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Mad for Travel

다시, 반드시, 이 곳에 다다르길...

안녕 스톡홀름 #15

by Wendy An

아쉬움이 없을리 만무하지만 생각보단 덤덤하게 마지막 날 아침을 맞이했다. 유난스럽게 그리움을 표하고 또 달래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던걸까. 조용히 호텔 방 창밖을 잠시 내다보았다. 주말이라 더 조용하고 한적해보이는 거리. 한동안은 즐거운 여운으로 일상을 살아가겠지만 그리움이 다시 솟구쳐 올라 짙어질 때쯤 진정한 앓이가 시작되겠지 싶어 되려 담담했던 것이었을까. 이제 기차를 타고 덴마크 코펜하겐으로 넘어가 또 다른 여행의 시작을 할 것이다. 그리움이 커질 틈 없이 설렘이 자리를 잡아 마음이 말랑해질 겨를이 없었을지도.

IMG_3754.jpg?type=w773

오전10시즈음 코펜하겐행 기차표 예매를 해놓았기에 부지런히 체크아웃 준비와 패킹을 마치고 여유로이 조식을 즐겼다. 역시, 이 기쁨 비할 데가 없음 :)

IMG_3755.jpg?type=w773

요거트도 종류별로 큼직하게 넉넉하게. FRUKT-과일, Lātt-저지방, Vanilj-바닐라. 내 선택은 FRUKT(프룩트)였다. 시크하게도 담겨 있군, 후훗.

IMG_3756.jpg?type=w773

스톡홀름을 이곳 저곳 누비고 거닐기 위해 이른 아침 부지런히들 나와 아침을 즐기는 여행자들의 모습은 언제봐도 생기가 넘친다. 동질감이 들어서일까, 다국적 여행자들의 모닝 눈인사는 마치 우리들만의 암호인 듯 더 정겨운 것 같고, 더 비밀스러운 것만 같다.

IMG_3757.jpg?type=w773

욕심의 결과물, 짜잔. 베이컨 & 에그, 커피, 브레드 & 연어 스프레드, 앙증맞은 버섯과 구운 토마토 그리고 토핑 잔뜩 요거트까지. 6시간 기차 여행 끄떡없이 성실히도 준비 완료 ^^

IMG_3759.JPG?type=w773

연어 스프레드가 기대와는 달리 내입맛엔 너무 짠 탓에 당황스러움을 감출 길이 없었지만 디자인과 컬러 때문에 갖고 싶었다. 물론 고스란히 제자리에 잘 두고 왔지만.. 후훗.

IMG_3758.jpg?type=w773

밤엔 bar로 변신한다는 호텔 레스토랑. 그래서 그런지 아침에도 오묘한 분위기를 풍긴다. 탐나는 조명. 북유럽 인테리어는 99%가 조명인 듯하다. 이 느낌만 모조리 흡수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IMG_3760.jpg?type=w773

IMG_3761.jpg?type=w773

IMG_3762.JPG?type=w773

걸어서 10분만에 중앙역 도착. 센트럴 근처 호텔로 이사와 준비하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열차 시간표와 플랫폼 번호 체크 완료!

IMG_3763.JPG?type=w773

아, 정말 가는구나. 스톡홀름과는 이별이지만 코펜하겐과는 첫 만남. 아쉬움과 설렘이 마구 섞여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하는구먼. 이 매력 넘치는 도시, 다음 번엔 꼭 그와 함께 손잡고 거닐어야지. 더 찐하게 이 도시와 사랑에 빠져야지.

IMG_3768.JPG?type=w773

기차에 올랐다. 옛스러운 분위기가 너무나 아름다운 기차. 마치 올드 무비의 한 장면 속에 들어와 있던 느낌. 서울에서 미리 예매해두었던 덕분에 1등석으로 할 수 있었다. 부지런함은 여행자의 덕목이려니. :) 좌석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우리 칸에선 내가 1등으로 탑승했군... 6좌석이 한 칸에 있다.


https://www.sj.se/


3개월 전부턴 티켓이 오픈되니 미리 예약할 수록 저렴하게 그리고 원하는 시간대에 기차표를 예매할 수 있다. 가격과 시간을 모두 만족시키기 위해선 조금 서두르는 게 정답인 듯!

