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시작돼 빈에서 꽃 피운 커플 여행의 서사
짐을 잃어버렸다. 아니, 짐이 사라졌다. 배기지 클레임 창구에서 마지막 트렁크가 나올 때까지 컨베이어 벨트를 뚫어져라 응시했지만 짐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정말로 일어나는구나’라는 말이 육성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어떤 일이든지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몸으로 깨달은 처절한 순간이었다. 그런데 내 짐이 아니었다. 함께 베를린 여행을 다녀온 연인의 짐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베를린의 날씨와 베이징 환승이 그를 힘들게 했는데 청천벽력이었다. 짐이 우리와 함께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히 인정해야만 했던 그 순간 차라리 내 짐이길 바라는 심정이었다. 내게 일어난 일은 아프지만 꿀꺽 삼켜버리고 쿨한 척해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연인에게 일어난 일은 순도 높은 공감도 교감도 어려운, 그야말로 어찌할 바를 알 수 없어 난감한 데다가 가슴 한편이 쓰라렸다. 다시금 배운 삶의 진리 중 하나 ‘직접 겪지 않은 일은 안다고 생각하지도, 말하지도 말자’.
지난 2017년 가을, 연애 2년 차 커플이 함께하는 첫 여행은 예상보다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지척에서 회사를 다니고 있던 행운으로 매일 만나며 고밀도 고농도의 날들을 함께 보냈던 참이었다. 그랬기에 내면 깊숙이 커플 여행에 대한 자신감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것이다. 미련했고, 오만 방자했다. 당연하지만 혼자 하던 여행과는 차원이 달랐고, 여행 준비에 필수적으로 선행돼야 하는 건 ‘나는 어떤 사람이고,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숙고와 대화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1년 반이 넘어가도록 매일 했던 게 대화라고 생각했었는데, 서로를 더 깊이 제대로 알기 위한 것이었는지 반성하고 성찰했다. 결론적으로는 서로를 더 ‘잘’ 알게 된 큰 수확이 있는 여행이었다. 여행 전까지 서로 주고받은 대화가 머리로 얻은 데이터였다면, 여행에서 나눈 대화와 감정 그리고 맞닥뜨린 낯선 모습은 몸으로 체화시킨 값진 경험이었다.
여전히 지난 첫 여행의 경험은 말로 다 표현하기가 어렵다. 가슴으로 그리고 몸으로 ‘느낀’ 체험적 언어로 가득했던 여행이었기 때문일까. 고강도의 고민과 내적 갈등이 적잖았지만, 반면 서로에 대한 ‘감’, 즉 중요한 데이터를 얻어낸 귀한 시간이기도 했다. 베이징 환승을 견디며(즐기기엔 너무 괴로웠다) 도착한 10월 초의 베를린은 회색빛이었다. 베를린이 회색빛인 건 이상할 게 없었지만 이례적으로 가을 태풍이 오고 있다는 거 아닌가. 추적추적 내리는 비와 함께 여행을 하며 며칠이 지날 때까지 연인에게 비가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다. 당시 내게 ‘비가 내리는 날씨’는 약간 아쉽지만 내 몸이나 기분에 딱히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었다. 여행에 걸림돌도 아니고 방해 요소도 아닌 그저 받아들이면 되는 것쯤이었다. 그런데 연인에게 비는 체질적으로 고통스러운, 그러니까 체력 및 기분 저하가 동반되는 큰일이었다.
돌이켜보면 그가 비를 힘들어하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가 부러 내색한 적 없었고, 얼마나 힘든 건지 자세히 목격해 본 적이 없었을 뿐. 나는 내가 가진 프레임대로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알지만 몰랐던 것’이라는 생각이 훗날 들더라. 말인즉슨, 날씨가 어떻든 기분이 어떻든 여행을 온 이상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것’을 디폴트로 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나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간 해온 여행이 건네준 선물이기도 했고, 기본 성정이기도 했다. 역지사지를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는 ‘왜 함께 온 여행인데 결을 맞춰주지 못하는 걸까’라는 생각에 갇혀 있었다. 내용만 다를 뿐 그도 같은 생각으로 서운하지 않았을까. ‘나는 비 오는 날씨를 괴롭게 견뎌야 하는 체질인데 왜 이해해주지 않는 걸까’라고 말이다. 충분하지 않았을 분 배려하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다. 각자의 괴로움과 서운함을 그대로 지닌 채 서로를 우선시하고 있었으니까.
