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스톡홀름 # 2
Stockholm
아름답고 강렬한 첫 인상 'Ett hem'
첫느낌, 첫인상. 사람의 첫인상도, 도시의 첫느낌도 삶의 여정 가운데 꽤 여운이 길게 남는다. 그 여정이 여행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모든 감각을 깨우고, 마음문을 열어 젖힌 여행에서라면 말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설레는 마음으로 한걸음 한걸음 옮겨 스톡홀름 중앙역에 다다랐고, 부리나케 택시에 올라타 엣헴의 문 앞에 이르렀다. 여행이란 게 매 순간이 긴장과 설렘이 한 데 섞여 솟아오르는 감정의 향연이란 걸 새삼 느꼈던 순간이다. 초인종을 누르고선 따스하고 러블리한 목소리가 들려온 순간은 설렘의 순간에서 잠시 안도의 순간이 되었다. 집을 떠나 낯선 나라에 단숨에 날아와 누군가 나를 처음 맞이해주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문득 떠오른 한 마디.
Home, sweet home!
안도감에 떠오른 말이지만 엣헴의 느낌이 정말 그랬다. 문자적으로도 스웨덴어로 home을 의미하는 곳. 그 의미에 걸맞는 곳이겠구나, 란 확신이 들었다. 앞으로 2박 3일, 행복하리란 확신도 함께.
해가 진 후 도착했던터라 다음날 오전 동네 산책하며 담은 엣헴의 대문.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듯한 붉은 벽돌 벽과 두터운 나무 대문. 고풍스럽지만 아늑하고 럭셔리하면서도 친근했다. 내리쬐는 햇살과 벽 너머 보이는 푸르른 나무들 때문일까. 동화 속 한 페이지 같기도 했다. 문을 여는 기분이 어떨지는 꼭 직접 느껴보기를...!
(above) 이 곳이 엣헴의 응접실, 즉 호텔의 로비다. 포근한 카펫과 스트라이프 패턴의 감각적인 소파. 북유럽 감성이 물씬 느껴지는 인테리어와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구성에 마음까지 편안해진다. 집처럼 맞이해주려는 엣헴의 세심한 배려처럼 느껴졌다. 잠시 저 곳에 앉아 안내와 투어를 기다렸는데 절로 미소가 지어졌던 기억이 있다. 몰래 웃었다랄까, 후훗.
벽난로가 있는 응접실 한 켠. 아늑한 조명과 북유럽 감성의 결정체인 의자, 그리고 무심한 듯 펼쳐져 있는 책 한권. 어쩌면 내가 바라는 독서 공간의 완벽한 모델이 아닐까 싶었던. 상상만큼은 사치가 아니겠거니... ^^ 여행 중 잠시 쉼이 필요한 순간에 꼭 이 곳에서 시간을 보내야겠다, 고 생각 아니 다짐했다. 사랑하는 연인과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고 싶은 공간이기도. 이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나니 사랑하는 그가 무척 그리웠다. 잠시나마 함께 앉아있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그리움을 달랬던 기억.
언제든 연주할 수 있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벽한켠이 빌려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하나의 예술작품같은 각양각색의 의자와 소파로 가득한 공간. 조식을 먹을 때도, 오후의 티타임을 가질 때도 편히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한다. 정말이지 하루 24시간 꼬박 밖에 나가지 않고 엣헴을 제대로 여행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래서 여행엔 '호텔 놀이'를 하기 위해 늘 하루가 더 필요한 법! 결국 피아노는 다음날 조식을 마치고 잠시나마 수줍게 연주해보았고, 더 깊어져가는 밤 와인 한 잔으로 여독을 달랜 후엔 구석구석 책들을 꺼내 들여다 보는 놀이에 심취하기도 했다. 예술, 디자인 잡지도 한가득. 응접실에뿐만 아니라 룸에도 읽을만 한 책과 잡지가 구비되어 있었다. 이런 게 바로 센스 폭발하는 배려아닐까. 더이상 호텔은 정말 잠만 자는 곳이 아닌 디자인과 예술과 쉼을 경계없이 누리는 곳일 터.
glass 단위로 주문할 수 있는 Bar. 여러 와인과 위스키와 이름모를 주류들. 역시 호텔이다. 주문서를 작성하면 어디선가 모르게 갑자기 그치만 매우 젠틀하게 멋진 바텐더가 나타난다. 이 또한 엣헴의 재미 중 하나일 듯. 나는 레드와인을 한 잔 즐겼는데, 다음날 위스키 한 잔을 해볼걸..이란 아쉬움이 무척 길게 남았다. 다음번엔 꼭!
서재 공간 한 켠엔 턴테이블도 있었다. 음악을 직접 플레잉 할 수 있는 곳. So romantic! :)
이 곳 저 곳을 열심히 누비며 구석구석 세심히도 들여다 보았다. 놓치고 싶지 않았던 저 순간. 와인 한 잔을 들고 한 목음 한 목음 음미하며 매 순간 기억에 힘을 실어가며 즐겼다. 엣헴은 이런 곳이구나, 를 두 눈과 온 마음과 두 손과 두 발로 누비며 흡수하고 싶었다. 그러고선 이 곳에 너무나도 스며들고 싶었다. 마치 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tt hem은 home이니까...^^
이 곳의 역사를 차근차근 볼 수 있는 책 발견! 커버를 열고 나니 책이 너무 오래된 나머지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정말이지 조심조심 넘기며 보아야 했지만 그 세월의 흔적마저 너무나도 부러웠다.
1910년에 리노베이션 된 이 건물은 소유주의 뜻에 의해 호텔이 되었고, 영국인 인테리어 디자이너 크로포드에 의해 아름답게 재구성되었다고 한다. 대사관이 모여 있는 구역인 만큼 조용하고 깨끗한, 그리고 멋진 건축물과 잘 조성된 공원이 매우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기에 엣헴은 더욱 특별해보였다. 여행자들이 호텔에 들어선다기보단 누군가에게 초대 받아 집에 방문하는 것만 같은 느낌을 안겨주기 위해 객실의 수도 단 12개뿐이다. 12개의 룸 모두가 궁금해지는 그런 곳.
마치 아이들이 자주는 못가지만 늘 가기를 갈망하며 환상적이라 생각하는 놀이동산의 성인 여행자 버전이 아닐까 생각되기도...나에겐 그랬다. 나를 위한 놀이동산같았다. 호기심과 감각을 자극해 깨워주고 마음문을 활짝 열어주고 적당한 친근함과 적당한 럭셔리함의 완벽한 조화 또한 마음을 흔들었던 매력 포인트. 사람에 비유해보자면 겉모습은 다소 시크하거나 럭셔리하지만서도 몇 분 대화를 나눠보면 꽤 편안해져서 매력적인 그런 사람이랄까.
꽤나 무게감이 느껴졌던 묵직한 룸 키. 오래된 느낌, 그 빈티지함에 가슴이 설렜다. 일상에서라면 이제는 보기도 힘든 키 홀더인데. 역시 여행 중이기에 가능한 오브제이고 순간이리라. 자 이제 문을 열고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