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나 발견한 '집' 로망

호텔심리학 3

by Wendy An

매력적인 사람을 마주하게 되면 어떤가? 금세 마음을 사로잡힌다. 행복 호르몬인 세로토닌의 마법이 일어나는 순간! 나도 모르게 그 대상에 집중하게 되고, 어느새 올라가 버린 입꼬리는 내려올 줄 모른다. 시선은 그에게 고정되고, 열심히 그의 매력을 탐색한다. 무엇이 이토록 그를 매력적으로 만드는 가를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도 그 매력을 흡수하고 체화시킨다. 이 즉각적이고도 강렬한 순간의 정신적 활동이 대화로 이어지면 예의 그 매력적인 대상을 흉내 내는 데까지 이르게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렇게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사람과 환경을 탐색한다. 인간의 정신과 마음의 활동이라는 것은 본디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탐하고 받아들이기로 선택하는 것의 반복 아닐까.


100년 넘도록 지켜온 시공간의 물리적인 힘, 그곳에 얹어진 진정성과 배려의 현대적 디자인,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엣헴은 오직 이곳뿐이라는 희소가치, 집 떠나 먼 길 건너온 여행자에게 다시 집에 대한 로망을 품게 해주는 역설적인 매력을 발견한 곳 엣헴. 호기심과 환희를 오가며 그곳의 구석구석을 면밀히 관찰했던 여정은 자기 탐색과 닮은 구석이 있다. 나를 끌어당기는 힘을 구체적으로 발견하면 자연스레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묻게 된다. 그 물음에 꼬리를 물고 답하는 여정과 세월이 쌓이면 옥석과도 같은 자신만의 '취향'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호텔이 공간에 불과하다 생각해버리는 것은 과오다. 공간의 매력은 인간이 닮고 싶단 욕망을 가질 만큼 강력한데, 왜일까 생각해보면 매력적인 공간에 있으면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공간이 여행자에게 안겨줄 수 있는 결정적 선물 이리라.


즐겨보는 다큐시리즈 중에 넷플릭스 오리지널 '앱스트랙트(abstract): 디자인의 미학'이 있다. 세계 이곳저곳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명망 있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인생, 생각 및 작품을 멋진 스토리텔링과 편집으로 만날 수 있는데, 어느 날 무심코 고른 에피소드는 세계적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일세 크로포드 편이었다. 나른한 몸과 마음으로 다큐에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을 즈음 화면에 호텔 엣헴이 등장했다! 단 한 번의 엣헴에서의 추억을 가졌을 뿐이지만 그 순간의 기쁨과 뿌듯함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세계적인 다큐에 등장한 세계적인 호텔에 머물렀던 나도 세계적인 사람이 된 듯한 그 찰나의 기상천외한 기분.




공간 꾸미기에 그다지 흥미가 없는 나와 같은 사람에게는 호텔이야말로 오감을 자극하고 또 충족시키기에 최적의 놀이터다. 흥미를 자아내는 호텔 공간의 곳곳에서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지 않은가. 질문하는 순간 영감을 받는다. 묻는다는 것 자체가 결국은 애정이다. 아울러, 누군가의 의도와 손길로 멋지게 꾸며진 공간에는 무언가 특별한 것들이 서려있는 것만 같다. 디자인과 인테리어 뒤에 숨겨진 스토리, 아늑함과 컬러감의 비밀, 동선 구성과 가구 배치의 계산된 배려, 섬세하고도 친절한 디테일과 아이템의 하모니까지.



