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B-Road 독자 여행기 기고글
여행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좋다. 그것이 글이면 더 좋고. 정기구독자는 아니지만 스타벅스나 커피빈에서 미팅이 있을 때 조금 일찍 가서 여행 잡지 에이비로드와 론리플래닛을 읽는다. 때론 가슴이 뛰고, 때론 가슴이 미어진다. 전자는 새롭게 알게된 낯선 곳들에 대한 설렘 같은 것이고, 후자는 당장에 움직일 수 없어 애통하고 절절한 심정이리라.
지난 9월 마음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것을 하나 실천으로 옮겼다. 그것인즉슨 에이비로드 Reader's Diary란에 독자기고글을 써서 보내보는 것. 8월 마지막 주에 다녀온 비엔나 스토리가 좋을까, 아니면 지난해의 베를린 이야기가 좋을까, 이래저래 고민 하다가 그저 끌림으로 베를린 이야기를 풀어보게 되었다.
브런치에는 베를린 커피 순례기를 2차례에 걸쳐 나눈 적이 있었기에 (자신감이 없던 찰나) 더 제격이었던 것도 있었다. A4 2장 분량을 맞춰야 했고, 사진도 10장 선별해야 했다. 나름 재미있고 유의미한 경험이었어서 퇴근 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면서 약 1주일 정도 시간을 쓰곤 떨리는 마음 부여잡고 에이비로드에 메일을 보냈다.
10월 후반 햇빛이 따스했던 어느날 오후에 글이 당첨 되었다는 연락이 왔고, 그 소식만으로도 기뻤는데 에바종 여행상품권 2장(20만원 상당)도 선물로 받게 되었다. 에바종에는 서울 호텔 프로모션은 많진 않지만 내년 4월까지 쓸 수 있으니 잘 두고보다가 적시에 호캉스 1박 2일을 해 볼 생각이다.
아쉬운 마음에...그리고 브런치는 부족하더라도 미약하더라도 내 글을 오롯이 올릴 수 있는 곳이니 당시 에이비로드에 보냈던 원문을 실어보고자 한다. 다만, 편집자의 전문적인 터치로 인해 분명 깔끔해지고 나아진 면이 있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조금 더 숙고하여 받아들이고 향후 글쓰기에 있어 반영해야 할 게 무엇인지 찾아보려고 한다.
어떤 여행에서도 커피만큼의 특효약은 없다. 유럽은 몇몇 도시마다 그 도시스럽게 형성된 커피씬이 있고, 그 도시들 중 베를린은 단연 커피향이 짙고도 짙은 도시다. 매일 아침을 여는 오전 어느 시간의 첫 커피는 하루를 제대로 여는 기분을 안겨준다. 무엇이든 오늘 해 볼만 하겠다 싶은 한 방울의 자신감을 마시는 짧은 순간인 것처럼 말이다. 일상에서의 커피가 전투를 준비하는 마인드라면 여행에서의 커피는 친구이고, 위로이고, 역설적이게도 비타민이다.
계획대로, 때론 무계획으로 베를린의 카페를 누비고 누렸다. 누군가에게 전해듣기론 베를린 커피씬은 바리스타들과 카페 오너들의 적극적인 협력과 교류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한다. 협력과 교류가 만들어낸 젊고, 생동감 넘치고, 자부심 가득한 베를린스러운 카페 문화는 마치 100여년 전부터 유럽 도시들의 예술과 문화의 근간이었던 살롱의 현대적 재해석 아닐까 생각해본다.
베를린 미테 지구를 대표하는 카페 중 한 곳이다. 실은 계획이 있어 어딘가로 열심히 향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곳이다. 30여분쯤 조금 게으르면 어때, 라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다시 돌려 향했었다. 이런 뜻밖의 작은 발견으로 인해 여행의 순간 순간이 활력과 즐거움으로 충만해지는 것 아니겠는가.
블랙과 화이트의 전체적 느낌이 담백하고 시크하다. 에스프레소 맛과 향이 진하게 나는 플랫 화이트를 마셨다. 묵직한 맛과 무게감에도 불구하고 혀에 닿을 때와 목넘김에서의 부드러움은 극치였다. 베를린 커피의 주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궁극의 부드러움'은 비단 플랫 화이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커피 맛이라는 본질과 더불어 베를린 카페엔 독특한 공기가 흐른다. 프라이버시가 잘 지켜지는 공간 배치가 하나의 특징이기도 하고, 아늑함과 편안함 그리고 따스함이 인테리어처럼 깃들어 있다. 사람들에게서 뿜어 나오는 여유인지, 직원들과 공간에 서린 특별한 매력인지, 베를린의 문화가 스며들어 있는 곳을 찾는다면 단연 카페다. 그 공기와 분위기를 충분히 느낀다면 베를린 문화의 한 면은 깊이 체험한 것과 다름없을 듯하다.
