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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 편의 위로

아이에게

by 세만월

아빠에게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아서일까.

긴 여행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일까.


어수선한 마음을 가다듬을 길 없어

몽마르뜨 언덕 성당 바로 앞에서 팔던

에펠탑 키링 5개 한 묶음을 아이가 갖고 싶어 해 사주었던

아이 책상에 놓여 있던

그 다섯 개를 만지작거리며 일렬로 놓았다.

아이가 보고 싶었다.


터덜터덜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어머니와 나는 다소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오면 곰돌이 젤리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젤리 키트는 내일이면 온다는 알림을 받았다.


○○야, 엄마가 많이 사랑한단다.

나중에 네가 커서 엄마 글을 보게 된다면

이 마음만큼은 고스란히 너에게 닿았으면 한단다.

쓸쓸한 순간에 이 온기 머금고 건강히 자라기를 바란단다.

너의 인생을 늘 곁에서 응원할 거란다.

그러니 지금 느끼고 있을 너의 온갖 감정들을 안아주렴.

곰돌이 젤리 만들어 먹자 아이야.

네가 아픈 만큼 젤리는 더욱 탱글탱글 맛있을 거야.

네가 아프면 언제든 엄마에게 내려놓을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단다.

돌아오면 엄마랑 곰돌이 젤리 만들어 먹자.


그렇게 마음만 부산히 있는데

시 한 편을 읽으면 차분해질 것 같은 마음에

바로 앞 책장에 꽂혀 있는

나태주 시인의 동시집을 들춰보았다.


마음이 답답하십니까? 속상한 일이 있습니까? 사는 일에 지쳤습니까? 그렇다면 발길을 멈추어 시를 읽으십시오. 속상한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을 것이고 어두운 마음이 조금씩 밝아질 것입니다. 그 자체로써 행복입니다.

시 앞에서 만날 당신을 미리 축복합니다.

(작고 아름다운 나태주의 동시수업 여는 글 중에서)


이 한 단락에 이내 마음이 차분해져

동시는 읽지도 않은 채 여는 글로 몇 초의 독서를 마쳤다.


곰돌이 젤리 만들어 먹자 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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