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와 유리조각

의자와 꽃

by 세만월

유모는 그녀를 한없이 사랑해 준다.

어릴 때부터 젖먹이며 안고 품고 키워 그런가.

그녀는 유모가 어머니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늘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오늘, 너 어떠니?

저요? 좋아요.


유모는 그녀에게 묻지 않았다.

대신, 식사를 차려주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이 식탁에 올라와 있었다.


어머니는 늘 식사를 혼자 하셨다.

유모는 역시 묻지 않았다.

유모는 사모님이 좋아하는 것들로 식탁을 차렸다.


어머니는 늘 불만했다.

오늘, 맛이 없네. 신경 좀 안 썼나 봐요.

유모는 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왔다.

엄마, 저 왔어요.

어디 다녀온 거야? 기분이 좋아 보이네.

아, 그래요? 별일 없었는데.

엄마, 저 올라갈게요.


그녀는 얼른 이층으로 올라간다.

유모를 찾는다.

유모, 나 오늘 좋은 일 있었어.

무슨 일이요?

그렇게 시작한 대화는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거실 한가운데 피아노가 놓여 있다.

어릴 때 어머니가 그녀에게 사준 것이었다.

그녀는 피아노를 배워 치곤 했지만

한 음 한 음 미스가 나면

바로 어머니의 한숨 섞인 목소리가 들렸다.


네가 틀리면 흐름이 끊겨 불안해.


그녀는 음소거 페달을 밟고

한 음 한 음 다시 치기 시작했다.

점점 피아노 앞에 앉지 않았다.


사실 피아노를 알려 준 건 어릴 때 유모였다.

유모가 쳐 주는 소리는 늘 편안했다.

피아노 소리가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싫다.


피아노 옆을 스치고 지나가 소파에 앉을 뿐이다.

따뜻한 차를 들고 소파에 앉으려다가

유리잔을 놓쳤다.

유리조각은 피아노 의자 아래,

음소거 페달 근처로 튀었다.


유모는 한달음에 달려왔다.

괜찮아요?

응, 유모. 별일 아니에요.

별일 아니긴요.

내가 치울 테니깐 여기 그대로 있어요.

아니야, 유모. 내가 치울게요.

아니에요. 제가 치울게요.


아니야, 유모. 내가 치울게.

내가 치우게 해 줘요.


단호하게 말하는 그녀에게

유모는 더 이상 어쩌지 못했다.

그럼, 대신 조심하세요.

알겠어.


유모는 그곳에 서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치우지 않고 있다.

유모는 언제나 치울까 하고 보지만

그녀가 치울 기색이 없다.


유모는 물어보지 않았다.

사모님이 곧 돌아오실 텐데,

그럼 이게 뭐냐고 한 소리 하실 텐데,

그럼에도 묻지 않는다.


그때 그녀가 왔다.

아가씨, 사모님 오셨어요.

알아요, 유모.

괜찮아요, 아가씨?

네, 걱정 마세요.


그녀는 어머니에게 잘 다녀오셨냐며,

인사를 건네고는

그대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그녀 옆에 서 있는

유모를 본다.

피아노 아래로 보이는

유리 조각들과 파편들을 본다.


그건 뭐예요?

유모에게 물었다.

유모는 머뭇거리며 말하기를 주저한다.


그녀가 나선다.

유리잔을 깼어요. 놓쳤어요, 제가.

근데, 왜 안 치우고 있어?

유모, 빨리 치워야지.


유모는 또다시 머뭇거린다.

유모, 당신 왜 그러지?


그녀는 나섰다.

제가 치우지 말라고 했어요.

왜?

제가 그랬어요.

그러니까 어머니는 조심해 주세요.

뭘 말이니?

유리 파편들이요.

피가 날 수도 있으니깐요.

상처가 날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치우면 되잖아.

그건 제가 할게요.

그래, 그럼.


그녀는 꼼짝 않고 있다.

언제? 하고 어머니는 그녀에게 묻는다.

제가 치울게요.


그래, 알겠다.

어머니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유모는, 그녀 곁에 서 있다.

아가씨.

유모, 나 올라갈래.

그래요, 아가씨. 같이 올라가요.


다음 날 아침, 그대로였다.

어머니는 외출하셨고,

유모와 그녀도 각자 자기 할 일을 했다.

아무도 치우지 않고 있다.


피아노 위에 꽃병을 놓았다.

꽃병에는 예쁜 꽃을 꽂았다.

피아노 맞은편에 의자를 놓았다.

아무도 앉지 않았다.

의자가 놓이자

그녀는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보이는 건 그 의자였다.


유모, 나 꽃을 좀 사 올게요.

같이 갈까요?

아니요, 혼자 사고 싶어요.

제가 원하는 꽃을 모르겠어요.

그래요, 아가씨. 꽃은 다 예뻐요.

피어 있는 꽃으로 사 올게.

아가씨, 봉오리가 닫혀 있어도

꽃병에 꽂으면 활짝 펴요. 그러니 걱정 말아요.

알겠어.

다녀올게요.


꽃병에 꽂은 꽃은 유모가 간다.

꽃병에 꽂을 꽃도 유모가 산다.


사모님, 저 이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간 고생했어요.

그럼, 사모님, 안녕히 계세요.

유모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딸의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걸려 있는 액자 속 그림에 시선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