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We Gather 2

The Art of Gathering 2

by Wendy An

지난가을 카카오페이지 인터뷰 연재 '멋있으면 다 언니(이하, 멋언니)' 전편을 맛깔나게 읽었습니다. 맛이란 게 참으로 다양할 텐데, 오묘한 감칠맛이 입안 가득 감도는, 아주 긴 코스의 최상위 오마카세를 경험하는 기분이었어요. 거기에 회와 마리아쥬가 무척 좋은 스카치 한 잔 곁들이는 듯도 했는데, 이 느낌은 인터뷰어 황선우 작가님의 주옥같은 질문과 다정한 덧붙임의 말 덕분이었지 싶어요. 그중 이수정 교수님 편이 유독 기억에 남는데요. 이수정 교수님은 마침 현재 소속 학교의 취업 지원 처장이시라고 하네요. 코로나로 구인 공고 자체가 없는 상황에까지 이른 데 대한 고충을 묻는 물음에 답하신 내용이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정확하고도 실질적인 격려로 기억돼 나눠봅니다.

(...) 내 인생의 경험으로 봤을 때 해줄 수 있는 이야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은 지나가더라는 거예요. 나도 다 포기해야 할 것 같은 순간이 있었지만 그날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의 최선이 무엇인지를 생각했어요.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르지만 준비가 되어 있어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준비가 뭘까 하는 고민과 노력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불안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거예요. 오히려 불안에 휩싸여서 아무것도 못하는 상황이 인생을 망칠 수 있지. 불안한 가운데라도 계속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여러 가지를 도모하다 보면 언젠가 예상하지 못했던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거라 봐요. (...) 나 역시 중간에 한참 돌아와서 결국엔 내 자리를 찾은 경험이 있고, 필요하다고 느꼈을 때 방향을 틀면 돼요. 다만 주저앉아 불안해하면서 포기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게 저에게 중요한 깨달음이었어요. 누군가에게는 기회가 좀 빨리, 혹은 좀 늦게 오기도 하는 거죠.


저도 참 불안하거든요, 실은. 적을 두고는 있지만 프리랜서 계약 헤드헌터이고 팬데믹 여파도 적잖이 있어 계획보다 조금 이른 독립을 미리 체험하고 있는 셈이랄까요. 한 60%는 불안과 혼란으로 뒤섞여 있었고, 나머지 40%는 막연히 제 경험과 경력을 믿어보자, 라는 식으로 넘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대치 않게 명쾌해지더라고요. 그리고 저 자신에게 물었죠. '내가 불안에 휩싸인 채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가?'라고요. 그런데 그렇지 않더군요. 어떤 것도 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어려운 때를 보내고 있다면 할 수 있는 건 '공부'밖에 없다, 란 생각이 스쳐 지났던 찰나가 있었어요. 그 찰나가 여운으로 남아 부리나케 매거진 GRWM을 열었고, (제게는 나름) 과감한 기획도 도전 중에 있습니다. 결과는 시간이 말해주겠지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방향을 틀면 되는 타이밍인가 싶어요. 한 번씩은 저 멀리 너머를 바라보되 대부분의 에너지는 '오늘의 삶'에 쏟아야겠습니다. 오늘의 최선으로 글을 쓰고, 가능할 경우 경험과 지혜를 종종 나누고, 격려를 주고받는 것에서부터요. 오늘 글은 불안한 나와 우리를 멋언니의 경험과 지혜를 빌려 응원하며 시작하고 싶었어요.


자, 지난주에 이어 이번 주도 모임을 예술로 만들기 위해 공부하고 고민해봐야죠! 아니, 예술해봅시다. 기획부터 마무리까지, 모임을 예술로 만들어 가는 여정에 더 깊숙이 들어가 보죠.


p.111-118
자유방임은 배려를 가장한 이기주의다. (...) 나는 언제나 회주(host)에게 자신에게 권력이 주어졌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배의 조타륜에 손을 얹으라고 조언한다. 그러나 그런 내 조언은 언제나 무시당한다. (...) 손님은 일단 모임이라는 당신의 왕국에 들어서기로 선택한 이상 당신의 통치를 받고 싶어 한다. 배려하고, 존중하고, 세심한 그런 통치를 기대한다. (...) 권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냥 다른 누군가가 권력을 쥘 가능성이 생겨날 뿐이다.


