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ad for Travel

어느날 서점 주인이 된다면?

<어느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를 읽고

by Wendy An


몇 년만에 인상 깊은 첫 문장을 만났다.

비엔나로 향하던 10여시간의 비행중 말이다.


'서점을 하나 인수했다.'


책 제목으로 스토리가 짐작 가능하긴 했지만 첫문장부터 이렇게 마음을 강타할 줄이야!


마치 아직은 아무에게도 말 못한 비밀스런 내 10년 후 꿈을 들킨 것만 같았다. 부러움과 동경이 뒤섞인, 그러니까 만감이 교차하는 감정의 휘몰아침에 팔다리에 힘이 빠져버렸다.


동네에 서점이 없는 게 당연한 서울 살이와 대조되는 동네에 서점이 있어야만 하는 빈의 동네 책방 이야기. 만약 내가 우리 동네에 서점을 연다면 와줄 이가 있을까, 란 두려움이 먼저 찾아오는 현실에서 어쩌면 이 책은 단비 같았는지도 모르겠다. 기내는 사막 못잖게 건조한 곳이니 오아시스라 칭해볼까.


저자인 페트라 하르틀리프(이하 페트라)는 오스트리아인이지만 독일인 남편을 만나 함부르크에서 가정을 꾸리고 삶을 영위해나가고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다 비엔나에 있으니 종종 휴가를 가곤 했는데, 마침 휴가 일정 중 매력적인 동네의 어느 고서점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친구로부터 듣게된다. 모두가 안타까워하는 분위기가 와인향기와 함께 공기중에 떠다닌다. 호기로운 한 친구는 비평가이자 글을 쓰는 페트라와 대형출판사 마케팅 매니저로 일하는 페트라의 남편이 관심가질 것을 예감했는지 인수하는 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무심하고 시크하게 툭 건넨다. 그 때부터 페트라와 남편의 마음엔 막을 길 없는 파도가 일렁이기 시작하고, 결국 이들은 서점을 인수하고, 비엔나로 이사오게된다. 그러곤 서점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다이나믹한 인생 2막을 흥미롭게 펼쳐 나간다. 무려 몇 달간 친구 집에 신세를 지면서 말이다.


읽는 내내 모든 것(도전, 시도)에 주저하는 내 자신이 너무 답답하게 느껴졌다. 눈깜짝 할 사이에 페트라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란 생각만 맴돌았다. 페트라의 문체와 이야기를 풀어 놓는 방식이 무척 매력적이다. 그 매력이라함은 생각도 말도 담백하기 그지없고 솔직한데다가 시원하다는 것이다. 간결한데 꽤 함축적이고, 솔직한데 결코 가볍지 않다. 얼마나 매 순간에 충실하고 솔직했기에 이렇게 그 순간들을 그려낼 수 있는 것일까. 그 순간들의 합은 이야기 저 너머에 있는 무언가 더 특별한 것이겠지.


페트라와 가족은 서점을 정비하고, 오픈하고, 이웃 그리고 고객들과 소통하며 다사다난한 순간들을 감당하며 시행착오의 결실을 맺어간다. 분명 서점 오너는 페트라와 남편이지만 글을 읽다 보면 서점을 찾는 모든 이들이 함께 운영해나가는 것만 같다. 조언과 제언을 아끼지 않고, 애정어린 (대가 없는) 도움을 주저없이 건네는 동네 사람들 그리고 단골 고객들. 어린 아이부터 겨우내 걷는 나이 지긋하신 노인까지 거의 전 세대가 이 곳을 쉴새없이 드나든다. 문을 열기도 전에 문 앞에서 기다리는 단골 노인분들, 십대가 읽을 책인지 아닌지를 먼저 읽고 요긴한 정보를 건네주는 사랑스러운 딸, 무조건 서점에서 일하고 싶다고 알아서 찾아와준 직원들, 때마다 매력적인 리스트로 찾아와 주는 출판사 영업사원들, 이런저런 소식통 역할을 해주는 기자 친구와 출판사 친구까지.


