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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남기고

사랑의 도시 파리에서

by 세만월

사랑의 도시 파리라고 했던가.

파리에 와서 아이와 다투고 화해하고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첫날

파리 도착 전 암스테르담에서 파리로 오는 비행기에서 아이와 좋았다.


아이는 기내 음식부터 맞지 않아서 여행 내내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참 잘 먹는 친구인데 여행 절반이 지나면서 짜증이 올라온 것 같다. 도대체 여행은 왜 왔냐며, 농담 반 진담 반 자기 힘듦을 표현했던 것 같다. 언어도 편하지 않았으니 더 했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말과 표정이 왜 이리 서운한지.

8살 아이가 힘들어서 하는 말에 44살 된 엄마가 토라졌다.


글래스고에서 암스테르담 항공 지연으로 암스테르담 파리 항공 탑승 시간에 영향을 주었다. 다행히 후속 항공 연결로 동터미널 내 게이트만 바뀌었으나 빠득한 시간이라 C11로 가며 돼요 항공사 직원의 친절하고 다급한 목소리에 서둘러 달렸다.


우여곡절 끝에

파리 도착!


샤를드공항에서 수하물을 찾는데 없다. 공항 측에 묻자 경유했던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우리 여행가방을 실수로 놓쳤다는 것이다. 호텔 주소를 알려주고 내일 호텔로 보내주겠다는 안내를 받았다. 항공사 직원이 칫솔은 있냐고 물어 없다고 하니 여행용 키트를 주었다. 공항 픽업 기사님은 1시간 넘게 우리를 기다렸고 호텔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호텔로 가는 차 안에서 아이에게 짜증 낸 것을 사과했다.

휴, 낼 짐만 오면 된다.


아이가 전에 농담으로 잠옷 입고 다녀라 그랬는데 정말 오늘내일은 잠옷으로 입었던 검정 바지와 티를 입고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게 되었다.


엄마 진짜 잠옷 입고 돌아다니네.

아이는 신나 웃는다.

잠옷이 영어로 뭐야?

파자마.

맘 파자마, 맘 파자마, 호텔 로비에서 놀린다.


짐을 풀고 미리 예약해 놓았던 앵발리드 공연을 보러 갔다.

아이는 다행히 신기해하며 관람했다. 관람을 마치고 늦은 저녁, 호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했다. 여전히 음식은 아이 입맛에 맞지 않았다.

앵발리드 공연 중에 한 컷

○○야, 입맛에 맞지 않아 힘들 텐데 내일은 한식당 가보자.

아이는 엄지척했다.


둘째 날

사크레 쾨르 대성당 11시 주일 미사를 드리고 몽마르뜨 언덕에서 시간을 보냈다. 성스러운 미사였으나 10시부터 도착해 선물을 사고 11시부터 시작한 미사가 12시 30분에 끝났으니 2시간 반을 아이가 성당에 있었다. 많이 지루했을 것 같다.


미사 드리는 내내 감정이 복받쳐 울었다. 경건한 분위기에서 치러지는 미사여서 그랬을까. 기도 중에 내게 올라오는 짜증을 다스리게 해 달라 읊조렸다.

아이는 몽마르뜨 언덕에서 비둘기를 쫓으며 놀았고 낡은 목마를 타며 신나 했다.

몽마르뜨 언덕 아래 목마를 타고 있는 아이

호텔로 돌아갔다가 잠시 쉬고 3시 10분 빅버스를 탔다.

빅버스를 타고 2층에서 이어폰을 꽂고 한국어 안내를 들으며 4,50분 즐거워하더니 조금 지나자 짜증을 냈다.

오후 시간이 되자 춥기도 추웠다. 내려서 걸어갔다.

이어폰을 꽂고 한국어 안내를 들으며 관광하는 아이

잠시 호텔에 들러 짐을 풀고 저녁 7시 KOHYANG(고향)

이라는 한식당에 갔다. 어제 아이가 잘 먹지 못해 힘들었을 거라 생각해 검색하니 바로 나왔다. 바로 예약했다.


아이는 입맛이 돈다며 너무나 행복해했다. 군만두 접시와 김치전, 탕수육, 김치찌개를 시켰고 아이는 무척이나 잘 먹었다. 내일 휴업이어서 낼모레 저녁 7시로 또 예약을 했다.

배불리 먹고 호텔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길에 아이와 즐겁게 얘기하며 도중에 슈퍼마켓도 둘러보고 내일 저녁으로 먹으면 좋겠는 식당 두 곳도 찜해 놓았다.

배불리 맛있게 먹고 기분 좋게 찍은 한 컷

셋째 날

조식을 하고 개선문을 갔다. 조식을 끝내는 시점에 아이의 옷매무새 지적하다가 아이가 삐졌다. 개선문에 간다고 전철을 타려고 하는데 자신은 에펠탑에 가는 건 줄 알았다며 안 간다고 실랑이를 했다. 호텔로 돌아가 아이를 달래어 개선문에 갔다.