IMG_3774.JPG?type=w773

우리칸이 다 찼다. 맥북으로 열심히 업무를 보는 듯했던 노신사를 빼면 노부부와 중년의 남성 그리고 나였는데, 모두 조용히 독서를 했다. 평화롭기 그지 없었던 5시간남짓의 여정.

IMG_3767.JPG?type=w773

기차는 드디어 출발했고, 나는 그리운 그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편지를 쓰던 도중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바람에 내 좌석 밑 손과 팔이 들어갈 수 없을만한 홈에 그만 만년필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혼자 낑낑대며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으니, 조용히 책을 읽고 있던 우리칸의 모든 이들이 도와주겠노라며 나서주었다. 스윗! Tack! Tack!

아무도 해결할 수 없었던 우리는 결국 지나가던 승무원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가 도와준 덕분에 만년필을 찾을 수 있었다. 별 것 아닌 일로 모두에게 방해를 한 셈이 되었는데, 끝까지 미소를 잃지 않고 도와준 이들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달리 고마움을 표현 할 길이 없어 Pärlans(펠란스) 카라멜과 본마망 캔디를 나눠 먹었다. 이마저도 없었다면 너무 미안했을 것 같았는데, 다행이었다. 다시 편지쓰기에 집중 ^^

IMG_3778.JPG?type=w773

IMG_3786.JPG?type=w773

1등석을 예매하면 식당칸에서 커피와 시나몬롤을 먹을 수 있는 쿠폰이 티켓에 포함돼있다. 기차가 달린지 1시간여쯤 지났을 때 잠시 refresh 시간을 갖기 위해 식당칸으로 향했다.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밖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스톡홀름과 이별을 나눴다. 기차를 타고 국경을 넘으려니 마치 시간여행자가 된 기분... 만감이 교차하던 그 순간에 마침 커피와 시나몬롤이 좋은 벗이 되어주었다.

IMG_3789.JPG?type=w773

서울에서의 일상을 잠시 접고 멀리 날아와 스톡홀름에 다다랐을 때 여행을 위한 여행이 아닌, 휴가를 위한 휴가가 아닌, 보이기 위한 관광이 아닌, 내면에서 진정으로 원하는 쉼과 여행의 어느 중간 즈음에 머물고 싶었다. 다를 것 없는 일상인 듯한 하루하루를 낯선 도시에서 느리게 보내고 싶었다. 작은 것에 다시 감동하고 싶었고, 그리움에 휩싸여 소중함을 깨닫고 싶었고, 분주함에서 벗어나 느림의 미학을 배우고 싶었다. 눈앞의 모든 것들을 있는 그대로 보고 느끼고 싶었고, 내 안에 가득한 모든 고정관념과 선입견을 하나씩 버리는 연습을 하고 싶었다. 나 스스로에게 가했던 수많은 강요와 제약으로부터 자유하고 싶었고, 발길 닿는 대로, 마음 향하는 대로 거닐고 싶었다. 특별한 계획을 세우기 보다는 큰 계획 안에서 무계획으로 구름처럼 둥둥 떠다니고 싶었다. 일주일 스톡홀름에서의 여정은 낯설고 매력적인 도시에서의 특별하면서도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바라던 대로 거닐었고 후회없이 부지런했고 후회없이 게을렀다. 또 다시 내 마음 깊은 서랍 속 살며시 넣어 둘 추억을 만들어 간다.


이젠 정말, 안녕 스톡홀름!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또 다시 쇠데르말름, 스톡홀름 피크닉은 계속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