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endy An May 22. 2017

갈등도 아픔도 슬픔도, 다 사랑

영화 Like Crazy를 보고...


기억이 어렴풋하여 정확진 않지만 몇 년 전 어느 날엔가 선댄스 수상작 영화 제목들을 구글링 하다가 우연히 만나게 된 영화다. 선댄스 영화제 수상작이고 아이폰과 DSLR로만 촬영을 했단 것과 거의 모든 장면이 스토리의 흐름만 있을 뿐 script가 없이 촬영됐다는 어느 블로거의 글도 접하게 되면서, 증폭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여 보게 된 영화이다.  


첫 느낌에 찌릿한 매력을 느끼게 되면서 영화의 마지막까지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보게 되었다. 나른한 오후 공원 어딘가에 걸터 앉아 따스한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며 눈을 감고 잠시 모든 걸 잊는 순간을 갖게 된 듯한 느낌이었다. 유난히 예쁘게 표현 된 영상과 색감 그리고 느릿 느릿 온 감각을 터치하는 듯한 감성적인 음악이 어우러져 나를 간지럽혔던 모양이다.


고백하자면, 이 영화를 한 다섯 번 정도 보았다. 본래 한 영화에 마음을 빼았겨버리면 두고두고 보고 또 보면서 장면 장면을 다시 바라보며, 때론 해석해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빠져들 수 있을 때까지 그 안으로 들어가보려는 습관스러운 성향이 내게 있다. 그렇게 빠지는 영화 취향은 본디 많은 이들과 일치도가 워낙 낮아 감성적 소외를 겪게 되기도 하지만... 장면에 몰입해보면서 '나'를 대입시키는 작업은 때로는 단순한 감정이입에서 멈추지 않고, 나를 들여다보며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에 대한 추가적인 작업을 가능케 해주기도 한다. 가령, 주인공과 감정 및 생각이 일치되지는 않지만 그의 심정에 공감하게 되면서, 비슷했던 내 삶의 어느 시점이 순간적으로 떠오름과 동시에 그 때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상대방의 심정과 그 행동이 세월이 지난 지금 이해되고 공감되는 그런 경험말이다. 내겐 영화 Like Crazy가 그런 경험을 안겨주었던 영화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속 장면이다)

장거리 연애이지만 사랑은 좋은 것, 사랑은 멈출 수 없는 것, 사랑은 달콤한 것이란 메시지를 던져 주면서도 영화 전체의 느낌은 해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장거리 연애의 현실적인 안타까움과 아픔과 한계를 그리고 있다. 장거리 연애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사람을 사랑하면서 사랑 외에는 일상 생활까지도 마비되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던가. 미국 LA로 유학을 온 영국인 '안나'와 LA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 '제이콥'. 흔하디 흔한 이 이름에서조차도 영화는 풋풋함과 산뜻함을 느끼도록 배우 선정에 매우 탁월했단 생각이 든다. 가볍진 않지만 톡톡 튀는, 진지함이 있지만 감성 충만한, 삶에 대한 태도와 하고픈 일에 대한 열망이 강하지만 자유로운 안나와 제이콥 역할에 '펠리시티 존스'와 '안톤 옐친'은 안성맞춤이란 감탄이 나왔다. 내 친구의 연애를 보고 있는 듯, 내 연애의 어느 멋진 날이 연상되기도 하는, 친근함과 자연스러움이 곳곳에 배어 있기에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영화가 내게 안겨주는 여러 감정들을 흡수하고 때론 공감하고 또 때론 아파할 수 있었다.


갈등이 없다면,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리니. 각자의 진로 문제와 비자 문제로 삐걱 거림이 시작되고, 그들 내면의 변화라기보단 주변 환경과 제약으로 인해 영향 받는 생각들로 각자의 자리에서 힘들어 하는 심리를 심플하게 그리고 꽤 현실적으로 표현했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는 그 얼마나 외로운 일이던가? 어쩌면 우리는 사랑을 한다고는 하지만 그 '존재' 자체보다는 그가 '내 곁에 있음'으로 인해 파생되는 감정을 사랑하는 것은 아닐런지...기약 없는 만남을 앞에 두고 제이콥과 안나는 1박 2일의 짧은 근교 여행을 한다. 남아있는 것이라곤 잠시간의 이별 뿐이기에 신나게 시작하진 못했던 여행이지만 그 여행 내내 감도는 무거움과 안타까움과 내내 함께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명장면 또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손꼽는 게 아마도 제이콥이 안나에게 'Patience' 팔찌를 건네는 순간이 아닐까. 나또한 이 장면에서, 선물이란 게 상대가 원하거나 좋아할 만 한 것을 해주는 것도 꽤 기쁜 일이지만, 받는 이는 상대일지라도 서로에게 함께 의미 있는 선물은 역시 '메시지'나 '스토리'가 있는 선물이겠구나!란 생각을 하며, patience가 안겨주는 의미적 안타까움과 버거운 감정과 동시에 '새로운 발견'에 대한 기쁨을 느끼기도 했었다.


사랑과 이별을 참 예쁘고도 섬세하게 그렸는데, 오글거린다거나 간지럽지가 않은 일종의 '담백함'이 서려 있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흔할 것 같지만 생각보다 사랑하는 이의 눈을 바라보며 I love you, like crazy라고 고백해 본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다. 나 또한 전화통화로, 어깨에 기대어, 그를 살포시 안아주며 고백한 적은 있지만 그를 응시하며 진심어린 고백을 해보진 못했다. 그런 나여서 그런지 like crazy라고 새겨진 one & only 자신만의 의자를 선물받은 안나가 제이콥에게 고백하는 장면은 실은 내 버킷리스트에 올라갔을 정도다(그렇담, 상대에게 뭔가 선물을 받는 순간이 발생해야만 가능할 일일까? 훗).


장면마다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듯했던 음악이 너무 좋았다. 마치 해질녘 노을의 불그스레한 빛을 조명 삼아 러브레터를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의 음악들. 영화를 본 후 한참을 ost에 푹 빠져 지내곤 했다. 그렇게 하여 발견하게 된 뮤지션 Dustin O'Halloran.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그의 음악은 선율 속에 감정의 세포들이 떠다니는 듯한, 마치 선율의 흐름은 이야기의 흐름인 것 같은 느낌을 내게 안겨주었는데, 그의 음악은 영화 곳곳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눈을 감고 지난 사랑 또는 지금의 사랑을 생각하며 느린 마음으로 들어보시길...).  


https://youtu.be/Wii-psngYQw

https://youtu.be/ackWHfZQY4U


낡은 내 마음의 서랍장 한 구석에서 어느 부분으로 와닿았길래 내게는 이 영화의 여운이 그토록 길었던 걸까?라고 생각해 본다. 아름다운 한 영화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사랑하면서 우리에게 일어났던, 우리가 겪었던, 겪고 있는, 겪게 될 사랑과 아픔과 갈등과 기쁨이 조금은 현실적으로(그러나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조금은 담백하게(그러나 사랑의 강렬함은 잃지 않고) 그려져서, 그리고 배우들의 감정 연기와 감각적인 영상과 스토리가 깃든 음악의 선율이 만나 결국 나의 사랑도 이러했고, 이렇지...이랬으면이라 생각하게 해 주었기 때문 아닐까...?


여전히 나는 의기소침해지거나 누군가 옛 사람이 미치도록 그립거나 이유모를 슬픔이 몰려올 때면 Like Crazy와 함께 하며 잠시 사랑과 이별의 경계선으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좋지 아니한가? 서랍 속에서 영화 한 편 꺼내 내가 나자신을 직접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