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Mad for Travel

무제, 연습-1

계속 써야 한다

by Wendy An

상상과 추억이 뒤섞여 날마다 꿈꾸게 되는 것. 그것은 여행이다. 지금 이 순간도 숨쉬듯 여행을 생각한다. 지난 여행을 추억하는가 싶다가도 곧내 상상에 휩싸여 새로운 여행으로 생각이 날아가 확장되는 것이다. 이는 일상의 내밀한 기쁨이자 가장 빈번히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하는 차라리 명상에 가까운 정신의 적극적인 활동이다.


나는 예나 지금이나 끝없는 혼돈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에 때마다 위기와 방황의 때를 마주하는데, 그럴 때면 본능적으로 책으로 도피한다. 일과 여행 또는 삶과 여행이라는 주제를 놓고 생각에 생각을 이어가며 한없이 침잠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 도피와 침잠 속에서 적잖은 실마리를 찾거나 위로를 얻고는 한다. 물론, 아무 것도 얻지 못할 때도 많지만 책을 읽는 그 의식 자체만으로도 정신과 육체의 소용돌이가 잠잠해진다.


책을 읽다 보면 나를 사로 잡는 어떤 문장을 만난다. 그 문장에 밑줄을 긋고 마음에 도장을 찍는 찰나 생각했다. 여행이란 건 마치 책을 읽다가 만난 문장에 밑줄을 긋고 잠시 숨을 고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책이라는 삶을 살아가다가 여행이라는 밑줄을 긋는 것. 기억하고 싶은 페이지 한 어귀 살포시 접어두는 그 순간의 합이 여행으로 이어진다. 밑줄을 다시 찾아 읽을 때에 마주하게되는 익숙하지만 낯설고, 기쁘지만 실망스럽기도 한 감정과 감동 그리고 여러 이유가 뒤섞여 여행이 되는 것은 아닐런지.


나는 책을 좋아한다. 많이 사고 많이 읽는다. 때로 일을 하는 와중에도 책을 읽고픈 욕망이 강렬히 피어올라 그만 회사를 뒤로하고 서점으로 달려가 결국 책을 손에 넣기도 한다. 아슬아슬 경계를 넘나드는 이 놀이의 행위는 매 번 새롭고 매 번 즐겁다. 같은 날 여러 권의 책을 병행 시작하기도 하는데 이러한 독서는 출퇴근 독서, 침대맡 독서, 점심시간 독서, 미팅 대기 독서 등으로 구분된다. 책을 탐독하면서는 주로 밑줄을 긋고 몇몇 페이지 귀퉁이를 접어 두고 기분이 좋을 때나 마음이 동할 때에 노트에 옮겨 적는다. 마음이 심란하고 삶이 복잡할 때면 몇 번이고 찾아 소리내어 읽는다. 읽고 또 읽으며 그 문장들에 내 마음 상태를 투사한다. 그러다 보면 그 문장과 그 글은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생각해보게 되고, 나의 혼란의 근원으로 잠잠히 들어가보게 되는 것이다.


물론 밑줄도 소용 없는 고약한 때가 있다. 책으로 도피하지만 튕겨져나올 때도 있다. 모든 게 내 이야기처럼 읽히고 흡수되던 것들이 나를 밀어내는 것 같을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 즉시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바랄 게 없을텐데라고 수없이 생각하며 바라왔다. 바라기만 할 뿐 결국 그렇게 살지 못한 긴 세월을 돌아 보니 돈과 시간 문제라기보단 그저 나의 못난 주저함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와 출생 간격이 딱 100년인 작가 버지니아 울프를 흠모한다. 그 기나 긴 세월의 간극을 두고도 현 세대의 여성들에게 성찰과 자립의 귀감을 여전히 안겨주고 있는 멋진 작가라고 생각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이 오랜 시간 동안 나만의 도피성 독서였다. 친절하거나 다정하진 않아도 나직하게 가장 필요한 조언과 충고를 건네주는 아주 멋지고 시크한 인생의 선배라고 생각하며 읽곤 했다.


그녀가 설파한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해야 하는 것'의 목록에는 여행, 빈둥거림, 미래와 과거에 대한 성찰, 독서, 공상, 배회 그리고 돈을 버는 것이 있다. 이 목록 자체가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랄까. 그리고 덧붙여 주제의 사소함 또는 광범위함과 상관 없이 어떤 종류의 책이든 써보기를 권했다. 100년 후를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영향을 받고 있는 한 독자이자 여성으로서 그에 화답하고자 이렇게 용기를 낸다.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내 삶에 비추어 보니 깊이 생각하는 삶을 살기 위해 여행과 독서를 하고, 그에 필요한 돈을 스스로 열심히 일해서 충당하는 것이 내가 나아갈 삶의 방향이겠구나 싶었다.


책을 통해 거장의 도움을 받아 용기를 얻어 몇 걸음씩 내딛어 볼 때에 되려 진정으로 무모해질 수 있지 않을까? 도전을 향한 욕망과 희열이 꿈틀거린다. 지혜로워지고 싶고 위로받고 싶고 무언가를 깨닫고 싶은 욕구만큼 무모해지고 싶고 당차고 싶고 비범해지고 싶다. 이 속내가 어쩌면 여행과 독서를 향한 멈출 수 없는 갈망의 근원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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