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초대합니다, 스톡홀름 엣헴

호텔심리학 1

by Wendy An

초대장이 왔다. 항공사 e티켓, 호텔 예약 확정 이메일, 공항 픽업 차량 예약번호 문자 메시지. 내가 나를 초대했다. 멀고 낯선 곳으로. 늘 궁금하고, 설레고, 부르기만 해도 어여쁜 그 이름, 여행으로.


메일함의 절반 이상은 스팸과 다름없지. 문자는 또 어떻고? 온갖 유혹에 스러져 결국 회원가입으로 영혼을 포획당한 마케팅의 먹잇감이 된 결론들로 한가득. 소셜미디어는 온통 나 빼고 다 잘 살고 잘 놀고 말이지. 연출이라 할지언정 그 연출력 내겐 없으니. 그러나, 이렇게 무너질 순 없지. 특별한 무언가를 기다리지 말고 내가 만들어야지. 나를 향해 진심으로 건네는 초대. 그것은, 여행. 그렇게 쌓여가는 세상 멋진 나만의 초대장, '나를 초대합니다!’.


붉은 벽 사이 세월의 흔적을 짙게 품은 목재 문이 단단히 서 있다. 오래된 것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은 묘하다. 잠시간 바라보고, 만져본다. 그래야 제대로 인사를 나누는 게 아닐까 했다. 붉은 벽돌은 어쩌다 내게 로망이 되었을까. 세계 어느 곳에서 만나도 설레고 가슴 뛴다. 저녁노을 어스름 느슨한 가을바람맞으며 바라보노라니 아름다움이 배가되는 것인가. 드디어 만났다. 나를 끌어당긴 곳, 내가 나를 초대한 이곳. 스톡홀름에서만 만날 수 있는 100년의 시간을 머금은 아름다운 저택, 부티크 호텔 엣헴(Ett hem).


스웨덴어로 엣헴은 '집'이다. 떠올리는 순간 마음에 크고 작은 파장을 일으키는 한 글자 낱말 중 가장 강렬한 느낌을 자아내는 건 '집' 아닐까. 한 걸음 들어서기도 전부터 그 의미를 생각해보게 되는 것. 집으로 들어간다, 라는 느낌과 호텔의 마리아쥬(marriage)는 과연 어떨까? 으흠, 음, 아아..괜시리 목소리를 가다듬고 벨을 누른다. 스피커 너머 '웰컴, 웬디!'를 외치는 누군가의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반갑다. 나의 도착이 오늘 그들의 마지막 미션일지도. 미션 컴플릿! 묵직한 문을 열고 들어서자니 금세 누군가가 나타나 짐 옮기는 것을 도와주며 쿨한 미소를 건넨다. 이름이 왠지 안나일 것만 같은 그와 악수를 나누고, 그렇게 집으로 들어간다.


호텔 안으로 향하는 돌계단을 오르기 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영혼을 빼앗긴다. 정원의 좌우편으로 마치 액자 프레임처럼 푸른 나무가 우거져 있고, 그 아래로 귀여운 원형 테이블과 포근한 의자가 몇몇 놓여있다. 이 장면이 완벽해질 수 있었던 건 테이블 곁 동그란 모닥불이었다. 정겹게도 타오르는 그 적당한 붉은빛과 따스함 곁으로 어서 다가가 여독을 풀며 느슨한 생각에 잠기고 싶더라. 그러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옮겨진 곳은 정원의 맨 안쪽 전면 유리창 안 공간에 모여있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호텔 레스토랑인 듯한 정원 너머 그곳의 온기가 내게 전해지는 것 같았다. 기다랗고 두터운 원목 테이블에 예닐곱 명의 사람들이 둘러앉아 잔잔한 미소를 띠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어디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지만 사뭇 다른 느낌의 차분한 즐거움과 미소가 고밀도로 그 공간에 서려 있다. 테이블 위 레드와인과 화이트 와인이 채워진 잔 그리고 캔들이 저마다의 빛을 내뿜으며 붉은 벽에 부딪혀 정원의 조명과 만난다. 엣헴 정원의 하늘은 오렌지빛이다.


스톡홀름과의 만남의 시작이 엣헴 정원에서 이루어진다는 건 큰 축복이었으리라. 많은 고심과 상상과 노력으로 이곳으로 나를 초대한 나여, 훌륭하다. 성급한 마음과 초조한 발걸음을 잠시 잠재우고, 움츠려 있던 몸과 마음을 녹색의 창연함과 오렌지빛 아늑함에 둘러 쌓여 늘어뜨린다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아닌가 말이다. 목적지에 도착해 몽롱한 채로 누군가와 또는 어딘가와 나누는 교감이 여행 중 가장 순수한 소통일지도.


방으로 안내받고 한동안 말없이 그곳과의 짧은 교감을 나눈 뒤 분초를 다투며 고양이 세수 흉내만 낸다. 그러고 나서 강렬한 힘에 이끌려 다시 정원으로 나온다. 흙을 밟고 나무를 만지고 자리를 잡는다. 어느 쪽을 바라봐도 좋다. 누군가의 의도로 인해 섬세하게 연출된 시선이라면 찬사를 보내고 싶다. 마치 나만을 위해 디자인된 것만 같은 그 순간의 내밀하고도 비밀스런 희열. 이 곳 이 순간에 와인에 저항할 자 있는가? 주문한 묵직한 레드 와인 한 잔이 테이블로 가져다 지고, 건네준 이의 미소 띤 인사에 더 큰 미소로 화답한다. 본격적인 탐색과 능동적인 쉼이 시작된다.


살면서 혼자인 순간에 진정으로 감사해본 적 몇 번일까, 이 순간처럼. 내게는 그 순간들 대부분이 여행 중 어느 순간이었다. 엣헴 정원에서의 한밤 중 레드와인 한 잔과 축 늘어뜨린 팔다리와 정신, 그리고 두 뺨에 내려앉는 촉촉한 푸른 밤공기와 모닥불의 온기. 지금 이대로가 좋다, 라는 그 찰나의 충만함. 그래서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늘 낯선 곳을 찾아 헤매는 나, 그 시공에서 확장시키는 생각과 경험, 그 시공에서 다시 잡아 보려는 일상의 느낌과 균형. 일상을 여행처럼 하라는 제안을 많이들 하지만 제법 색다르고 낯선 환경을 선물하지 않고서는 여행 같은 일상이 내겐 힘들겠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여행의 여정 동안 모든 일상이 낯설어서 즐겁고 때때로 영원의 느낌을 안겨 주어 행복하다. 틈만 나면 스스로를 일상의 익숙한 환경에서 꺼내어 낯설고 새로운 모험과 환경으로 옮겨놓은 후 그 의식과 행동의 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나는 누구인가, 왜 유랑하는가’를 발견하는 길이라 믿게 되었다. 그러니 나를 어딘가로 초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 자주 마땅히 초대장을 보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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