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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 NEED YOUR VOICE Mar 24. 2020

영화 <레이디 맥베스>

욕망 아니라 욕구이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는 19세기 영국을 배경으로 억압된 여성의 일생을 점진적으로 보여준다.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1865)을 원작으로 주연 플로렌스 퓨의 폭발적인 연기력이 작품의 긴장감을 완성시킨다. 점점 증폭되는 이야기가 끝이 나면 마침내 숨을 몰아쉬게 된다.

  <레이디 맥베스>라는 제목을 보면 자연스레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맥베스>가 떠오른다. <맥베스>는 욕망에 사로잡힌 맥베스라는 인물이 어떻게 왕위에 오르고 다시 파멸에 이르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맥베스의 조력자 아내 레이디 맥베스는 권력과 욕망의 인물을 대표했다. 언뜻 보면 비극적인 결말로 수렴하는 비슷한 구조를 띄고 있지만 현실적인 시대 환경이 기본 바탕이 되어 캐서린이라는 인물을 탄생시킨다.





- 사람답게 살기 위한 욕구


  주인공 캐서린은 비가역적인 인물이다. 쉽게 받아들이지 않고 ‘아내의 본분’을 거부한다. 첫 장면인 결혼식에서 면사포를 쓴 캐서린이 식장을 계속해서 두리번거리는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는 순응하지 않고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캐서린과 남편 알렉산더는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인 것뿐이지 노예 계약이나 다름없다. 남편이 집에 없는 시간에 캐서린은 소파에 인형처럼 앉아만 있어야 한다. 불편한 코르셋과 크리놀린 안으로 살들을 옥죄고 밀어 넣은 채 말이다. 시아버지 보리스는 돈을 지불하고 캐서린을 ‘샀다는’ 이유로 그의 의지 따위는 무시해 버린다. 알렉산더는 캐서린에게 잠옷을 벗으라고 명령하고 자신에게 복종하게 만든다. 알렉산더도 보리스도 그를 어떠한 인격체로 대하고 있지 않다. 사건의 발달이 단순한 욕망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캐서린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욕구에 대한 갈증으로 마지막까지 도달하게 된다.



- 진취적인 캐릭터



  캐서린은 원초적인 욕구와 자신의 성취를 무엇보다 우선으로 생각한다. 양심과 윤리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영화 역사상 보기 힘든 여성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행동에 특별한 이유는 따르지 않는다. 단지 억압되어 있는 상태를 탈피하고 기득권층이 차지하고 있는 권리를 동등하게 누리려는 것뿐이다.  

  처음 남편의 집으로 온 캐서린에게 하인 안나와 알렉산더는 계속해서 춥지 않냐고 물어본다. 춥지 않다는 캐서린의 대답은 무시한 채, 밖은 추우니 나가지 말라는 말만 반복한다.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만 있으라는 강요를 성의 없는 이유로 둘러댄다. 그러나 캐서린은 이를 무시하고 알렉산더와 보리스가 집을 비우자마자 외출을 한다. 바람을 가로지르며 스산한 언덕을 걸어가는 그의 모습은 위태롭지 않고 자유롭다.

  알렉산더가 벌을 주고 복종시킨 것처럼, 캐서린은 하인 세바스찬을 대상으로 똑같이 행동한다. 세바스찬은 심심하다는 이유로 안나를 공중에 매달고 가축처럼 대하는 인물이다. 그런 그에게 캐서린은 벽을 보고 서라 말하며 굴복할 것을 말한다. 캐서린이 세바스찬과의 관계에서 원하는 것은 사랑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우위이다. 키스와 섹스를 할 때도 주독적인 위치를 유지하며, 본인의 잠옷과 비슷한 흰 옷을 세바스찬에게 입힌다. 후반부에 이르러서 세바스찬이 캐서린이 저지른 짓을 털어놓고 상하 관계를 뒤집자 캐서린은 가차 없이 세바스찬을 버리고 범인으로 몰아세운다.



- 침묵을 경계하다



  안나는 성별과 인종, 계급으로 모두 약자의 자리에 위치해 있다. 그는 여성이며 유색인종이고, 하인이다. 그는 저항할 수 없는 인물이다. 주워진 여건을 벗어나지 않고 순종한다. 정확히 캐서린과 반대되는 캐릭터이다. 안나는 왜 죄를 뒤집어쓰고 가장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걸까. 작품은 안나를 통해 크게 두 가지 이야기를 제시한다. 먼저 19세기에 낮은 계급의 여성이  어떠한 환경 속에서 살았고 어떤 끔찍한 대우를 받았는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안나와 비슷한 계층에 놓인 세바스찬은 안나와는 다른 성향을 보인다. 자신보다 높은 계급인 캐서린에게 굽히지 않고, 안나, 그리고 다른 여성 하인들을 성희롱하는 극악스러운 인물이다. 그는 남성이기 때문이다. 유색인종의 피가 흐르고, 하위 계급임에도 불구하고 특정 성별이 특권인 사회 속에서 세바스찬은 힘을 쥐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는 안나가 더욱 입을 열 수 없게 한다.   

  한편으로는 침묵하는 자에게 메시지를 전한다. 안나는 침묵하는 인물이다. 주어진 상황, 목격한 사건, 본인의 억울함 앞에 입을 닫고 목소리를 잃는다. “이게 거짓말이라면 안나가 말하겠죠.” 캐서린이 안나에게 누명을 씌우면서 하는 말이다. 바로 다음 장면은 체념한 표정과 넋이 나간 안나의 모습이 이어진다. 결국 말하지 못 한 그는 대항하지 못하고 잡혀간다. 작품은 안나라는 인물을 통해 침묵과 체념의 파급력과 이를 경계하라는 의미를 전한다.



- 가부장제의 붕괴



  캐서린이 결국 혼자 남게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레이디 맥베스>의 다음 이야기를 상상해보면 과연 비극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는 시아버지와 남편, 마지막으로 남편의 아이를 살해한다. 캐서린이 있었던 저택은 고립되어 있고 주변 인적을 찾을 수 없다. 독립된 하나의 사회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저택에서 그는 자신을 억압하는 집안을 몰살시키고 차지한다. 그는 세바스찬과의 관계에서 임신을 한 상태로 권력을 쟁취하고 자신의 집안을 새롭게 확립한다. 이는 가부장제의 몰락과 붕괴를 나타낸다. 여성들이 객체에서 주체가 되는 하나의 사회가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우리를 통제하고 속박하는 사회에 어떻게 맞서고 나아가야 하는지,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지점 앞에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캐서린을 통해 배운다. <레이디 맥베스>는 가부장제를 전복하는 여성의 서사를 다루며 페미니즘 영화이다. 캐서린은 ‘악녀’라고 치부되던 레이디 맥베스의 이미지를 탈피해 부속적 존재가 아닌 ‘악인’ 그 자체로 남는다.




기획·글/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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