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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ndy An May 11. 2018

[브런치 무비패스] Like Crazy

사랑의 진화 vs. 사랑의 퇴보

사랑의 진화 vs. 사랑의 퇴보


사랑에 완성이란 게 가능할까.

결혼이 사랑의 완성인 것일까.

사랑은 점진적으로 성장하는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퇴보하는가.


연인과 가끔 나누는 이야기가 있다. 아니 거의 그의 고백에 가깝지만. 설렘 폭발하던 첫만남에서 이어진  연애 초반 즈음의 사랑과 몇 년이 지나 영글어진 지금의 사랑 중 어느 크기가 크겠냐는 물음을 스스로 하고 스스로 답한다. ‘지금의 사랑’이라고. 흘러온 세월 동안 그의 사랑이 이만치 성장했음을 내게 알린다. 고맙기에 앞서 사랑스럽다. 그리고 그 물음과 대답의 여운은 깊이 남는다.


약 4년 만에 영화 Like Crazy에 대한 소감을 다시 써보게 됐다. 대여섯 번도 더 본 영화지만 한 영화에 두 번째 소감을 끄적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이 영화 나와 연결 고리가 있는 인연이지 싶다. 몇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어쩌면 다르 듯이 아마도 제이콥과 안나에 대한, 그리고 그들의 사랑을 바라보는 내 생각과 마음에도 변화가 있었으리라. 


2015년 끄적였던 첫 번째 리뷰 ↓ ↓ ↓


연인에게는 이 영화와의 첫만남이었기에 함께보게된 이번 경험은 나름 특별했다. 그에게는 어떤 영화일까, 어떤 스토리에서 감정이입을 할까, 어느 장면이 최고의 장면일까 등등. 영화를 보는 내내 이 모든 게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영화를 보며 그를 보았고, 그를 보며 영화를 보았다. 


풋풋한 대학생 시절 같은 수업을 들으며 만나 인연이 된 영국인 유학생 안나와 미국인 제이콥의 사랑이 예쁘게, 그게 그러니까 아주 '적당히, 알차고도' 예쁘게 그려진 영화다. 아날로그적 매력이 곳곳에 배어있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소중히 아끼게 될 영화이지 않을까 싶다. 안나가 정성스레 쓴 자필 러브레터, 제이콥에게 수줍게 읽어준 안나의 비밀스러운 글, 늘 의자 디자인 스케치를 하던 제이콥이 안나에게 첫 선물로 건넨 손수 만든 의자까지. 영화 곳곳에서 각각의 오브제들의 역할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매력이 가득하다. 때론 몇 마디 대사보다 오브제 그 자체가 자아내는 의미와 살포시 던져주는 듯한 여운이 영화를 보는 동안 또 다른 상상력을 자극해주는 맛이 있다고나 할까(몇 장에 걸쳐 써내려 간 안나의 편지 내용이 공개되지 않은 것은 단연코 상상력을 자극해주었노라). 

<2달간의 이별을 앞두고 안타까워하며 제이콥이 안나에게 건넨 Patience 팔찌>

순수하게 행복하고 찬란했던 시절의 빛나는 연애는 비자문제로 미국에 더이상 체류할 수 없는 안나의 안타까운 상황으로 인해 서서히 바래져 간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기에 애써 찾아도 원망할 대상을 찾을 수 없는 답답함과 서로를 향한 애타는 그리움이 스크린에 가득차다못해 터질 듯이 흘러내렸다. 


안나와 제이콥은 어쩌면 사랑은 이렇게 아름답게 흘러가야만 하는 것일 뿐 노력하고 투쟁하고 쟁취해야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진 못한 게 아니었을까. 그때의 그들에겐 그런 준비가 필요치 않았기도 하지만 오랜 순간 이 둘의 감정에 몰입하려니 가슴 한 켠이 시려왔다. 어떻게든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그리고 되도록이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보려는 이들의 애처로운 노력은 항상 막다른 길에 다다른다. 그리고 그 곳엔 사랑인지 그리움인지 공허함인지...그 무언가에 지친 안나가, 제이콥이 있다. 

가슴아픈 시행착오 끝에 영국에서의 결혼이란 (극단적일지도 모를) 솔루션을 찾아 '다시' 심기일전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이라 믿고싶은 또는 믿고 있는)을 붙잡는 서로이지만, 비자 문제는 이들 앞에 난공불락의 성이다. 또다시 시간은 냉정히도 흐르고 이들은 삶을 영위해나가야 한다. 이게 현실이라고 말해버리면 쉽지만 사랑은 결코 쉽게 결론지어질 수 없다. 관계는 결코 단순하게 풀어낼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좋은일에서도, 슬픈일에서도, 곁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저 멀리 아득해지고 있는 사랑하는 이가 가장 먼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사람인 것을 어찌할까. 

