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즐 조각 맟추듯 생각의 타래를 풀다
해마다의 내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 나서는 것일까, 새로운 눈을 갖는 모험을 하는 것일까.
아무렴 어떠랴, 싶다가도 다시 곰곰이 생각에 잠겨 본다. 지금까지의 내 여행은 어떠했고, 다가올 여행은 어떠할까.
인생의 여정 동안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했다. 보고싶고, 느끼고 싶고,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 모든 욕구와 욕망과 충동을 채워주는 것은 단연 여행이었다. 늘 다른 듯 새로웠고, 늘 새롭게 달랐으니까.
프루스트가 설파하는 '새로운 눈'을 갖게되는 여행을 한다는 건 무엇일까.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가짐일까. 어디에서든 날마다 삶이, 생각이, 관점이 새로울 수 있는 attitude일까.
이번 여행에서 그 '새로운 눈'을 가져보고 싶다.
어떻게? 매 순간 충실하게 만끽하면서.
광화문 씨네큐브에 독립(예술) 영화를 보러 가는 게 삶의 큰 즐거움 중 하나다. 갈 때마다 한두시간 일찌감치 서둘러 그와 함께 꼭 향하는 곳, 커피스트. 사대문 안 3대 커피로 정평이 나있는 곳으로 일명 '비엔나 커피'를 가장 맛있게 맛볼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은 곳.
커피의 산미를 그닥 선호하지 않음에도 커피스트 비엔나 커피의 베이스인 블랙의 적당한 산미가 뜻박의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어여삐 뿌려진 시나몬과 크림의 조화가 제법 어우러져 별미를 맛볼 수 있는 비엔나커피다. 어느새 우리에게는 영화로 떠나는 여행을 하기 전 가장 즐겁고도 스윗한 리추얼이 된 소소한 즐거움.
그런데 이제는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다지만) 진정한 비엔나 커피를 맛보러 떠난다니 감회가 새롭다. 비너(wiener) 멜랑쥬와 아인슈페너를 마음껏 만끽하리라.
매일 아침 (물론 오후에도) 커피와 카페 순례를 떠나기로 작정하고 세워둔 계획은 이미 벌써 뿌듯함 그 자체랄까. 100년의 역사를 머금고 있는 카페도 적잖고, modern Vienna를 이끌고 있는 카페 문화도 다른 유럽 도시 만만찮게 형성돼있다고 하니 기대가 더욱 더 한가득. 나만의 카페 순례기를 그려보리라.
존경해 마다않는 작가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의 서문에 등장하는 인용구. 독일의 신학자 토마스 아켐피스의 말로 알려져 있다.
무릎을 탁 치며 감동했던 이 한마디.
반박할 수 없고, 아무리 공감해도 시원치 않을만치 격하게 동의한다.
의미인즉슨 더할나위없이 완벽한 쉴 곳은 (어설프게나마) 부러 만들어 꾸미고 가꿔놓은 작은 내 서재방만큼 나은 곳은 없을 것 같다는 것. 설명할 순 없지만 마음이 순식간에 평안해지고, 이 책에서 저 책으로 쉴새없이 유영해도 지치기는커녕 마냥 순박하게도 행복할 수 있는 순간들의 합과 기억과 기쁨이 존재하는 곳이 바로 내 작은 서재방이라는 것. 이보다 더 위안이 되는 게 과연 존재할까 싶은... 틈만 나면 숨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오늘은 내 작은 서재방이 더 귀하고도 소중하게 여겨진다. 가꾸고 또 가꾸며 거기서 늙어가자.
문득 떠올라 문득 그리워지는 곳이 있다.
성북동에 있었던 '알렉산더 맨션'이 바로 그 곳.
우연히 발견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카페였는데 한동안 '앓이'를 멈출 수 없어 부러 열심히 찾았던 곳.
이유를 알 수 없이 오늘 갑자기 떠오른 곳이다.
우연한 기회로 사장님과 도란도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는데, 일본의 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를 오마주했다는 것과 일본에서 공부하셨다는 것 그리고 대부분의 인테리어는 어머니의 영향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뭐랄까.
기품있는 Aura와 분위기를 지녔던 곳이다.
퀄리티와 맛이 상당했던 것은 물론이었고, 만든이의 뛰어난 감각과 섬세함이 한데 어우러져 공간이 안겨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감을 선사해주었던 곳. 그곳에 가기만 해도 감각적인 사람이 되는 것만 같았던 곳이었는데 몇 해전 폐업을 했다는 소식에 유난히도 안타까웠었는데... 오늘 왜이리도 뜬금없이 그 곳이 그리워지는건지 모르겠다.
공간의 미학과 맛의 즐거움과 섬세한 배려에 반했던 곳이었어서 그런지 오랜 시간 여운이 이어지는 곳이다. 아름다운 곳은 이렇게도 뇌리에 각인되는구나. 그런 공간을 평생 찾아다니고 싶고, 그런 여운을 가진 사람이고도 싶은 이 밤. 다가오는 여행에서도 그런 아름다움과 공간과 사람을 만나고 싶다. 그리움이란 건 그러고 보면 슬픈 것만은 아닌 듯하다. 살포시 지어지는 미소가 이 밤 벗이 되어준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