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스톡홀름 # 8
여행 동안엔 알람 설정을 해둔 적이 없었던 듯싶다. 신기하리만치 이른 아침에 눈이 떠지고 무려 상쾌하기까지 하다. 날마다의 삶에서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욕심이 스멀스멀. 이사간 호텔에서도 일찌감치 조식을 신나게 즐기고선 센트럴 동네 산책에 나섰다. 잠시나마 구글맵을 꺼두고 두 손 두 발 자유로이 거니는 모닝 산책 시간이 참 좋다. 목적지 없이 헤매는, 어리숙한 듯한 여행자의 모습으로 스톡홀르머들 출근길 구경하는 것도 재미지고, 아침의 '냄새'와 '느낌'이 낯선 도시에 홀로 있는 내게 생동감을 안겨다 준다.
100년이 넘었다는 우체국 건물. 이런 오래된, 그리고 웅장한 건물에서 우편 업무를 보는 스톡홀르머들이 어찌 아니 감각적일 수 있겠는가, 란 한탄 섞인 부러움. 온 동네 방네가 온 몸과 마음을 자극하니 감각이 솟아날 수밖에! 이들은 알까, 자신들이 태어나 자라온 이 곳이 누군가에겐 간절히 갈망하게 되는 곳이라는 것을...
영업을 준비하기에 한창인 아늑하고 따스한 서점.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들러 보았다. 영어 책도 꽤 많이 구비돼 있어 구매 충동이 마구마구 올라왔다. 북클럽 모임이 많은 듯 테이블이 여기저기 있었고 아름아름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모임을 구경할 순 없는 노릇이니 아쉬움 숨긴 채 나왔지만 짧은 순간의 저 공기를 잊을 순 없을 것만 같다. 어느 도시를 가든 도서관, 서점, 카페는 정말이지 그 도시의 매력을 압축해서 담고 있는 곳이다. 그 도시를 알고 싶다면, 더 친해지고 싶다면 서점과 도서관에 꼭 발도장을 찍고 잠시 머물러보길!
흘러 흘러 걷다보니 스톡홀름의 대표적인 NK(Nordiska Kompaniet) 엔코 백화점에 당도했다. 북유럽의 모든 럭셔리 브랜드들이 한데 모여있는 곳. 지하엔 주방용품 섹션과 델리 & 카페가 있다. 아주 차분하게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자 눈 호강 시키며 디자인감각 마구마구 흡수할 수 있는 곳! 소비만 안한다면 최소 비용으로 최고의 아트감을 훔쳐올 수 있는(?ㅋㅋ) 그런 곳이라고나 할까. 들어서는 순간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웅장하고 위엄 있는 모습이 펼쳐지는데 화려하기만한 느낌보단 훨씬 더 맘에 들었다. 센스 있는 레드 드레스 커튼을 보시라. 저 계단 오를 때 기분이 제법 좋았다.
NK Stockholm
Hamngatan 18-20, 111 47 Stockholm, 스웨덴
https://goo.gl/maps/MawDzwmVq9G2
신나는 NK 구경 놀이를 마치고 지하로 내려와 NK백화점에서만 판매한다는 차를 사기 위해 tea shop을 찾아 향했다. 정면에선 촬영을 금지하고 있어 자세히 담진 못했지만 찻잎을 하나하나 시향을 하며 고르는 작업은 꽤 즐거웠다. 기대 이상으로 아로마가 훌륭한 차가 많았고, 아주 오래전 황실에서부터 즐겨 마셔오던 차라는 설명을 듣는데, 과연 그러하겠구나 싶을 만큼 황홀한 향과 풍미가 느껴졌다. 사랑하는 그를 위해 4~5가지 찻잎을 시향하고 가장 어울릴만 한 향을 골랐다. 뿌듯해하는 날 보며 수줍게 미소지었던 금발의 아리따운 여인. 이 곳은 택스 리펀이 되지 않는데, 해줄 수 없으니 그 금액만큼 샴페인 향이 나는 차를 300g이나 챙겨 주는 센스를 발휘하는 그녀. 여행자인 내겐 이 모든 것이 참으로 고맙다.
마실 나온 듯 한참을 머물다 돌아 왔는데 여운이 참 길게 남는 곳. 그를 위해 구매한 차 외에 일하며 마실 나를 위한 차와 몇몇 소중한 이들을 위해 추가 구매도 했는데 정말 '모두'가 너무나 좋아했다. 마음에 향을 담아 전달할 수 있는 차 선물은 my favorite 아이템이다. 그윽하고 부드러운 향기를 음미하며 받는이들 중 누군가는 나를 기억해준다고 생각하면 더 의미 있는 선물이 되니까 말이다.
이리로 저리로 흘러 흘러 산책하며 Hamngatan(함가탄) 부근으로 향했다. Södermalm(쇠데르말름)에 있는 매장과는 또 다른 분위기와 매력이 있는 Acne(아크네) 매장. 심플함과 단조로움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세련미가 얹어진 참말로 묘하게 매력적인 곳이다. 브랜드의 힘일까, 디자인의 힘일까. 스톡홀름의 매력이겠지.
아크네 매장 바로 앞 광장. 트램을 탈 수 있는 정류장이 있어 늘 타고 내리는 로컬 피플과 여행자들로 은근히 붐비는 곳. 나도 이 곳에서 Jona언니와 함께 트램을 타고 Rosendals(로센달스) 가든으로 향했던 추억이 있다. 광장은 서로 다른 이들이 한데 섞여 북적거리는 매력이 있어 생동감을 마음껏 내뿜고 또 느낄 수 있는 곳일터.