미테 지구에서 확고한 존재감과 커피 맛으로 단연 으뜸에 꼽히는 또 다른 카페 FATHER CARPENTER는 쇼핑지구 번화가에 있다. 늦은 오후 한 템포 쉼을 가지기에 제격이다. 건물들이 모여 만들어진 중정에 카페의 노천 좌석이 마련돼 있는데, 그 풍경이 제법 목가적이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레 심호흡을 하게 되고, 쉼을 가지게 되는 곳이랄까.
산미가 강하지 않은, 적당한 바디감과 적당한 쓴 맛 그리고 (역시나) 부드러운 목넘김과 마시기에 지극히 적당한 '온도'가 마음 한 구석을 간지럽혔다. ‘궁극의 적당함’을 표현해낸 이들에게 더 경탄해 마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실 때마다 베를린을 마시는 느낌이었다. 카페로, 커피로, 베를린을 먼저 만난다면 더 깊이 이 도시의 매력에 빠져들 수 있다.
베를린 커피 순례의 대미를 장식한 곳. 철학과 예술의 숨결이 깃든 곳, 카페 자비니. 자비니 플라츠(광장)에서 5분 미만 남짓 거리에 위치한다. 숨겨진 듯한 곳이니 눈을 크게 뜨고 애정을 곁들여 찾아야 보인다.
19세기 문학가들과 철학자들이 열띤 논쟁을 펼쳤을 것만 같은 분위기가 공기에 가득했던 곳. 실제로 독서모임과 철학모임이 주기적으로 열리는 곳이라고 한다. 여기서도 맛보는 유럽 카페 문화의 근간. 마치 독일 낭만주의 문학도와 철학도들이 드나들었을 듯한 상상도 한 움큼. 괴테가 문 열고 들어오면 어떡하지? 라는 재미난 상상을 건네 주었던 곳.
커피가 너무 사랑스럽지 않은가? 허리춤에 냅킨으로 멋 부려준 건 또 어떻고! 에프스레소 크림 마끼아토. 궁극의 크레마, 그리고 궁극의 맛. 블랙 커피에 크림이 녹아 내려진 맛은 정말이지 일품이었다. 포송한 거품을 맛보고 나면, 진한 에스프레소의 풍미가 입안 가득 퍼지면서, 맨 아래층 부드러운 우유가 목넘김을 도우며 맛을 완성해주었다. 커피 향기 가득한 여유가 고플 땐 베를린과 카페 자비니를 추억한다. 추억의 향기는 언제나 달콤하다.
베를린의 커피부심을 책임지는 여러 곳 중 단연 최고라 불리우는 카페, 더블아이. 공간도 비좁고, 내부엔 오로지 스탠딩자리뿐. 바리스타들의 무표정한 친절함이 되려 매력인 곳. 오로지 커피로, 맛으로 승부하겠다는 강렬한 의지가 카페 곳곳에 서려있다.
투박하게 놓인 트로피도, 수동 커피머신도 멋진 인테리어 그 자체다. 에스프레소 도피오 마키아또 그리고 카페라떼를 마셨다. 카페 안에서 커피를 기다리면 갓 볶은 듯한 원두향에 황홀경을 경험케 되는데, 맛에서도 경험했다. 이들의 자부심도 커피에 섞인 듯한 궁극의 고급스러움이 한모금 한모금에서 느껴졌다. 좌석이 없는 탓이겠지만 모두가 일제히 서서 커피를 마시고 신문을 읽고 책을 읽는 곳. 하루를 더블아이에서 연다면 서있는 것쯤이야, 라고 눈빛으로 속삭이는 듯했던 곳이다.
충만했던 베를린 커피 순례.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커피, 지극히 베를린스러웠다’라고.
이 밖에도 다녀온 그리고 추천하고 싶은 카페는 ‘Café ORA’, ‘The Barn’, ‘ZEIT FÜR BROT’, ‘distrikt’, ‘Michelberger Hotel Café’, ‘Bonanza Coffee Heros’, ‘Wintergarten’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