줄기 봐.

엄마, 갈매기.

엄마, 갑자기 멈추려고 해.


휴, 되었다.

더 바랄 게 없다.

이 기차여행은 목표를 달성했다.

이렇게 조마조마할 줄이야.


조금 있다가 카페에서 또 음료수 사야겠는데?

기차 안 카페를 벌써 몇 번을 들락날락하는지.

카드를 몇 번이나 넣었다 꺼냈다 하는지.

그래도 좋다.

아이가 창밖을 보니깐.


어느새 날이 어둡고 비가 오고 있다.

이 또한 좋다!

아이는 벌써 세 번째 샌드위치이다. 먹방 중인 사진을 찍었더니 아이는 스티커를 붙였다. 조금 전 너무 맛있게 먹다가 살을 찝었다. 아, 아, 아파 하더니 또 먹는다. 창밖을 보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