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대화

아이의 속상한 마음

by 세만월

엄마, 내가 가장 기쁜 거

조금 기쁜 거

가장 속상한 거가 있는데

셋 중에서 뭐 듣고 싶어?

하나만 얘기해 줄게.


음, 다 궁금하지만, 가장 기쁜 거.


(사실 가장 속상한 게 궁금했다.)


음 가장 기쁜 거는 학원 안 가고 지금 레고 사러 간다는 거.


(그런데 다행히 아이는 뒤이어 말했다.)


그럼 조금 기쁜 거는

하며 내게 알아서 말을 해주었다.


레고 사러 가는 거.


○○가 좋아하는 레고보다

학원 안 가는 게 이겼네.


그럼 이제 가장 속상한 거 얘기할 거야.

잘 들어.


응.


오늘 누구랑 누구랑 같이 놀았는데

누구가 내 바지를 벗겼어.

그래서 나 울었어.


아. 속상했겠다.


(자기 속상한 걸 얘기하는 애가 아닌데

얘기해 주는 아이에게 고마우면서도

얼마나 속상해 울었을까 싶었다.)


(가만히 듣다가 아이에게 물었다.)


○○, 어땠어?


속상했지. 슬펐어.


(잠시 듣다가)


이 싹바가지. 그놈 델고와.

엄마가 그놈 팬티까지 벗겨야겠다.


(아이는 빵 터졌다.)


(잠시 있다가)


○○야, 이번이 처음이야? 전에도 그랬어?


아니, 오늘이 처음.


다음에 또 그러면

너 나한테 그러지 마. 나 싫어.

하고 말해.


응.


약속했던 레고를 사서 집에 오는 길에

기차에서 아이는,


엄마, 레고 조립할 생각에 떨려.


오늘 ○○가 엄마한테 속상했던 거 얘기해 줘서 고마워.


응.


한 달 전? 미술학원에서

초미니 사람 모형 종이접기를 아이가 했다.

설마 이걸 접을 수 있겠냐며 다들 포기했는데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접어내었다.


포기 않고 끝까지 하는 모습이 기특해

레고를 사주기로 약속했었다.

아이가 찍어 빨갛게 직접 화살표를 넣은 한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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