연애 초반부터 한마음으로 정해둔 ‘규칙’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싸워도 손잡고 다니기’였다. 여행 전까진 싸울 일이 없었던 터라 과연 우리가 규칙을 지킬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싸운 건 아니지만 마음 한구석 어딘가 서늘해진 채로 비바람이 부는 베를린을 거닐 때 단 한 번도 손을 놓지 않던 그에게서 우리 사이의 희망이 보였달까. 차가워진 마음은 손에서부터 전해진 온기로 데워졌다. 당혹감과 서운함은 서로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는 깨달음으로 안개가 걷히며 허심탄회한 대화가 시작될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얼마나 생경한 풍경이자 동행이었을까. 함께하는 여행과 베를린을 향한 설렘과 호기심만큼, 아니 그 이상의 낯섦과 불편함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걸 미리 생각해보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사랑에 빠져있었던 걸까. 소설이나 영화 속에선 죽음 또는 운명이 연인 간의 사랑을 갈라놓는데, 우린 날씨가 갈라놓는 건가 싶어 피식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날씨고 상황이고 말고 간에 뭐니 뭐니 해도 기승전 ‘사랑’ 아니겠나.
10월의 가을에 베를린으로 찾아온 태풍이 야속하다 싶기만 했는데 서로를 더 깊이 알 수 있는 기회가 된 건 틀림없었다. 위기는 기회다. 위기의 가면을 쓴 그 기회를 ‘기회’로 인식하고는 ‘함께’ 노력했다는 게 중요했다. 일방적인 인내나 배려가 아닌, 상호보완적으로 ‘협력’ 했다는 게 다행이었고, 감사했다. 둘 이상이 모여 함께 하는 건 무엇이든 ‘팀 플레이’다. 그게 일이든, 연애든, 여행이든 말이다. 영화에서 이따금씩 연애 중인 커플이나 부부가 하는 대사 중 애정하는 한마디가 있다. 늘 격하게 동의하며 공감하곤 하는 그 대사는 바로 “We do make a good team.”이다. 불균형보다는 균형이 낫고, 비대칭보다는 대칭이 나은 법. 노력도 협력도 딱 맞아떨어지게 50대 50으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리듬감을 타며 ‘주거니 받거니’는 할 수 있다. 서로 에너지 레벨도 늘 다르다. 그러니 어떤 날엔 에너지를 좀 더 가진 사람이 일정도 분위기도 이끌어 가는 거다.
비와 습도로 점철된 날들 사이사이로 잠깐씩 ‘비가 내리지 않는’ 축복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 찰나의 시간 동안의 여행은 완벽에 가까운 행복의 향기로 가득했다. 그 사이사이에는 탁월하다 못해 경이로운 베를린의 맥주와 커피가 있었고, 아름다운 호텔과 베를린 필하모닉이 그리고 학센과 햄버거가 있었다. 한 사람의 애호를 위해 함께 보내는 시간은 인내라기보다는 차라리 ‘발견’에 가깝다. 연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에 반응하고 감동하며, 눈빛이 반짝이는가를 더 세밀하게 알 수 있으니까. 우리는, 누구든지, 잠깐이나마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즐거워하는 순간을 만난다. 그 순간 누군가가 꼭 곁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사랑하고 아끼는 이의 눈빛을 마주할 수 있다는 게 거짓말처럼 순수한 환희의 감정으로 복받칠 때가 있다. 그 지점에서 살며시 몰래 다짐하곤 하는 거다. 이 모습을 또 보고 싶으니 그가 좋아하는 것을 또 함께 해보겠노라고.
결국 베를린은 마지막날 밤비행기를 앞두고 있는 우리에게 빛나는 태양과 따스한 오후를 선물로 건네주었다. 회색빛으로만 기억할 뻔했는데 제법 괜찮은 여운을 안고 올 수 있었다. 이쯤이면 잃어버린 짐이 궁금해질 타이밍인가? 짐은 영원히 사라졌다. 항공사로부터 보상은 약간 받았지만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소식은 없다. 나중에 그는 짐 분실이 가장 속상했던 연유가 내가 지난 북유럽 여행에서 사다준 셔츠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함께 속상하긴 했지만 사랑스러웠다. 짐은 잃었지만 서로를 먼저 생각했던 마음은 얻은 사건이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적잖은 충격과 짜릿함을 주었고, 한마음으로 연대하는 팀워크도 맛보며, 외줄 타는 듯했지만 결국 땅에 발을 딛고 돌아와 단단해질 수 있었던 첫 여행이었다. 그러고 보면 영원히 잊을 수 없을 도시이긴 하지만 당분간(실은 꽤 오랜 시간) 베를린과 베이징은 우리에게 여행 금지국으로 자리 잡았다.
