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gge Copenhagen # 1
스톡홀름에서 기차에 올라탄 지 약 6시간이 지나고 나니 덴마크 코펜하겐에 입성했다. 그 흔한 여권 검사조차도 없이 기차 안에서 국경을 넘었고, 코펜하겐 중앙역(København H)에 다다랐다. 설렘과 기대가 폭발하는 흥분보다는 잠잠하게 seize the moment를 하고 싶었다. 이 곳에서의 한 주는 과연 어떨까, 란 생각과 알 수 없는 벅찬 감동이 밀려와 발걸음이 가볍다 못해 빨라졌다.
Hej, Copenhagen!! :-)
여행자들은 언제 어디서든 무조건 반갑다. '우리'라고 묶이는 것 같아서 그리고 코펜하겐을 거닐며 한 번쯤은 마주칠 수도 있을 것만 같아서... ^^
역에서 바깥으로 나서려니 맞은편 티볼리(Tivoli) 공원이 보인다. 아, 코펜하겐 맞구나! 왔구나! 싶었다. 스위스 마테호른을 옮겨 놓은 모습이 참으로 유쾌하고 사랑스럽다. 내게 환영인사를 해주는 듯한 저 자태가 지금 다시 봐도 어여쁘다. 중앙역 바로 앞에 티볼리 공원이 있는 것도 매력 만점. 티볼리 공원은 며칠 내로 꼭 발길 닿으리라, 다짐하고 우선 호텔로 향한다.
Hotel Alexandra
H. C. Andersens Blvd. 8, 1553 København V, 덴마크
중앙역에서 10분 정도 열심히 걸어오면 만나게 되는 100년된 부티크 호텔 '호텔 알렉산드라(Alexandra)'. 스톡홀름 엣헴(ett hem)과 함께 여행 전 나를 가장 설레게 했던 건 바로 이 곳이었다. 100년을 이어 온 정신과 모든 객실을 다른 디자이너의 가구와 컨셉으로 꾸며두어 진정한 덴마크 디자인과 감성을 온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란 생각이 들어 비용의 부담을 기꺼이 감행했던 선택이었다. 몇 달이 지난 지금도 후회 없던 선택이라 여겨지는 곳. 그만큼 그리움이 짙은, 다시 머물고 싶은 곳이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단숨에 도착했다. 발걸음에 서린 즐거움 때문이었으리라. 우아하고 고풍스러운 묵직함이 첫인상, 호텔 알렉산드라. 앞으로 3박 4일 잘 부탁한다, 라고 인사하는 마음으로 들어섰다.
체크인을 마치고 4층으로 올라갔다. 어두운 카펫과 all white 벽과 문의 컬러 대조가 심상찮다. 묘한 세련미가 느껴지는.... 오래된 것, 지켜진 것의 위엄은 이런 것일까. 무심코 놓여져 있는 듯한 의자 또한 심상찮다. 전세계가 열광하는 '덴마크' 가구 아닌가..
스톡홀름 엣헴에 이어 역시나 탐나는 열쇠. 묵직한 세월의 흔적이 깃들어 있는 듯. 호텔 알렉산드라 매력의 모든 게 이 작지만 묵직한 열쇠 하나에 모두 농축돼있는 것만 같았다. 방 열쇠로 아우라를 뽐낼 수 있는 호텔이 전세계에 몇이나 될까.
방 안으로 들어섰다. 싱그러운 초록 화분이 눈에 띈다. 블랙 & 화이트의 조화가 어색하지 않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풍기는 듯한 느낌. 아늑함과 세련미가 동시에 느껴졌다. 군더더기 없는 가구배치와 여백이 있어 여유로움이 깃든 공간의 규모가 참 좋았다. 아름다움과 실용성을 놓치지 않은 느낌. 두 마리 토끼는 덴마크에서 잡히는가보다.
저녁 6시즈음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창밖은 마치 해가 지지 않을 거라는 듯 맑고 화창한 오후 어느 즈음인 듯한 모습을 자아냈다. 스톡홀름과는 또 다른 느낌의 건축양식과 길거리 풍경. 호텔방 창문이라는 프레임으로 잠시 바라보는 코펜하겐의 일부이지만 이 도시도 어쩌면 나와 케미가 폭발할 지도 모르겠구나, 란 흐뭇함이 올라왔다. 아무렴 어떠하리 싶지만 뭔가 이 도시엔 더 잘보이고 싶은 느낌?!이랄까...
