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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dy An Apr 17. 2018

[브런치 무비패스] 영화 '몬태나'

잡음 없는 용서, 그리고 살아갈 이유

'잡음 없는 용서, 그리고 살아갈 이유'

(주의: 이 리뷰엔 짤막한 스포가 포함돼 있습니다.)


배우 크리스찬 베일만으로도 몬태나를 볼 이유는 충분했다.

더욱이 얼마만에 마주한 서부영화이자 로드무비인가, 란 설렘도 일조했다.


영화의 초반 여정 동안은 매 장면마다 다음 스토리를 예측하기 어려웠는데, 그 어려움은 불편함이라기보단 영화가 불러일으키는 '좋은 긴장감'이었다. 몸이 경직되는 긴장을 일으키는 몇몇 잔인한 장면들을 피할 수 없었지마는 영화의 후반부에서 결말까지의 여정을 끝내고 나선 단 한 장면도, 단 한 마디도 불필요했던 것이 없었노라고 생각했다. 과함도 부족함도 없는 고상함이 깃든 전개 그리고 슬프고 치명적이게도 아름답기만한 자연을 담은 영상미가 관전 포인트라 하겠다.


전역을 앞둔 미군 노장 대위 '조셉(크리스찬 베일 역)'은 전장에서 그의 많은 친구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일생 일대의 적인 인디언 추장 옐로우 호크와 그 가족을 그의 고향인 몬태나 곰의 계곡까지 안전하게 이송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암이 발병해 시한부 인생이 된 옐로우 호크 또한 미군에 의해 많은 동족들을 잃었기에, 영화를 보는 내내 과연 이들 중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게 됐다. 영화가 끝나고 나선 과연 가치 있는 고민이었는가 싶었지만... 앞서 언급했던 영화가 안겨주는 '긴장감'은 이들의 여정의 모든 순간 묻어났다. 조셉 대위의 내적 갈등을 관객 모두와 함께 해나가는 듯했던 여정이었다. 당신이 조셉이라면 어떠했겠는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물어오는 것만 같았다.



조셉은 정예군을 꾸리고 호크의 가족들과 함께 1000마일(1609.344km/h)의 미 서부 종단 여정을 가던 중 잔혹한 인디언 부족들에게 남편과 아이들 모두를 잃은 로잘리(로자먼드 파이크)를 만나게 된다. 함께 가족들을 묻어주고 그녀의 슬픔이 채 마르기도 전에 로잘리는 이 여정의 일원이 된다. 이들의 만남을 어색하게 극적으로 연출하지 않았던 듯 스토리 전개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좋았지만, 로자먼드 파이크가 그린 로잘리의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와 상실을 마주했을 땐 숨도 쉴 수 없을만큼 함께 아파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존재감이 강렬히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관객을 슬픔보다 더 깊은 그 어느 미지의 곳으로 이끌고 갈 수 있는 힘이란 게 그녀의 연기와 몸짓에 깃들어 있었다. 로잘리를 몬태나의 스토리 텔러 자리로 받아들이는 순간이었다 하겠다.


한 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던 길고 긴 이 여정에서 점점 적대감이 희미해져가는 듯한 순간이 온다. 무차별 급 공격을 가해오는 인디언 부족과 모피 사냥꾼들을 공공의 적으로 마주하게되면서 반격할 수 있는 손이 하나라도 부족한 상황이 되자 호크 추장과 조셉 대위는 함께 싸우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에서 이들은 각각 상대를 이해하게 되었던 것일까. 각자 자신의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주어진 임무에 복종하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싸워야만 했었던 그 어쩔 수 없었음과 그로 인해 평생 갖게된 슬픔과 분노를 서로 간에 읽을 수 있었던 것일까. 계속해서 가해져 오는 급습과 뜻밖의 상황 발생 등으로 몬태나로 향하는 길은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공공의 적이 생겨나고, 서로의 상실에 함께 슬퍼하며 애도를 표하게 되고, 결국은 서로를 지키기 위해 싸우게 되었던 이들의 내면은 어떤 전쟁을 치르고 있었을까.


어떻게 묵묵히 저 길을 걸어나갈까.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누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것이 선행된다면 분노와 증오의 악순환은 끊어질 수 있는 것일까. 이 물음에 조셉 대위와 호크 추장 그리고 로잘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천천히 그리고 성실히 말해주었던 영화다.


마침내 이들은 몬태나 곰의 계곡 어귀에 도착한다. 조셉 대위가 건넨 손에 호크 추장의 손이 얹어졌을 때 그들도 관객들도 함께 '잡음 없는 용서'를 경험했다. 그 순간이 '살아갈 이유'가 되는 것임을 또한 깨달을 수 있었다. 결말은 잠재 관객들을 위해 함구하고자 한다. 다만, 무척 기대하고 소망했지만 설마 결말을 향한 나의 바람이 이루어질까라는 떨림을 안고 마지막 장면의 흐름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뜻밖의 고마움(?)을 경험했다. 그렇다, 이 영화는 여러 감정을 한꺼번에 경험해볼 수 있게 해준 것과 더불어 바라던 결말을 가질 수 있게 해준 서프라이즈 선물 같은 영화였다. 잔혹하고 슬프지만 그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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