연인은 왜 사람이 여행 와서 하루에 2만보를 걷는 거냐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항변하듯 물었다. 힘든 기색 전혀 없이 내 곁을 지키며 걷던 그였다. 걷지 않으면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완벽한 어느 가을날 빈에서의 오후. 지난 첫 여행에 비하면 더할 나위 없이 진화하고 발전한 우리 사이 그리고 우리의 여행이라고 생각하며 취해 있던 내게 각성의 순간이 또 찾아온 것이다. ‘아차, 내게는 당연한 일이 그에게는 당연할 수 없다는 걸 또 간과했구나’ 싶어 더 이상 걸을 수 없거나 쉬고 싶을 때 꼭 알려달라고 청했다. 며칠 후 그가 바로 행동에 옮기니 우리는 편히 각자의 시간을 잠시 보낼 수 있었다. 나는 여전히 또 정처 없이 걸었고, 그는 호텔에서 쉼을 가졌다. 가끔 나도 실로 궁금하다. 내게 여행은 오직 ‘걷는 것’일까? 왜 그토록 걷는 걸까? 물론,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감각하고 감동하는 데에도 시간을 꽤 할애하지만 걷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다.
곰곰 생각해 보니 내게 여행은 '길 위의 탐색이자 사색’이다. 연인의 호소(?)가 없었다면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지 못한 채 그저 또 걷기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그는 나를 따라 하루 2만보를 너끈히 걷는다. 나는 그를 따라 종종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보내며 즐거운 쉼을 갖는다. 여행을 다닐수록 새롭고 낯선 시도와 도전에 훨씬 열려 있는 연인 덕분에 한번쯤은 주저하던 나도 일단 저질러 본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그의 이런 면모를 더 일찍 발견할 수 없었을 듯하다. 낯선 이에게 무언가를 묻는 것을 조심스러워하는 그와는 달리 호기심을 참지 못하는 나는 무엇이든 물어본다. 물었을 때 얻은 뜻밖의 도움과 호의 그리고 발견이 점점 늘어나자 그도 이런 내 여행의 방식에 스며들었다. 우리는 서로 꽤 다르다. 다르긴 하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꼭 만난다. 그런 우리에게 ‘빈’은 최고의 도시다. 고아한 기상과 역사를 품은 고요한 도시 빈은 연속 세 번에 걸쳐 우리 사이에 가교 역할을 했다. 함께 빈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다 보니 여행 팀워크가 더 끈끈해졌다.
서로가 서로에게 완벽한, 최고의 존재라기보다 스테레오타입을 벗어나는 비정형의 존재이기에 훨씬 매력적이다. 비정형의 존재들이 만나 호흡을 맞추고, 언어와 사고의 주파수를 조율하고, 서로의 다름에 때론 흥미를 때론 당혹감을 표하며, 상대를 세밀하게 알게 됐다는 것에서 가장 큰 뿌듯함을 느낀다. 먹고 마시는 경험과 음악 앞에선 열렬히 하나가 되는 우리지만 건축과 미술에선 취향의 차이가 크다. 여행에서 내가 하고 싶은 게 10이라면 그는 3에 불과하고 7은 온통 내게 맞추며 따라준다. 모든 예약과 예매는 내가 전담하고 그는 고맙다며 좋은 곳에서 밥을 산다. 나는 대체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 행복하고, 그는 그가 잘하지 못하는 걸 안 해도 되니 행복하다. 그는 본인 덕분에 밤길을 더 자유로이 거닐지 않냐며 가끔 생색을 내고, 나는 내가 길을 잘 찾기 때문에 당신이 편한 거라고 자주 생색을 낸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생각하니 서로의 생색이 이제는 사랑스럽게 여겨진다.
여행은 연인의 최고의 모습과 최악의 모습을 다 보여주었다. 그에게도 내 최상의 상태와 밑바닥 상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우리 관계의 지반을 여행이 다져준 게 아닐는지. 지난 8년여 동안 베를린에서 시작해 빈에서의 3번의 황금기를 지나 타이베이와 도쿄, 파리와 암스테르담, 유트랙과 에인트호번까지 우리만의 서사가 잔뜩 쌓였다. 그사이 우리는 함께 그리고 각자 성장했고 조금씩 진화했다. 여행에서 배운 배려와 깊은 대화, 협력과 팀플레이, 리듬감 있는 호흡과 쉼의 기술은 우리가 공동 소유하고 있는 재산이다. 얼마 전 함께 또 빈을 그리워하다가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오랜 시간 함께 여행할 수 있었는지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눴다. 비결은 아니지만 ‘어떻게’에 큰 몫을 한 게 무엇이었는고 하니 ‘나 자신이 아닌 상대를 우선으로 둔 것’이었다. 이제는 격렬한 공감보다 잔잔한 끄덕임과 눈 맞춤이 더 좋다. 그의 눈빛이 그리고 나의 마음이 ‘맞아, 바로 그거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럼 여행은 계속해야 하니까 헤어질 수가 없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