사진을 같이 찍기는커녕 아이 사진 한 장 제대로 찍기가 어려웠다. 아이는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아니 찍어주지를 않았다. 그러던 중 단독 행동으로 찾는 일이 생겼고 심장이 덜컥 주저앉았다. 또다시 다투었다.

개선문 앞 아이는 비행기 흉내를 내며 사진 한 컷

호텔로 돌아와 두 시간 정도 쉬다가 에펄탑에 갔다.

사진 한 장 제대로 찍으려 안 하는 것에 나는 화가 났다. 그러다가 아이와 또 다투었다.

이때까진 좋았는데. 토끼 같은 표정을 지은 아이와 함께 한 컷

어제저녁 먹기로 골랐던 호텔 근처 수시집에서 아이는 우동을 나는 사케동을 먹었다.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 기다리는 중에 아이와 대화를 나누며 화해했다.

나만 한 화해인 건 아닐지 자신이 없기도 하다.


넷째 날

루브르박물관은 휴업이나 피라미드 앞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피라미드 앞에 바로 보이는 카페에서 아이는 핫초코 나는 블랙커피를 마셨다. 카페 직원분이 찍어 준 사진이 마음에 쏙 들었다.

날은 추웠지만 테라스에서 아이는 핫초코 나는 블랙커피. 그리고 한 컷

생트 샤펠에 갔다. 아이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갔다. 생트 샤펠 기념품 샵에서 아이와 함께 부모님과 지인에게 줄 선물을 골랐다. 이어 콩시에르주리로 갔다. 아이는 주최 측에서 준 태블릿을 들고 곳곳에 배치된 안내판을 스캔해 가며 10개의 보물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콩시에르주리 주최측에서 준 태블릿 3D 안내를 보며 보물 찾는 아이

오르세 미술관으로 갔다. 아이는 많이 피곤해서 관심이 없었다. 오디오 서비스를 받지 않겠다고 실랑이를 했다.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이 전시되어 있는 5층을 갔다.

내려와 조각상을 아이와 같이 보았다.


아이는 내게 물었다.

근데 왜 다 발가벗은 것뿐이야?


그게 웃겼던 모양이다.


호텔로 돌아와 짐을 풀고 아이가 어제부터 기다리던 고향 식당에 가서 저녁을 했다. 군만두 탕수육 떡볶이 육개장 그리고 군만두 두 접시는 테이크아웃. 한 접시는 사장님이 서비스로 주었다. 아이가 잘 먹어서 좋다고 여행 잘하고 다음에 또 오라고 했다. 지인과 함께 오고 싶은 식당이었다.


그날 저녁 할머니와 통화하는 중에 아이는 말했다.


할머니 고향이란 데서 저녁 먹었는데 왜 고향인지 알아요?

자기네 고향으로 돌아가서 먹고 싶다는 거라서 고향이에요.

맞아. 고향이 그런 거지.


불어로 더빙한 만화를 보면서 재밌다며 침대 이불속에 쏙 들어가 누워 티브이를 보았다.


닷새째

11시에 체크아웃을 했다.

샤를드공항에서 호찌민시티로 향했다.

이스탄불에서 4시간 야간 경유 중이다.

아이는 한켠에 마련된 0-12세 키즈존에서 신나게 뛰놀고

냅 존에 와서 샌드위치를 먹었다.


46일 여행 중 30일 정도가 지났다.

파리에서 돈이 쑥쑥 나갔다.

한국에 돌아갈 날이 가까워지자 걱정이 나를 비집었다.

아이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

사진으로 남기면 하나라도 아이에게 추억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들이 앞서 아이와 다투었던 것 같다.


호텔 직원이 체크아웃하며 내게 물었다.


머무는 동안 제일 좋았던 곳 하나만 물어보면요?

음, 너무 많아 대답을 못 하겠어요.

그래도 딱 한 곳만 댄다면요?

아무래도 에펠탑?


공항 샌딩 기사님을 기다리며 호텔 로비에 잠시 짐을 맡기고

카페에 들러 아이가 핫초코를 마실 수 있게 했다.

나도 아이에게 물었다.


○○는 파리에서 머물면서 가장 좋았던 게 어디야?

에펠탑.

에펠탑? 왜?

레고.


에펠탑 2층 샵에서 아이에게 에펠탑 레고를 사주었다.

아이와 내가 가장 안 좋았던 곳이기도 했다.

레고가 있어 다행이란 생각마저 들었다.


파리는 많은 아쉬움을 남기고 온 것 같다.

곧 베트남행 비행기를 탄다.

베트남에서는 친구와 내일 점심 약속만 있다.

그 외의 시간은 아이와 호텔에서 푹 쉬려 한다.

아이도 나도 그저 뒹굴거리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호치민시티 숙소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종이접기를 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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