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아침에 아이들 어린이집 보내고 밀린 설겆이를 하는 동안 남겨진 부재중 통화 하나.
'짱귀연 엄마♡'
곧 바로 통화키를 누르고
" 엄마, 전화했었어?왜~ "
@ " 감기걸렸니? 목소리가 .. "
" 누워있어서 그래~왜 전화 했어? "
@"근무야?아니, 지나가는데 옷 가게에 원피스 하나가 예쁘길레~ "
" 사줘?"
@" 아니, 엄마 입을꺼 아니고 너 입으면 좋을 것 같아서~ "
" 그래? 그럼 엄마가 사줘~ "
@" 알았어, 엄마가 다시 가서 봐볼께"
몇 분 후,
@" 아이고, 사려고 보니까 애들꺼더라. 16세,17세 용이라더라~"
" 아깝네~내가 스물일곱만 되었어도 어떻게든 입어보는건데~ 하하~"
@"그러게 스물일곱이였으면 입었을텐데 말이다 호호~어여 출근 준비해~"
그렇게 유쾌한 통화를 마치고, 습관적으로 TV를 틀어놓은채 화장을 한다. 평소와 같은 출근 준비를 하는데 문득 엄마와의 통화가 곱씹어졌다.
이제 곧 추석연휴인데, 혹시 올 수 있냐고 물어보려 하셨나? 내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선뜻 물어보지 않는 엄마이기에 더 신경이 쓰였다. 늘 바쁜 척하는 딸이 행여나 귀찮아 할까, 매번 이유를 만들어 전화를 거는 엄마. 그것을 잘 알면서도 외면하는 나는, 절대 착한 딸은 아니다.
스무살에 품을 떠났던 어린 딸이 어느덧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심정은 어떠했을까. 쇼윈도에 걸린 원피스를 보고 예쁘다 생각했을때 엄마는 발랄했던 십대 후반의 내가 떠올랐을 것이다. 가을에 입으면 딱 좋을 것 같다던 그 원피스를 구경하는 동안 엄마의 무의식 속 나는 철없이 밝았던 소녀에 머물렀겠지.
그런데, 그 원피스가 세상에, 내 딸이 더 이상 입을 수 없는 사이즈라니, 하고 깨달았을 때는 또 어떤 기분이셨을까?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이 이어지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애써 한 화장이 지워질까 TV볼륨을 높여보지만 이미 쏟아진 감정을 담을 방법은 없었다.
나는 엄마의 우주에서 멀어진지 벌써 14년이나 지났는데 엄마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결혼을 하고 첫 아이를 낳고, 또 둘째까지 키우느라 내 시간은 너무도 빨리 달리는데 엄마의 시계는 내가 곁을 떠난 순간부터 멈춰버린 것 같았다. 엄마 앞에서 나는 아이 둘을 낳은 아줌마가 아닌 단지 엄마의 아이일 뿐이니까.
엄마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당연하다 생각하고 또 그것을 누리며 자란 나는 자존감이 큰 어른이되었다.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쉽게 상처받지 않는 내면이 강한 사람으로 자라게 되었다. 내가 나인 것이 정말 좋다는 생각은 내 삶을 긍정적으로 이끌었다. 내가 나라는 이유만으로 늘 따스하게 안아주는 엄마라는 백그라운드가 있는데 무엇이 어렵고 두려웠겠나. 엄마라는 빽을 이기는 것은 없다. 비록 내 엄마에게 돈 이나 권력이 없다해도 말이다.
또각 또각 걷는 출근길, 어느덧 꽤 높아진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본다. 정오의 태양이 눈부셨다. 자연스레 눈이 찌푸려졌다. 그런데 갑자기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덮쳐왔다. 저 태양처럼 엄마의 눈부신 사랑을 받으면서도 나는 참 많이도 찌푸렸었구나 하는 생각이들어서.
가슴이 미어졌다.
언제부터인지 짝사랑이 되어버린 엄마의 사랑이 미안하고 속상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