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이 아니라 통과해야한다....
비엔나 여행을 다녀온지 닷새가 지났다.
주말에 돌아와 월요일에 출근을 하려니 몸도 마음도 울적했다. 가기 전 마음은 충만한 여행을 하고 돌아올테니 월요일 출근은 뭐 식은 죽 먹기겠지, 라며 자신감 충천했었는데 역시 사람은 부닥쳐 봐야 진실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결코 녹록지 않으니말이다. 몸보다 마음이 슬퍼서겠지...
상사 및 동료들과 함께 하는 점심시간과 커피 브레이크는 온통 여행 이야기로 가득찬다.
그들 말로는 내 눈은 딱 그 때만 반짝인다지.
한 상사분은 사진을 보여주며 마치 원주민처럼 이런 저런 얘기를 풀어내는 게 능숙한데다가 빠져들게 재미있다며 유럽 지식가이드에 도전해보라신다(그럼 다음달에 퇴사해도 될까요?). 그냥 던지신 말씀이겠지, 싶긴 하지만...하고싶다고 다 하는 게, 되고싶다고 다 되는 게, 아니잖아요.
일이 조금씩 많아지는 게 보인다.
너무 싫다, 어쩌지.
일부러 지각도 하고 싶다, 진짜 어쩌지.
이미 한 번 했지만서도...
일하다가도 멍하니 비엔나 사진을 들여다 본다.
계속 이러고만 싶다.
이런걸 슬럼프라고 해도 될까.
근데 무엇에 슬럼프가 온 거지?
일에? 일상에? 서울살이에?
그냥 하던대로 하면 되겠지 싶다가도 알 수 없는 불안이 몰려오고, 말로 표현이 딱히 되지 않는 답답함이 내 안에 그리고 내 주변 공기에 가득가득하다. 늘 겪는 여행 전후 병이니 이 또한 지나가겠지, 라고 생각해보려지만 이번엔 이전과는 다른 색깔의 중증같다고나 할까.
얼마전 들어온 인턴이 옆자리에 앉는다.
일주일에 두어번은 그녀와 함께 점심을 먹게되곤 하는데 뉴질랜드에서 오랜 시간 살았고, 유럽 여행도 제법 다녔던 터라 다시 기회가 된다면 밖으로 밖으로 나가고자 한단다. 이 부분에선 쿵짝이 잘 맞아 시간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베를린과 암스테르담 여행에서 가본 카페나 스팟중 겹치는 곳이 있어 각자의 사진을 보여주며 우리의 관점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 신기해하기도, 즐거워하기도 하며.
그러다가 그리움, 답답함, 망연자실함 등 감정의 쓰나미가 몰려와 어쩌다 보니 띠동갑인 인턴에게 투정 아닌 투정을 부리고 말았다. 그 순간엔 몰랐는데, 지나고 보니 창피함을 감출 수 없더라는. 그런데 어른스럽기 그지 없는 그녀는 각자 유럽 어딘가에서 꼭 자리 잡고 부부 동반 디너 초대를 하잔다. 유머까지 겸비? 그런데 그 때 쯤이면 난 중년의 위기를 겪고있지 않을까? 후훗-
귀엽고 사랑스러운 인턴의 위로에 미소 한 모금 힘을 내보아야겠다. 커피를 다 마셔갈 때즈음 그녀는 불어를 독학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 또한 어설프지마는 독어를 인강으로 독학해보고 있는데 뭔가 피어오르는 이 동지애와 전우애를 어쩐담, 하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혹시 다음주부터 점심시간에 스터디 메이트 할래요?"라고 물어버렸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르게 "너무 좋아요!! 진짜 좋아요!!"를 외치는 그녀! 공부는 각자 하겠지마는 미팅룸에서 함께 커피 & 샌드위치 하며 한 번 해보기로 했다. 외롭지 않은 것만으로도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뜻밖의 슬럼프에 빠져버렸지만, 뜻밖의 솔루션이 등장한 묘한 오늘. 이 또한 지나갈 것은 자명하지만 조금은 적극적으로 슬럼프를 (극복이 아닌) 통과 해보자. 분명 이 스터디에도 슬럼프가 올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