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독서, 를 읽고
읽은 지 제법 오랜 시간이 지났다. 다시 들여다보게 되는 건 아무래도 이레 앞둔 여행 때문일 터.
특별한 추억이 깃든 책이기도 하다. 말인즉슨, 책을 너무 맛깔나게 읽은 탓에, 더 정확히는 몇 번이고 무릎을 치며, 환호를 하며, 눈물도 아마 찔끔거리며, 참 유난스럽고도 잔망스럽게 읽었던 스토리였다는 것. 그 탓에 며칠간 과도하게 분비되었던 아드레날린 효과를 뿌리치지 못하고 평소답지 않은 수줍은 일(?)을 저질렀으니 그것은 바로 저자 잔홍즈님에게 (우여곡절 끝에) 팬레터를 보냈던 것이다. 이메일 주소를 알 길이 없어 무작정 구글링으로 며칠을 불태워보았으나, '타이완의 스티브 잡스'격인 유명한 경영인이자 인터넷 1세대 구루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 도무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 스쳐 지나갔던 순간의 생각으로 링크드인에 접속해 그가 만들고 운영하는 출판사의 이름을 키워드로 다시 불타는 서치를 하다가 편집장의 프로필을 찾게 되었고 역시나 실례 불구 무턱대고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 도움을 청했다. 그 청한 도움이란 게 바로 '잔홍즈님에게 팬레터를 보낼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였다. 잊어갈 때 즈음 그 편집장이 아닌 다른 직원으로부터 본인에게 메일로 팬레터를 보내주면 잔홍즈님에게 전해주겠다는 이메일이 왔고, 빛의 속도로 미리 끄적여두었던 팬레터를 ctrl+V 하여 회신을 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아무 소식도 없지만 팬레터가 전해졌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으며 다시 잊은 채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이 추억은 꺼낼 때마다 재미있고 흥겹다. 그러니 됐다, 더 바랄 게 없는 것이다.
책의 부제는 '여행이란 인생을 용감하게 살아내는 일이다'이다. 서문으로 들어서기도 전부터 마음에 잔물결 큰 물결이 번갈아 일었다. 광활한 우주에서 점 하나에도 못 미칠 만큼 작디작은 내 마음 한 켠의 '생각'에 무한 공감을 받았기 때문이다. 삶의 모든 순간은 선택의 기로에 서는 것만 같고, 늘 그 선택에서는 용기가 필요하며, 그 용기 어린 결단으로 인해 어디든 떠났었기에, 그리고 떠날 것이기에 더할 나위 없는 격려를 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책 제목을 보시라. 다름 아닌 '여행과 독서' 아닌가. 삶에서 가장 즐거워하는 것을 꼽으라면 단연 이 두 가지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좋아지는 것이기도 하다. 여행에도, 독서에도, 내 관점과 내 생각, 내 바라는 것이 물론 중요할 터이다. 하지만 다양한 타인들의 스토리를 접하고 나서 다시금 내 관점을 찾고, 만들고, 조정해나가는 것은 더욱 흥미롭겠다.
나는 우리의 '인생'을 초월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여행'과 '독서'만이 해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독서를 할 땐, 책 속 세계에 빠져 내 인생이 아닌 그들의 인생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나는 현지의 색다른 문화와 환경에 섞여 들기 위해 필사적이 된다. 이것 역시 내가 '계획대로 움직이는 여행'이나 '안전한 여행'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 영원히 '고향의 품'을 벗어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반드시 조금 더 대담해질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다른 세계와, 다른 인생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
그는 끊임없이 그의 삶에 스며든 여행과 독서를 말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 듯하다. 보다 더 많은 젊은이들이 다른 세상을 들여다 보고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져 세상을 다시 바라볼 수 있길 바라는 것 같다. 이탈리아와 스위스, 인도, 아프리카의 초원, 발리, 알래스카 얼음바다 위, 교토, 동일본, 도쿄, 그리고 터키를 여행한 생생한 스토리를 정말이지 흥미롭게 풀어놓았다. 일본에선 주로 적극적이고도 열의에 찬 식도락 여행을 즐기며 미식의 탐구와 탐미에 극도로 몰입한다. 유럽에선 그곳 고유의 문화를 우선은 자연으로 만끽하고, 다음은 역시 미식으로 모험하고, 그리고 많은 사람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길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인도 여행 스토리와 알래스카에서의 경험은 진정한 다이내믹과 코미디와 충만함과 진솔함의 결정체다. 누구도 놓치지 않았으면 싶은 살아 생동감 넘치는 스토리다. 많은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경험의 산물이자 즐거운 인생을 위한 힌트라 할 수 있겠다. 그는 또 말한다.
