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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dy An May 22. 2017

뉴욕에 그려진 고독한 선율

영화 Sone One을 보고...

뉴욕의 밤, 기타, 여자 그리고 남자. Nothing else is needed. 음악과 뉴욕이란 배경이 안겨줄 기쁨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됐다. 뉴욕이 그려내지 못 할 음악이 있을까, 스토리가 있을까, 싶은. 어떤 음악과 어떤 스토리가 만나 뉴욕으로 완성될까, 라는 설레임 가득. 


잠간의 검색의 수고를 해보니, 선댄스 영화제에서 최초 공개되었단 점과 감독은 Devils wear Prada 조연출 출신으로 Anne Hathaway와의 인연이 시작된 스토리를 알 수 있었다. 재밌겠다, 라는 식의 호기심어린 감정보단 '반드시 봐야 해', 라는 식의 의지가 강렬히 깃든 결심이 피어오르는 기다림이었다. 여유로운 주말에 보기 위해 미리 예매해놓고 준비하고 싶은 마음가짐은 아니었다. 되려 일을 마친 주중 어느날 저녁 무심코 터벅터벅 걸어가 영화가 시작되기까지 눈을 감은채 생각과 마음을 내려놓는 준비 아닌 준비를 하고 싶었다. 기대와 얼추 비슷한 준비작업을 거치고 피곤한 영혼과 신체를 의자에 걸친 채 여정을 시작하고, 마쳤다. 


뉴욕이 보이지 않았다. 뉴욕에 그려진 선율이 보였다. 뉴욕의 밤은 멜로디로 물들어 보였다. 주인공 프래니가 걷는 거리 곳곳마다 외로움이, 슬픔이 뚝뚝 떨어졌다. 반면 그곳을 가득 채우는 음악은 슬프기보단 담담했고, 아름답기보단 정겨웠다. 진지하기보단 경쾌했다. 장면마다 음악이 시작되는 타이밍은 unexpected였다. 그랬기에 등장 인물의 표정과 생각에 집중하는 게 더 나았을까, 싶었다. 만화에 취미가 없는 편이기는 하지만, 기존에 없을 것 같은 흐름의 속도와 전개를 띠는 청춘 만화를 보는 듯하기도 했는데, 이유인즉슨 주인공 프래니와 제임스가 보이는 여백이었다. 프래니, 제임스 각각 그리고 함께 관객에게 안겨주는 감정과 생각과 몸짓 사이의 여백이 다른 영화에 비해 길게 느껴졌고, 그 여백은 스토리의 행간을 읽을 수 있도록 부여해주는, 만화 속의 말풍선과도 같게 느껴졌다. 비어있는 말풍선을 내가 채우면 되겠구나, 싶었다. 여백을 채우는 짧은 순간순간들의 경험은 잔잔하지만 짜릿했다. 내 속마음을, 내 속삭임을 들킬까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모로코에서 박사학위를 위한 연구 과정에 집중하고 있던 프래니는 음악을 위해 대학을 중퇴한 동생과 6개월여간 소통 없이 지냈다. 어느날 교통사고로 동생이 혼수상태에 빠졌단 엄마의 연락을 받고 come back home. 동생의 기타와 노트, 데모 CD를 들여다 보며 아파하고 추억하고 희망을 갖기도 하는 여정을 보낸다. 동생이 존경해마다않는 뮤지션 제임스를 찾아가 데모 CD를 건네며 사고소식을 덤덤히 알리기도 한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은 동생이 아니었으면 시작할 수 없었던 음악을 매개 삼아 소통을 한다. 이야기의 어느 지점도 특별한 게 없는 흐름이지만, 특별한 점 하나 없이 눈길을 빼앗기지 않고 그려나가는 이야기의 힘을 지닌, 숨겨진 욕심이 느껴지는 영화였다. Balanced.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제일 먼저 떠오른 키워드는 균형감이었다. 장면과 배경, 인물과 이야기가 음악과 어우러지며 호흡했다. 음악을 기대했던 시점에선 여백이 있었고, 무덤덤한 스토리의 전개는 끊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음악으로 접붙임하며 이어졌다. Less is more.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는 듯하게 모든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뉴욕이 보이기보단 음악이 보였단 것에 덧붙이자면, 극중 뮤지션인 제임스 포레스터의 음악 덕분이었다. 클래식한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반면 거친 바이올린 연주에 정제되지 않은 듯한 순도 100%의 제임스의 보이스가 뉴욕 자체였다. 아니, 조금은 더 부르클린다웠다고나 할까. 세련미는 숨기려하지만  pure한 feeling은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는가, 싶은. 다듬어지지 않으려는 강렬한 의지가 보이면서도 전략적으로 의도된 컨셉일까 싶어 혼란스럽기도 한, 그러니까 말 그대로 '묘한' 멜로디와 보이스로 음악을 그려가는 제임스의 매력은 단연 일품이다. 클래식하기도 하고 컨츄리틱하기도 한 선율과 창법엔 진정성이 진하게도 묻어난다. 아마도 그 진정성과 순수함이 죄책감과 절망만으로 점철되어 있을 프래니의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하지 않았을까. 


음악은 정말이지 만국 공용어다. 아니, 음악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단연 하나의 언어가 아닐까 싶다. 사람은 의심해도 음악은 의심하지 않는 예술을 향한 우리네 순수한 본능일까. 


주책이지만 다시 말하자면, Sone One에선 뉴욕이 보이지 않았다. 여백의 한 가운데에서 말풍선을 채워가며 공감하기도,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면서 스토리의 마디마디에 스며든 음악을 한껏 풍미했다. 문득 지금 떠오르는데, 프래니의 엄마의 말에 참 질투가 났었더랬다. 제임스를 저녁식사에 초대해 한 시절을 회상하고 추억하는 장면에서 1970년대의 파리를 겪어보지 못한 그들에게 unlucky라 하며, belle e poque라 불리는 그 '좋은 시절'을 회상하는 그녀에게 참으로 질투했다. 예술에 취해 살았을 법한 그 시절을 담배와 와인을 벗삼아 회상하는 그녀는 치명적이리만치 아름답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이토록 잔잔한 영화임에도 탄탄한 스토리의 전개 위에 가미된 요소요소들이 적잖이 배어 있었다. 감독의 의도일까, 나만의 해석일까. 무엇인들 어떠하리, 결론은 내게 안겨진 기쁨인 것을. 프래니가 제임스에게 남긴 쪽지의 한 마디가 영화를 향한 내 마지막 소감이기도 하다.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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