머물던 방의 창가 책상에 놓여 있던 소책자 <The Seasons at Ett Hem>을 잊을 수 없다.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는 아끼는 아이템이다. 사계절 동안의 엣헴의 모습이 어여쁜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려져 있고, 로컬 베이커리와 카페, 레스토랑 등이 소개돼있다. 엣헴이 추천하는 스톡홀름 중심가의 쇼핑 스팟도 손그림 지도와 함께 항목 별로 리트스업 되어 있다. 첫 장을 열어 마지막 장을 덮는 동안 새어 나오는 미소를 멈출 길이 없었다. 마치 나만을 위해 준비된 손그림 동화책을 읽는 기분. 스톡홀름 여행이 곱절로 즐거워지는 기분. 이러한 디테일은 작은 발견, 작은 기쁨인 듯하지만 여행을 되돌아보면 오히려 좋은 에너지와 기분을 내내 유지할 수 있던 크나큰 즐거움이었다. 엣헴을 추억할 때마다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또 하나 늘 추억하는 즐거움은 '조깅을 위한 그림 지도'인데, 마치 보물 찾기처럼 벽장을 열어 슬리퍼와 로브를 꺼내다 발견했다. 정갈히 접혀 있던 이 작은 지도를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얼마나 슬펐을까. 이 사랑스러운 지도를 들고 아침마다 동네 어귀를 경쾌하게 산책할 수 있었다. 이방인에 불과한 나를 엣헴과 스톡홀름이 안아주고 토닥거려주는 느낌이었다. 공간과 도시가 나를 받아들여주는 기분. 결코 잊을 수 없는 엣헴의 '경험 디자인'이다. 덕분에 스톡홀름과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는 그 순간의 기쁨과 재미는 고유하다. 처음은 늘 한 번이니까. 내 마음과 시선을 느슨히 따라가다 보면 결국 내 취향과 관심사가 보인다. 무엇에 가슴이 설레고,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이 나를 즐겁게 하는지를 세심히 관찰하는 것과 다름없는 탐색 작업. 새하얀 침구의 바스락 거림, 각각의 위치에서 지극히 어울리는 색채와 기능을 뿜어내는 탐나는 조명, 흑백의 멋짐이 폭발하는 벽에 걸린 사진 작품과 그 아래 무심히도 쌓여 있는 책, 북유럽 가구 디자인의 정수란 이런 것인가를 생각게 하는 의자와 테이블, 웰컴 드링크와 과일, 이 모든 장면이 다 포착되는 것만 같은 큰 거울과 존재감이 뚜렷한 블랙 앤 화이트 캔들, 그리고 늘 마음을 빼앗기는 짙은 농도의 매력을 뿜어내는 하얀 문까지.


스톡홀름을 만끽하러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도무지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던 엣헴. 그때 그 주저함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았더라면, 승복하지 않았더라면 가질 수 없었을 추억이겠지. 여행을 할 때마다 어렴풋 지니고 있던 생각과 계획을 구체화시킬 수 있었는데, 그것은 '호텔에서의 온전한 하루'가 즐거운 이유, 필요한 이유, 그 하루를 사수하기 위한 정신적 갈등에서 결국 승리하는 법이었다. 엣헴의 승리, 브라보.


여행자들에게 조식이란? 묻지 아니할 수 없다. 그 찬란하게 빛나는 순간 말이다. 그 설렘 깃든 허기짐과 적극적인 기대. 하루를 제대로 열기에 마땅한 최고의 즐거움. 스톡홀름 로컬 식재료만 쓴다는 엣헴의 조식은 몇 시간이고 누리고픈, 디너 코스를 방불케 하는 시간이었다. 로컬에서 공수한 것들로만 요리하는 식사는 고유함과 진정성이 묻어난다. 스톡홀름에 있으니 스톡홀름의 개성을 음식으로도 만끽하고 싶은 게 여행자의 큰 바람이자 기대일 터. 지역사회에 열려 있는 곳이기도 한 엣헴의 키친에서 이방인이지만 나 또한 어떤 연결성을 느낄 수 있었다. 신선한 커피와 과일, 갓 구운 빵과 각종 치즈 및 햄, 원하는 바를 섬세하게도 물어보더니 구미에 딱 맞게 요리해준 스크램블드 에그. 프랑스나 이탈리아는 저녁식사를 세시간여한다던가. 나는 조식을 세 시간 할 수 있겠더라. 어렵지 않아요, 느슨한 마음과 책 한 권 준비하면 어여쁘고 정갈한 스톡홀름식 아침 시간은 오로지 나의 것.





닮고 싶은 공간을 발견했다. 물리적 투자 대비 정신적 수확과 부가적 이윤이 높은 머무름이자 탐색의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공간을 기억할 때 그곳의 어떤 매력에 심취했었는가를 떠올리는 것뿐만 아니라 그 공간에서의 '나'는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잊지 않기로 다짐한다. 분명 한 순간쯤은 충만한 표정과 행복에 겨운 마음으로 빛나고 있었을 나, 호기심 한가득 어떤 작은 것도 놓치고 싶지 않아 집중하고 관찰하며 오롯이 즐거워했을 나를 말이다. 그 모습을 기억한다면 어디에서든 '지금, 여기'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다. 내 모습 그대로에 만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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