영화의 마지막은 마음으로 울고 있는 듯한 제이콥과 안나의 샤워 장면이다. 끝난 것만 같았던 이들이 극적인 비자 문제 해결로 인해 당연한 듯 다시 조우하게 됐지만 기쁨과 다행스러움 못잖게 슬픔과 불안과 어색함이 감돌면서 영화는 우리에게 그 이후의 이야기를 그려나가보도록 살며시 자리를 내어주었다. 


서늘한 밤 무거운 공기를 뚫고나와 마주잡은 두 손에 깊은 여운을 담고 우리는 한동안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물었다. 그에겐 어떤 영화였는지. 그에겐 영화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해야하는지에 대한 어떤 의무감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나도모르게 그도 나와 같았겠지, 싶은 마음으로 내심 기대를 했던 모양이다. 말인즉슨, 그는 오래 전 연인과의 연애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그는 나 또한 예전 어릴적 연애를 생각하며 본 줄 알았다고 했다. 참을 이유는 없지만 참고 싶었는데 마음속에선 이미 눈물이 났고, 말없이 그의 손을 잡고 걷던 중에 결국 눈물은 흘러내리고 말았다. 어떤 눈물이었을까? 영화를 보는 내내 손을 잡고 옆에 있던, 그가 제일 사랑하는 이는 바로 나이기에 당연하겠거니 했던 것이다. 미안하지도, 부끄럽지도 않았지만 마음이 아팠다. 


그의 진심어린 사과와 찬찬히 뱉어내는 변명(또는 설명)은 내 진심에 와닿았고, 거기에서만 그쳤다면 아슬아슬했겠지만, 그는 스스로 나의 심정이 이해가 되니까 더 미안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졌노라고 토닥거림을 건네주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영화에 대한 각자의 소감과 해석으로 넘어갔다. 


그에게는 이들의 사랑은 결국 예전 감정을 떨치지 못하고 남은 의무감내지는 뭔가 등을 떠미는 듯한 흐름에, 삶의 피로에 지쳐서 마치 과거의 망령에 붙잡힌 듯 포기한 커플로 보였다고 한다. 그들이 사랑한 사람은 지금 내 앞에서 샤워하는 사람이 아니라 과거의 대학생, 그러니까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사회인이 아닌 순수하게 나를 사랑해주었던 그 대학생이라고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과의 연애는 만족을 할 수가 없었지 않았을까, 라는 것이다. 그러곤 내게 물었다. 나는 어땠는지. 


나는 안나와 제이콥 둘 모두 사랑에 올인해 본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주어진 삶에서 충실하게 살아가보지만 반쪽이 떨어져 나가서 완전할 수 없는 연약한 영혼으로 살아가는 이들로 보았다. 그는 다시 물었다. 서로 다시 만나서 완전해졌을지.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사랑을) 노력하고 싶은 존재가 아닐까 했다. 가장 가치있는 사람이라 여겨진 게 아닐까 했고, 사랑은 때론 어떤 의무감이어야 한다고도 생각되었다. 약속이고 노력이고...


그는 다시 말했다. 노력할만 한 가치가 있으니 그들은 포기한 것도 많았노라고. 그치만 너무 슬펐노라고. 우리는 그러지 않았으면 한다고. 만일 그 자신이 나를 위해, 나 때문에 뭔가를 포기해야하면 그렇게(제이콥처럼) 갈등하진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이 만났다. 나 또한 제이콥이 런던으로 오려는 노력을 하지는 않은 것 같은 영화 스토리에 속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별로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여러가지로 가능성을 알아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충분히 즐겁고 기대되고 빨리 방법을 찾고픈 마음에 흥분했을 것 같다고 한다. 


사랑의 모습은 정말이지 제각각이다. 

안나와 제이콥의 사랑도, 우리의 사랑도, 그대들의 사랑도 말이다.


이들은 예전처럼 다시 사랑하지 못할까? 결국 후회하게 될까? 

그저 내 삶의 모습이 아니어서 더 애잔했던 것일까. 


그는 우리의 대화를 마무리했다. 외부의 어떤 일로 인해 아프게 돼도 우리가 서로 의지하며 이겨낼 수 있지만 서로로 인해서 마음 아픈 일은 없었으면 좋겠노라고. 사랑이 언제나 장미빛일 수는 없다. 오늘은 빛나지만 내일은 먹구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사랑을 해야한다. 다시 결국 4년전의 결론으로 다다르게 되었다. 갈등도, 아픔도, 슬픔도 다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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