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서울에, 마음은 비엔나에

여독을 풀어야하나 풀고싶지않은...

by Wendy An

활주로에 비행기 바퀴가 닿고, LTE급 인터넷이 빵빵하게 터지는 순간 '아, 왔구나' 했다.

실감하고 싶지 않지만 실감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랄까. 그렇다, 돌아온 것이다. 홈 스윗 홈, 이라 외쳐보고 싶지만 왜이리도 이 내 마음은 갈 데 없는 길잃은 영혼처럼 표류하는 것인가.


여독의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여독(旅毒): 여행으로 말미암아 생긴 피로나 병


의미대로라면 하루 빨리 여독 푸는 것에 집중해야하지만, 몸도 그러길 바라는 신호를 보내오고 있지만, 결코 그러고 싶지 않은 건 철없는 투정일까. 여독이 빠르게 풀리고, 현실에 제대로 복귀하는 순간 여행에서 맛보았던 큰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꿈 같던 순간들의 추억이 연기처럼 사라질 것만 같다. 당연히 일상을 잘 살아내야하지마는 한없이 미루고만 싶다. 유난스럽긴 하다. 이제 돌아온지 사흘째이기에. 여전히 흘러가는 시간은 비엔나에서도 돌아온 현실에서도 야속하기만 하다.


비엔나에서의 일주일 스토리를 차차 풀어나가겠지만 이 밤 짧고 굵게 그리움을 펼쳐볼까.


사람

무언가 생기와 미소가 넘치면서도 은근히 시크하고 무심해서 더 매력적이었던 비에니즈(Viennese)들이 그립다. 양립할 수 있는 특성일까 싶다가도 비엔나의 그들은 정말 그랬다. 늘 밝게 웃고 다니시는 노인분들, 활기차게 달리고 자전거 타고 일하는 젊은 비에니즈들,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던 따뜻한 가족들, 역사와 전통이 있는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여전히 거뜬히 서버로 일하시는 시니어 젠틀맨들, 그리고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그리고 쿨(so cool)한 여인 아파트 호스트 이네스(Ines)까지. 카페 Prückel에서 햇살과 차 한잔 벗삼아 곱게도 책을 읽으시다가 미소를 건네며 이방인인 우리에게 잠시 자리를 비울테니 자리를 봐달라고 말씀하셨던 어여쁘신 할머님도 그립고, 노트 만들기를 성심껏 도와주며 끝끝내 미소를 잃지 않았던 테레사도 그립다. 빈티지샵을 운영하시는 우아한 자태를 뽐내시던 할머님도 그립고, 은퇴 후 카페에서 케익을 구우신다던 바베트 할머님도 그립고 그립다. 길을 잘못 안내해주었던 동네 아이들마저도 그립다.


커피

멜란지(melange)가 미치도록 그립다. 라떼도 카푸치노도 아닌 것이 더 부드럽고 실키한데 원두가 우려진 베이스 맛은 결코 과함도 부족함도 없는 어떤 적당함을 품고 있는 그 맛. 기분탓이었을까, 멜란지는 우리에게 정말이지 소울푸드였다. 하루의 여정 중 쉼을 갖는 시간엔 멜란지는 더더욱 좋은 벗이었다.


공간

며칠 묵었던 아파트도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졌던 몇몇 카페도 각각 그 공간만의 개성과 매력을 강렬하게 가지고 있기에 공간이 주는 즐거움내지는 황홀감에 빠져들기도 했었다. 그냥 그 공간에 내가 머물고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분도 생각도 몸도 마음도 다 업그레이드가 되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 그렇다보니 하나 하나 더 향유하고 싶고, 만끽하고 싶고, 보고 만지고 싶었다. 내 기억 속에서 얼마나 머물러줄까. 단 한 공간도 천편일률적인 모습이나 패턴을 발견할 수 없었던 비엔나. 변화를 싫어하는 듯한 기운이 공기에 여전히 묵직하게 떠다니는 듯하지만 그또한 이방인인 우리에게는 매력이 아닐 수 없었다. 변화를 싫어한다는 것은 결코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것만 같다. 그만큼 지켜온 세월 그리고 자부심도 서려있기에. 발길, 손길, 마음 닿았던 모든 곳들의 이미지가 눈 앞에 둥둥 떠다니는 것만 같다. 더 많이 추억하고 생각해서 기억 저장소에 각인을 깊이 시켜놓아야겠다.




핑계를 찾자면 한도끝도 없을 철부지 투정이어도 좋다. 가능한 한 오래 오래 비엔나를 추억하며 서울에 발은 닿았어도 마음은 아직 닿지 않으리.


하루 하루 현실에 다시 적응하고 일상도 회복하게 되리란 걸 잘 알고 있지만 이번엔 더 노력해서 늦춰보리라 다짐해본다. 그 꿈같던 순간들을 다 그러모아 나만의 스토리로 만드는 그 날까지 계속 더 늦춰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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