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할 수 없고 알려지지 않은
*본 게시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작품 속에서 주체적인 여성상을 찾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대형 뮤지컬의 주연은 과반수 남성들이 꿰차고 있으며 남성 위주 서사가 대부분이다. 그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특징 없이 전형적으로 다뤄진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여성 서사, 여성 창작자가 제작한 작품들을 주류로 끌어올리기 위한 판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마리퀴리>는 과학자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창작 뮤지컬이다. 2018 창작산실 신작으로 초연에 올랐고, 올해 3월 풍부해진 연출로 재연을 마쳤다. 작품은 과학자로서 이방인이자 여성이었던 그가 겪었던 삶을 조명한다. 방사성 물질 라듐의 발견으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지만, 라듐의 유해성을 알고난 후 고뇌하는 그를 통해 극의 깊이를 더한다. 천세은 극작가는 “딸에게 읽어주려던 위인전의 ‘퀴리 부인’이라는 제목에 눈이 머물더라고요. 하나뿐인 딸인데 누군가의 부인으로 키우는 건가? 딸에게 ‘마리 퀴리’를 소개해주고 싶어 작품을 시작하게 됐습니다.”라는 창작 계기를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 오프닝
작품 속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의 양면을 다뤘다는 것이다. 단순히 위인의 위대함이 아닌 라듐의 발견 과정 속에서 드러난 위험성과 그로 인한 과학자의 번뇌를 그린다. 이를 통해 마리의 삶 자체에 집중한다. 안느 코발스키는 라듐 시계 공장의 직공들이 방사능에 노출되어 많은 목숨을 잃었던 ‘라듐 걸스’라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창작된 캐릭터이다. 안느는 마리를 존경하고 뒤따르는 동시에 직공들의 억울한 죽음의 사실을 파헤치고 대항한다.
넘버 ‘오프닝’은 마리가 소르본 대학으로 가는 여정 속 안느와의 첫 만남을 담고 있다. 마리를 둘러싸고 펼쳐진 주기율표. 그는 그 안에 공란을 채우고 싶다 말한다. 그의 실력으로 찾아낼 원소는 여성도 이민자도 누군가의 아내도 아닌 본인의 이름을 대신한다. 마리는 그것이 권력층에게 복수하는 자신만의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도둑맞을 뻔한 마리의 가방을 안느가 찾아주면서 둘의 인연은 시작된다. 두 인물은 약자로서 겪었던 불합리함을 공유하며 연대한다. 안느는 과학에 대해 잘 모르지만 자신의 한계를 깨부수고 계속해서 도전하는 마리에게 무한한 응원과 경애를 표한다. 마리는 아무도 가지 않는 길을 걷고 뒤따라올 다음 세대들을 위해 맞선다. 혼자 광야를 개척하고 외로운 1세대로 꿋꿋하게 나아간다.
- 나의 또 다른 이름, 라듐
긴 시간과 노력 끝에 라듐 추출을 성공한 마리. 사실상 마리의 연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남편 피에르 퀴리와 공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다. 피에르 퀴리와 함께 하기 전에는 눈앞에 수치가 뻔히 있는데도 학회는 마리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
1부의 마지막 넘버 ‘또 다른 이름’에서 라듐의 이중성 앞에 괴로워하는 마리의 감정선이 폭발한다. 그는 라듐의 위험성을 알아차리고 고뇌한다. 자신이 가려던 길이 이곳이 아님을 깨닫지만 분명 라듐의 도움을 받은 환자들이 존재하는 것도 알고 있다.
난 이상한 괴짜야. 난 떠도는 이민자. 난 설쳐대는 폴렉. 내 이름 없었지. 홀로 작은 유성처럼 떠다니는 짙고 푸른 너. 제 몸에 상처를 내어 폭발하는 독하고 모난 나. 나의 또 다른 이름. 너, 라듐.
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라듐은 마리 자신을 나타낸다. 온 삶을 라듐 연구에 매진한 그는 그 자체를 본인의 삶이라고 느끼고 체화한다. 라듐의 위험성이 밝혀지면 본인도 부정당할까봐 두려워한다. 위에 알려지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이라며 불안에 휩싸인다. 넘버 ‘또 다른 이름’을 통해 관객은 그가 감당해야 했던 견제와 수많은 방해물의 무게를 체감한다.
- 안느와 직공들의 이야기
극 초반부에 직공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흰 망토를 두른 채 라듐의 실험체인 쥐를 표현한다. 머지않아 그들이 쥐처럼 죽어갈 것을 암시한다.
안느는 직공들의 죽음이 라듐 때문이라는 것을 넘버 ‘죽은 직공들을 위한 볼레로’를 통해 고발한다. 이 넘버에서 죽은 직공들은 자신의 죽음이 매독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소리치며 볼레로에 맞춰 춤을 춘다. 라벨의 ‘볼레로’를 변주한 넘버는 직공들의 억울함과 어우러져 감각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직공들은 안느의 입을 통해서가 아닌, 자신의 입으로 사연과 분노를 표출한다. 작품은 그들을 이미 죽은 대상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직공들의 이름을 호명하는 안느를 통해 생명 하나하나의 존엄성을 일깨운다.
- 난 항상 너였어
김태형 연출가는 마리와 안느, 두 사람의 서사와 연대 그리고 목소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처음부터 배우들, 작가, 작곡가와 공유하며 극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리와 안느가 함께 하는 풍부한 넘버와 연출은 연대의 의미를 부각한다.
넘버 ‘그댄 내게 별’에서 둘은 단순한 우정 그 이상의 관계로 나아간다. “길을 잃은 날 의심할 때, 너는 나보다 더 날 믿어줬지”라고 말하는 마리와 “춥고 어두운 길 널 따라서 가.”라고 답하는 안느. 둘은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 의지한다. 높은 무대 세트 위에 올라가 서로를 바라보며 노래하는 동안, 멀어진 세트의 거리는 점차 좁혀진다. 서로 떨어져 있을 때는 위태로워 보이던 두 사람이 가까워지자 안정적인 균형을 잡는다. 이러한 연출은 두 사람의 상호적인 관계, 서로가 서로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한다. 동시에 이러한 연대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안느는 앞길을 밝혀주는 마리로 인해 성장하고 마리는 안느로 인해 라듐이 곧 자신이라는 불안감에서 탈피한다.
- 1세대에서 2세대, 또 다음 세대로
<마리 퀴리>의 임종 직전의 마리가 딸에게 유언장을 전하고 과거의 일을 말해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폭풍처럼 몰아치던 극의 전개가 끝나고,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그리고 마리가 줄곧 앉아 있던 실험실의 의자에 딸이 자리하며 극이 마무리된다. 실제로 마리 스클로도프스카 퀴리 다음으로 물리학자인 장녀 이렌이 연구소의 운영은 맡은 것처럼 말이다. 이로써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세대에서 세대로, 또 다음 세대로 이어질 긴 경로를 상상하게 된다.
뮤지컬 <마리 퀴리>를 통해 여성에게 주워졌던 사회의 잣대와 한계를 다시금 자각한다. 또한 혼자 모든 걸 감내해 왔을 마리의 삶에 존경과 감사를 표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여성의 실수’가 남성에 비해 얼마나 박하게 다뤄졌는지 깨닫는다.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고 이름도 남기지 못했을 수많은 여성들을 떠올리며, 다음 세대에게 전해질 더 나은 세상을 꿈꾼다.
기획·글/ 산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