Hamngatan 11, 111 47 Stockholm, 스웨덴
https://goo.gl/maps/92tqoF9Z4wy
걷다가 우연히 발견한 아케이드. 매력적인 샵과 카페가 내부에 모여있다. 뜻밖의 발견은 역시 기쁨이 남다른 맛이 있다. 몇 번 더 드나들며 재미나게 구경했던 곳. 스톡홀르머들의 출근 시간엔 유용한 통로가 되는 것 같아 보였다. 로컬 피플 구경? 관찰?!은 정말이지 깨알 재미가 한 가득이니...!
이 동네에도 있는 힙 플레이스 ilcaffee. 오전에도 앉을 곳은 없었다. 쇠데르말름에 있는 카페가 넓고 더 재미있는 공간인 듯하다. 커피 맛이 매우 좋은데, 라떼나 플랫 화이트를 추천한다. 북유럽 우유엔 비밀이 있는 듯. 그 실키함은 우유의 비밀일지 바리스타들의 놀라운(?) 경지일지..후훗 :-)
잠시 카페에 앉아 짧지만 달콤한 휴식 그리고 끄적이는 시간 갖기. 여정 동안 가장 큰 충전이 되는 막간의 순간들이다.
유명한 또 하나의 백화점 무드 스톡홀름이 있는 거리. 축제가 벌어질 예정인걸까? 색색이 곱기도 하다.
스톡홀름의 스타벅스 격인 'Espresso House'. 이곳 저곳에 참 많아 정겹기까지 한 곳. 익숙한 게 하나씩 생길 때마다 여행자는 어깨를 펴게 되는 법이지.. ^^
이 번엔 마트 구경. 과일과 물을 사기 위해 들러 보았다. 북유럽의 과일에도 비밀이 있는건지? 색이 왜이리도 곱디 고울까나. ^^
Kungsträdgården
Jussi Björlings allé 5, 103 91 Stockholm, 스웨덴
https://goo.gl/maps/aPPn3zcabjL2
Kungsträgården(쿵스트레고르덴) 공원 산책. 바로 옆에 쿵스트레고르덴 지하철 역(T-bana)이 있다. 쓸쓸한 듯한 정취가 나지만 잠시의 고독함은 되려 여행의 벗이라 여겨진다. 이럴 땐 공원만 한 데가 없지. 오전 내내 이렇게 걸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걸었다. 때때로의 고독함도 때때로의 생동감도 모두 다 여행자인 내겐 좋은 벗이다. 고독할 땐 생각에 잠기거나 끄적이게 되고 생동감이 가득 활기찰 때엔 도시를 이곳저곳 맘껏 누비게 된다. 그 어느 때건 귀한 순간이다.
스웨덴 국민 브랜드 MAX! 버거와 프렌치 프라이즈가 꽤 맛있단 소문을 듣고 Jona 언니와 점심 조우를 했다. 기대만큼 패티도 두둑하고 맛있었는데 탄산을 마시지 않다보니 사과주스로 어색한(?) 맛의 조화를 곁들이긴 했지만 치즈와 할라피뇨로 뒤덮인 감자로 모든 게 커버됐다. 고칼로리는 왜 날 단 한 번도 실망시키지 않는단 말인가!
맛있는 MAX 타임을 마치고 건너편 광장에서 트램에 올라탔다. 오늘의 중요한 목적지는 따로 있었으니 이름하야 이쁘기도 한 Rosendals Trädgård(로센달스 트레드고르드). 바로, "로젠달 가든". 깊고 방대한 숲이 공원으로 잘 조성돼있는 곳. 트램을 타고 숲의 입구 어귀에서 내리면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게 되고, 이 곳에서부터 로젠달 가든으로 서서히 걸어가면 된다. 피톤치드가 마구 뿜어져나오는 곳. 어느 곳을 바라봐도 그림같이 예쁜곳을 함께 걸으며 감탄하기에 너무 바뻤던 우리. 자연은 언제나 이렇게 인간을 반가이 맞아준다. 순간 겸허해지는 마음. 그런데 인간은 자연을 어찌 했는가, 를 생각하니 절로 숙연해지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의 자궁 속에 있던 느낌이 이 느낌과 비슷할까... 로젠달에 가까워질 수록 들었던 생각 그리고 느낌. 품 속으로 들어가는 묘한 느낌이 들었다.
https://goo.gl/maps/3VFTQVR9CwR2
로젠달 가는 방법 ↑↑↑
잠시 저 보트 좀 훔쳐탈 순 없을까, 란 개구진 생각도 잠시.. ^^ 하늘은 맑고 물은 푸르다. 짙은 녹음이란 게 바로 이런거지 싶었던.
평화롭다. 잔잔한, 겸손한 자연을 닮아가며 늙고 싶다. 그럴 수 있을까...
여행의 여정 동안 내게 많은 영감을 주는 오브제는 단연 '문(the doors)'이다. 못지 않게 나를 생각에 잠기게 만들어 주는 것은 '길(the roads)'이니... 숲속을 향해 걸어가는 이 길은 남은 생의 나날 동안 특별하게 기억될 것이다. 인생을, 사랑을, 그리고 죽음을 잠시 생각했다. 끝없이 걸어가는 여정이 삶이겠거니. 어떤 길로 가야할지를 고민하는 매일의 순간들이 삶을 이루어주고 있는 게 아닐까.
로젠달 가든이 가까워진다. 기대와 설렘은 어느새 뜨겁게 달아올라 심장을 뛰게 만들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숲의 기운이 느껴진다랄까. 푸르른 향기에선 자유가 묻어나는 것만 같다. 이 자유, 붙들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