페트라는 책과 서점이 지닌 힘을 굳게 믿는 사람인 것 같다. 비교적 젊은 층의 고객들이 아마존에서 책을 구입한다는 소식을 듣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서점에서 구해줄테니 여기서 와서 보고 구입하라고 (꽤나 강력하게) 권유한다. 큰소리 쳐둔 만큼 리스트를 구비해놓는 능력을 매번 발휘하기도 하고. 그리고 지역 유수 매체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왜 동네 책방에서 책을 사야하는지를 논리 정연하게 그리고 당차게도 설파한다. 굳건한 신념과 믿음이 없다면 이 모든 일들이 가능할까? 책을 알고, 사람을 알고, 교감을 아는 그녀는 서점 주인에 참말 제격이다.


어느덧 한 주가 지난 그렇지만 여전히 살갗에서조차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비엔나 여행. 그 여행 동안 정말이지 값진 경험을 했다. 두 번째로 묵었던 숙소인 이네스의 아파트에서 딱 17분을 걸어 페트라의 서점(Hartliebs Bücher)에 찾아간 것이다! 어찌나 향하는 발걸음은 설레고, 마음은 떨리던지...중간에 물을 사마셨더랬다. 서점 앞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추억하고픈 마음에 사진을 몇 장 찍어둔 다음 들어섰다.

서점이니 당연하지만 온통 책이다. 말인즉슨, 모든 벽이 높은 천장 끝까지 책으로 채워져있고, 공기는 정말이지 따스했다. 책에서 표현한 공간의 구석구석은 혼자 상상했던 것들과 비슷하기도 또 다르기도 했지만 서점만이 지닌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었다. 책 속의 등장인물들이었던 직원들은 모습만 봐도 누구인지 알 것만 같았다. 페트라의 '사람을 그리는 글쓰기'가 과연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랄까.


수줍게(정말이지 너무 수줍게) 직원분에게 물었다. 페트라 사장님은 혹시 오늘 오시냐고. 그녀는 내 수줍음과 어설픔을 감싸주기라도 하듯 따스한 미소와 함께 10~15분만 기다리면 오실테니 기다리겠냐고 묻는다. "Of course!"를 외치며 나도 미소로 화답했다. 영어책(소설) 코너가 있어 10여분 둘러보다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읽을 책을 한 권(줄리언 반스-The Sense of an Ending) 구매했다. 그러고 나서 월드 베스트 셀러 책들이 비엔나에선 어떤 모습인지 둘러보았다. 아는 이름이 보이면 반갑고, 아는 작품인데 낯설게 보이니 흥미로웠다.


문득 느껴지는 누군가의 온기. 페트라가 다가왔고, 시원하게 악수를 건네왔다. 아, 드디어! 짧게 내 소개를 하고(역시 수줍게), 그녀의 스토리에 팬심 가득함을 전했다. 그녀는 물론 고마움을 표해주었는데, 냉큼 가방에서 책을 꺼내 사인을 부탁했다. 그리하야 이 책은 페트라의 사인으로 인해 영원히 간직할 보물이 된 셈이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2년 전 북페어 참석차 와본 적이 있다는 그녀. 너무 큰 도시로 기억한다고 한다. 이미 빈에서는 소설도 출간했고, 계속해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하니, 용기있게 한국에도 하루 빨리 다음 책을 번역/출간해주시길 바란다고 말해버렸다. 그녀는 한국 담당 에디터에게 말하겠다고 하니 용기내길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어느날 서점 주인이 되고싶다.

그럴 수 있을까? 어느 동네 책방 이야기를 나도 언젠간 써볼 수 있을지. 페트라의 스토리에는 인생과 신념, 그리고 행복과 역경이 맛깔나게 그려져있다.

책과 서점을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온통 '사람' 얘기다. 그래서 더 깊고 따스한지도.


누군가 이 스토리를 영화로 그려준다면 참 매력적일 거란 생각이 드는데, 과연 영화로 만들어질까?

독일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도제 교육을 받아, 페트라 서점 3호점(현재 2호점까지 있다)에 취직해보는 상상을 해본다. 오늘밤 꿈에서라도 그래봤으면.


아름다운 추억이 사람이고, 책이고, 서점이라 감사하다. 비엔나도 페트라도 서점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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