난 어디든 길을 떠날 때면 반드시 몇 권의 책으로 중무장을 한다. 그리고 그 책 내용에 의지해 낯선 도시 외진 골목에 있는 술집과 숨겨진 식당을 찾아낸다. (중략) 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곧 '경험자'를 알고 있다는 뜻과 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모험가'가 아니라 앞서 경험한 누군가의 뒤를 쫓는 '추종자'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독서는 여행에 대한 '중무장'을 넘어 다음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책이 있는 곳에, 여행이 있다'.
그렇다. 나 또한 외치고 싶다. 책이 있는 곳에, 여행이 있다고. 지금까지 쌓아온 나만의 '중무장' 역사에 조금은 어깨가 으쓱해지고 뿌듯해지는 순간이다. 누군가에게 독서가 여행의 시작이었다고 말했던 어느 날의 나를 기억한다. 기쁘기 그지없다. 우리는 각자 여행을 하는 이유도 다르고, 여행의 여정 동안 하는 생각도 다르고, 보는 것과 먹는 것과 기억하는 것도 다 다르겠다. 그러니 이 이야기가 하늘의 별처럼 많지 않을 수 없잖겠는가. 많은 이들의 여행 이야기를 듣고 보고 싶어 하는 건 내 욕심일 뿐일 수 있겠지만 주고받을 수 있는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만 같다. 해도 해도 새롭고, 꺼내도 꺼내도 도통 지루할 틈이 없기 때문이다.
거창한 이유를 찾고 제법인 말솜씨로 꾸며보자해도 여행을 왜 하는가 그리고 독서는 왜 하는가, 에 대한 물음에 답할 명확한 (사실은 멋진) 문장 하나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왜인지 그래야만 할 것 같고, 차곡차곡 내 안에 쌓여 가는 경험과 추억 덕에 마치 내가 완성되어가는 것만 같다. 하지 않으면 제대로 살아갈 수 없을 것 같고 선택의 순간마다 무언가를 주저하게 될 것만 같다.
'돌아간다'는 것은 어쩌면 '여행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인지도 모른다. 어떤 장소에서 모종의 경험을 한 여행자는 그 장소와 연결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간다. 소설 어린 왕자에 나오는 것처럼 여행자와 여행지는 모종의 '길들여지는 관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문득 누군가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그곳의 이름을 들으면 곧장 반가움에 '돌아가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도 한다.
돌아갈 곳이 있을 때 여행과 모험은 더 짜릿할까. 책이 있는 곳에 여행이 있으니 어쩌면 일상이 여행이 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수도 있겠다. 책으로든 두 발과 두 눈으로 하는 여행이든 잠시나마 타인의 삶을 살아볼 수 있는 기회이자 잘 몰랐던 내 모습의 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겠다. 때론 낯섦을 추구할 때 익숙함이 더 소중해지고 새로워진다. 낯선 곳에 우뚝 서 있는 내가 진정한 나일 수도 있다. 그러니 계속 나를 보겠다는 것이다, 찾겠다는 것이다. 여행으로, 그리고 책 속 모험으로.
여행은 곧 상상이요, 상상은 여행이 된다.
그랬으면 좋겠다.
내가 상상한 대로 또는 상상하지 못한 그 너머의 어떤 모습으로든 환경과 사람과 순간을 맞닥뜨리고 싶다. 진부하지만 천생연분이자 찰떡궁합인 게 바로 여행과 독서 아니겠는가. 떨어져서는 안 되는 사람과 인연이 있듯 여행과 독서도 마땅히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