점심을 skip한 바람에 허기를 달래야만 했다. 우선은 짐만 방에 놓아두고 호텔을 잠시 구경하고픈 마음에 4층에서 로비까지 아주 찬찬히 걸어 내려갔다. 카펫이 씌워진 계단도 우아하다. 오래된 느낌이 물씬 나는 원목의 손잡이와 벽에 걸린 그림의 조화가 따스하다. 역시 북유럽. 조명과 그림과 흰 벽의 어우러짐이 나를 압도했다.
층마다 계단과 복도의 컨셉이 다른 듯. 더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또 다른 느낌이 펼쳐진다. 창밖 건너편 아파트마저 꽤 매력적이다.
무심하게도 올려져 있지만 철저히 계산된 컨셉일까? ^^ 매거진과 화병과 테이블이 참 쿨하게도 멋지다.
호텔 알렉산드라 1층에는 코펜하겐에 여러 곳 있는 유명한 베트남 퀴진 lêlê가 있다. 이른 아침에는 조식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된다고 하고, 점심과 저녁에는 베트남 메뉴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으로 호텔 투숙객 및 외부 고객들에게 모두 개방된다.
날이 너무 좋아 주문을 마치고 야외 공간으로 향했다. 이 곳도 마치 호텔의 비밀정원 같은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로비에 비치돼있던 호텔 알렉산드라 신문. 호텔에 대해 속속 알 수 있는 양질의 내용들이 담겨 있었다. 저녁 식사 동안에 good buddy가 되어주었다.
에그롤과 쌀국수로 따스하게 허기를 달랬다. 제법 맛있게 전부 먹었다. 도착하고 여독을 풀기에 너무나 안성맞춤이었던. 부티크 호텔이니 가능했을 조합이겠지. 호텔과 베트남 퀴진이라... 꽤 매력적인 조합이라 생각됐다. 한국인 여행자에게 '국물'이 있는 음식이란 여행 중에는 정말이지 Soul Food 아니겠는가.
따스하고 맛있었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 호텔 로비 탐험. 정말이지 이 곳은 가구가 풍기는 위엄과 아우라가 어마어마하다. 덴마크 의자는 가구라기보단 예술에 가깝겠지. 가만히 놓여져 있을 뿐인 저 의자와 테이블은 왜이리도 범상 찮아 보이는 건지...^^
여러 읽을거리와 코펜하겐 지도 그리고 각 지역 및 공연 스케줄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안내서가 비치돼 있었다. 매우 유용하게 사용했던!
어쩜 이리도 미소가 지어지는 공간을 구성했을까. 푸르름과 아늑함과 우아함이 공존한다. 창문곁 푸르름은 호텔임에도 '집'의 느낌을 주기 위함이었을까. 그렇다면 성공이다. 여행자에게 호텔이 호텔같지 않게 느껴진다면 조금 더 몸과 영혼을 편히 쉬게 할 수 있겠지...
저녁식사와 호텔 구경을 마치고 올라와 잠시 티타임을 가졌다. Jona언니가 선물해준 본마망 마들렌 곁들여 방에 웰컴티로 비치돼 있던 블랙티 한 잔으로 여유를 가져본다. 블루투스 스피커로 뮤직 큐. 무척이나 덴마크스러운 아름다운 공간에서, 어여쁜 조명 아래 예술감 가득한 Acne 잡지를 보며 티를 홀짝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 다른 게 아닌, 이렇게 일상을 여기서도 살아보는 거다, 라는 생각. 늦은 저녁 재즈 클럽으로 향 할 계획을 앞두고 짧게 그렇지만 강렬하게도 누렸던 쉼과 여유의 시간.
그 순간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장면과 사실에 대한 기억에서 수반되었던 강렬한 감정이 함께 기억된다는 건 인간이 가진 특권이겠지. 뇌해부학적으로 보면 실제로 기억의 저장소인 해마와 감정을 담당하는 편도체가 짝궁처럼 곁에 붙어 있다. 이유가 있었구나 싶은... 여행을 추억하며 사진만 바라봐도 그 때의 감정이 솟구치는걸 우리 모두는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다. 여행은 전에도 중에도 후에도 강렬하다. 코펜하겐을 추억할 수 있어 행복한 지금 이 순간. 이렇게 또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