첫째로 명심해야 할, 어쩌면 가장 중요한 사항 아닐는지요. 이점을 놓치게 되면 물리적 거리보다 해결하기 어려운 '심리적 거리'가 생겨나는 것이죠. 결국 사람들은 투덜대게 되는데, 저자는 '투덜대기'는 회주가 제대로 통치하지 않아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손님이 선호하는 무기라고 하네요. 지난날 손님으로서 참여한 몇몇 모임과 미팅의 에피소드가 떠오르면서 실로 공감이 되는 바입니다. 회주로서 쥐고 가야 할 권력을 명확히 정의하고 적절히 행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다짐 또 다짐.


p.121 사람들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모이라고 설득할 생각이라면 그 방식을 강제하고, 그 방식이 실패하면 손님을 구제해야 한다. (...) p.123 강제하는 권력이 없다 보니 회의는 비공식적인 권력, 즉 회사에서의 경력, 사회적 명성, 드센 성격 같은 것에 점령당했다.

(...) 더 좋은 모임으로 가는 길에 놓인 중요한 발판 중 하나는 당신에게 주어진 권력의 필요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모일 거라면 모여라. 모임을 주재하겠다면 주재하라. 한 시간 또는 하루 동안 왕국을 세우기로 했다면 그 왕국을 통치하라. 자비로운 통치자가 되라.


지난 시간 공유했던 브레네 브라운과 프리야 파커의 대화가 가득 담긴 팟캐스트에서 '자비로운 권위(generous authority)'가 강조되었는데요. 책에서도 강조하기를, 권위의 정당성은 '자비로움'에서 나온다는 것이죠. 그 목적은 남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를 쟁취하는 것이고요. 결이 다른, 점잖은 권력 행사네요. 저자는 이 자비로운 권위의 목표를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p.126-148
첫째, 손님을 보호하라. 요컨대 손님을 보호한다는 것은 멋진 집단 경험을 누릴 권리를 그런 경험을 망칠 권리보다 더 위에 두는 것을 말한다. 회주는 몸을 사리지 말고 기꺼이 나쁜 경찰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자비로운 권위다.

둘째, 평등한 관계 보장. 자기 모임에서 권력 역학 관계를 파악하고 그것에 대처할 의지만 있으면 된다.

셋째, 손님들을 연결하라. 모임이 시작할 때는 회주와 손님 간 연결점이 손님과 손님 간 연결점보다 많았더라도 모임이 끝날 무렵에는 그 수가 역전되어야 한다. (...) 집단에서 모두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생각하면 결국 모두의 필요가 채워집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만 생각하면 계약을 깨는 게 돼요.


매거진 글쓰기 덕분에, 그리고 기획 중인 사안이 있어 책을 재독 삼독 하다 보니 저만의 '모임을 예술로 만들기 위한 노트'가 생겼습니다. 뇌리에 깊이 새기려는 목적으로 핵심을 옮겨놓은 노트이자 각 핵심을 참고하고 지키는 선에서 어떻게 내가 기획한 모임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한 흔적을 메모하는 노트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활용하는가는 진정 제 몫일 것이기에 두렵고 떨리네요. 동시에 설렘도 가득 피어오르네요. 방송에서 또는 강연에서 진행자/연사들이 '큐카드'를 들고 진행/강연을 하듯 모임의 회주에게도 때마다 따르고 참고해야 할 '자비로운 권위'의 실행 버전을 위한 큐카드가 있어야겠다 싶고요. 메모와 정리가 정교화될수록 결국 결과물은 그런 모양을 띠게 되겠지요? 가야죠, 달려야죠. 창의력, 기획력, 실행력, 그리고 용기여... 내게로 오라!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규칙'이 있어야겠지요. 프리야 파커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에서 유용한 것은 바로 '명시적인 임시 규칙'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명확한 규칙이 모두에게 정확히 공유된다면 그 규칙을 준수함으로써 모두를 위한 결과를 내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습니다.


p.174-175
에티켓이라는 표준이 고정적이고 위압적이고 배타적이라면, 임시 규칙은 이런 특징들을 완전히 뒤집을 힘을 지니고 있다. 더 실험적이고, 겸손하고, 민주적이고, 무엇보다 만족스러운(!) 모임을 만들어 낼 잠재력이 있다. 에티켓의 목표가 고정된 규범을 유지하는 것이라면 임시 규칙의 목표는 이런저런 시도를 해 보는 것이다. (...)
에티켓은 엄격한 통제를 권하지만 임시 규칙이 적용되는 모임에서는 대담한 도전과 실험이 허용된다. 규칙은 임시로 허구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 그 세계는 일상적인 모임보다 훨씬 더 재기발랄해도 괜찮다. 규칙이 일시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모두가 그 규칙에 기꺼이 복종하기 때문이다.


임시 허구 세계라...바로 뇌리를 스치는 건 단연 여행이네요. 일을 하는 동안 늘 날이 서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주로 적정 수준의 텐션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는 날들을 보내기 때문인데요. 스위치 on/off를 켰다 껐다 하듯 나라는 사람의 모드와 상태를 자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니 휴가=여행에서만큼은 '허구 세계'로 들어가듯 낯선 환경을 갈망하게 되는데요. 내 안의 여러 '나'중 하나의 다른 '나'를 꺼내는 것이기도 하지만 저는 먼 나라로 여행을 가면 조금은 다른 '나'라는 정체성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군요. '허구의 나'에 불과할지라도, 단 며칠일지라도 대담한 도전과 실험을 하듯 여행을 하면 분명 더 즐거웠고요. 그 도전이란 게 딱히 특이하거나 특별하진 않았지만 내 속에 혼재하는 많은 나를 여럿 꺼내어 맘껏 펼쳐보는 게 짜릿했다랄까요.


(제가 2021년 상반기 내 오픈 목표로 기획하고 있는) '캠프'라는 게 여행의 기분을 묘하게 낼 수 있을 모임이자 활동이란 생각에 마치 여행 온 듯, 서로가 서로에게 여행지에서 만난 특별한 인연인 듯 연결해줄 수 있다면 유의미한 관계도 시작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캠프 사이트로의 입장부터 퇴장까지를 여행의 기분을 낼 수 있도록 설계해보려고요. 여행이니만큼 커리어 지도(map)도 만들고, 낯선이들 사이에서 빠르게 마음을 열어젖히고 커리어 고민 또는 목표에 관해 소통하며 새로운 네트워크도 찐으로 쌓고 말이죠. 명함도 손수 만들어 교환도 하고, 다음 여행(커리어 개발, 이직, 전직 등)을 위한 계획도 그려보는 거죠. 커리어 개발 또는 전환이라는 게 얼마간은 '다른 나'로 살아봤으면 하는 내밀한 욕망을 실현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 여행과 참 닮은 것도 같고요.


이러저러한 생각의 타래로 연결되어 요 며칠 문득 스친 생각을 붙잡고 지어본 가제가 하나 있는데요. 바로, '본격 간극 타파 여행, 커리어 디자인 캠프 'SELF''예요. 너무 길어서 정말 가제로의 역할만 하고 끝날 테지만요. 우리는 종종 실제의 자기와 이상적인 자기 사이의 간극 때문에 일과 삶에서 제법 괴로워하죠. 완전해지고 싶지만 녹록지 않고, 시도조차 완벽을 기하다 보면 금세 지치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가 '불완전함의 미학'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됐습니다. 우리 각자는 자신에게 딱 맞는 포지션이 삶에서도 일에서도 분명 있을 테니까요. 그 지점은 분명 나에게 편안함과 자유함을 안겨줄 테고요. 그래서, 단 며칠이라도 불완전한 나로 느슨하게 유영하는, 떠도는 즐거움으로 물 흐르듯 흘러가는 여행과 닮은 캠프를 만들자, 란 생각으로 어느 날 깊은 밤 혼자만의 기획 파티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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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오스트리아 빈 여행 중 발견한 공간이 있습니다. 공간의 이름이 수퍼센스(Supersense)인데요. 공간에 들어서면 18세기에 들어선 묘한 기분이 드는데, 아니나 다를까 세상의 모든 '아날로그'가 모여있던 곳이었습니다. 실은 그 전해에도 빈 여행을 했었고 수퍼센스에는 두 해 연속 방문을 했었어요. 그야말로 제 마음을 제대로 훔친 아날로그 공간이죠. 그 공간에서 만난 '한마디'가 있습니다. 바로 'Trust your senses'예요(↑↑). 당신의 감각을 믿어보라, 라는 음성지원이 되는 것만 같았어요. 이제는 정말 그러고 싶다, 나를 그리고 내 감각을 믿어주며 앞으로 더 나아가고 싶다,라고 결심하게 됐던, 잊을 수 없는 찰나의 순간이었죠. 두 번의 비엔나 여행 직후로 가슴속에 깊이 새긴 한마디입니다. 그래서, 믿어보려고요. 내 감각을 믿어보면서 그 믿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일도 공부도, 기획도 실행도 가보려 합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나와 내 감각을 믿어보는 2021년 보내보는 거예요.


오늘, 목요일, 2020년 마지막 날이네요. 마지막 날을 글로 마무리하네요, 뭔가 기분이 좋고 그렇습니다. 코로나를 제외해도 나름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살았던지라 '살아남았다, 고생했다, 나여'란 한마디가 불쑥 뱉어지네요. 여러분도 살아남았죠? 잘하셨어요, 고생하셨어요. 자랑스럽고 멋져요. Life goes on. 살아남기에도 버거웠던 2020년은 이제 뒤로하고, 많은 순간 충만히 '사는', 나를 향한 그리고 내 감각을 향한 믿음이 폭발하는 2021년 살아봐요, 우리! Happy New Year Y'all.


Stay tune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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