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틈 없이 달리는 욕망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영국 앤 여왕과 그를 둘러싼 두 여성, 사라 제닝스와 에비게일 힐의 궁중암투를 다루었다. 데보라 데이비스가 오랜 시간에 걸쳐 각본을 맡았으며. <더 랍스터>, <킬링디어> 등 인간의 관계를 독특하고 기묘한 시각으로 그려온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간 앤 여왕의 삶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스토리텔링 되어 왔다. 끊임없이 질투하고, 사랑하며, 욕망하는 세 여성은 러닝타임 내내 발언을 멈추지 않는다. 작품은 18세기 화려한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이들의 모습을 강렬하게 복기한다.
메리 여왕과의 갈등, 이른 결혼과 남편의 죽음, 거듭되는 유산 등 앤 여왕의 개인적 삶은 불운했다고 전해진다. 영화는 즉위 이후 앤 여왕의 모습을 비춘다. 거동조차 힘들어진 앤은 오랜 친구이자 동반자인 사라에게 의지한다. 사랑을 기반으로 시작된 둘의 관계에 사라의 사촌 에비게일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새로운 갈등을 맞이한다.
한계가 없어야지
프롤로그에서 앤 여왕은 사랑에도 한계가 있다는 사라의 말에 “한계가 없어야지.” 라고 대꾸한다.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그들의 대사는 앞으로 펼쳐질 관계를 암시한다. 외로움을 호소하며 사랑을 갈구하는 앤과 정치적이고 냉정한 사라의 감정은 계속 대립한다.
사라는 앤에게 느끼는 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한다. 그는 다른 신하들처럼 아첨하지 않는다. 설령 독한 말이라도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앤은 사라에게 의지하고 존재에 위안을 얻는다.
앤의 집권기에 영국 왕정은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지역 지주들에게 힘이 실려 있는 야당은 토지세 증가에 반항하며, 프랑스와 전쟁을 지속하려는 내각을 견제한다. 전쟁 영웅을 남편으로 둔 사라는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원하는 것을 얻는다. 히스테릭한 앤과 달리 사라는 객관적인 판단력을 지닌 인물이다. 앤과의 친분을 이용하는 듯 보이지만, 그는 본래 정치적으로 유능하며 발언에 장악력이 있다. 둘은 전혀 다르다. 신분부터 성격까지 모두 다르지만 그들은 왕궁 내에서 누구보다 깊은 관계를 유지한다.
치열한 게임
사라의 사촌 에비게일은 일을 구하기 위해 궁에 찾아온다. 아버지의 도박 빚에 떠밀려 귀족에서 평민으로 전락한 에비게일은 영민하다. 사라의 시녀를 기점으로 에비게일은 그에 버금가는 권력을 꿈꾸기 시작한다. 앤과 사라를 관찰하던 에비게일은 그들이 보통의 상하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우연히 숨어 있던 서가에서 사라와 앤의 성관계를 목격한다.
영화의 제목 “favourite”은 직역 그대로 인기 있는 사람을 뜻하기도 하지만 인기 있는 말, 즉 경주마를 뜻하기도 한다. “경주”는 자주 등장한다. 짙은 화장을 하고 모인 귀족 남성들은 오리들을 데려와 경주를 시키고, 앤과 사라는 랍스터를 겨루게 하며 놀이를 즐긴다. 연이어 등장하는 “경주”의 이미지는 사라와 에비게일의 치열한 게임을 드러낸다. 욕망을 표출하기 시작한 에비게일은 앤에게 접근한다. 사라의 노련함을 습득한 에비게일은 야당을 구슬려 협상을 시도하고, 본격적인 신분 상승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앤이 수차례 잃은 자식처럼 아끼는 토끼들을 돌보고, 앤의 심경을 보듬어주며 둘은 점점 가까워진다.
위기를 느끼는 사라는 둘을 떼어놓기 위해 움직이지만, 사라에게서 느낄 수 없던 사랑을 에비게일에게 받아낸 앤은 이를 무시한다. 사라의 분노와 에비게일의 권력욕이 심화될수록 앤은 두 여성이 자신에게 질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사라의 조언을 거부하며 상황을 즐긴다.
앤과 가까워졌지만 에비게일은 안주하지 않는다. 차마 범접할 수 없는 사라의 위치는 그를 불안으로 몰아넣는다. 시녀에 머물 수밖에 없자 에비게일은 귀족 남성과 결혼을 계획한다. 에비게일의 계략에 넘어간 사라는 궁 밖에서 쓰러진 뒤 한동안 실종되고, 에비게일은 앤의 도움으로 결혼에 성공한다. 에비게일의 남편은 철저한 수단으로 묘사된다. 첫날밤을 보내는 에비게일의 눈동자는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사라에 대한 혼란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린 게임의 목적이 달랐어
돌아온 사라는 질투심에 휩싸인다. 그는 자신이 앤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그를 협박한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라는 앤을 찾아가 대화를 시도한다. 왜 에비게일처럼 사랑해주지 않느냐는 앤의 질문에 사라는 마지막까지 진심을 전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 사랑이라는 그의 외침에는 어떠한 정치적인 함의도, 목적도 없다. 앤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는 사라의 표정에서 관객은 그의 사랑을 환기한다.
여왕의 방 열쇠와 서가를 차지하게 된 에비게일의 얼굴에는 여유가 넘친다. 승리를 확신하는 그에게 사라는 “우리는 게임의 목적이 달랐어.”라고 일갈한다. 에비게일과 사라의 욕망은 비슷한 형태로 움직인다. 그들이 쟁취하고자 하는 것은 앤의 관심과 사랑이며, 그것은 곧 궁 안에서 절대적 권력을 상징한다. 그러나 에비게일에게 앤의 사랑이 수단이었다면, 사라에게는 수단과 목적으로 동시에 작용했다는 것을 대사를 통해 알 수 있다.
확대
다양한 숏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광각렌즈로 비춘 것 같은 촬영기법과 감정을 드러내는 클로즈업이다. 영화는 웅장한 궁의 전경과 세 여성의 갈등을 광각렌즈로 비춘 것처럼 투영한다. 가장자리가 휘고 한 곳으로 몰린 초점은 시선의 긴장을 응축시킨다.
뺏고 빼앗기는 상황 속에서 급변하는 이들의 감정은 클로즈업을 통해 극대화 된다. 변덕이 심하고 지속적으로 애정을 요구하는 앤의 절규, 비굴한 상황에 무릎을 꿇으면서도 상대의 허점을 노리는 에비게일의 영악함, 궁지에 몰려도 이성을 잃지 않는 사라의 품위들이 보다 가까운 시야에 들어와 입체감을 높인다.
8장. 칼로 당신 눈을 찌르는 꿈을 꿨어
사라가 궁에서 쫓긴 후에도 에비게일은 앤의 완벽한 사랑을 얻지 못한다. 그는 사라의 편지를 기다리는 앤의 감정을 직감하고 모든 우편물을 검열한다. “칼로 당신 눈을 찌르는 꿈을 꿨어.”는 사라가 앤에게 보내기 위해 숱하게 버리고 지운 편지의 첫 문장 중 하나이다. 사랑하는 이에게 배신당한 분노를 표하면서도, 돌아가기를 간청해야 하는 사라는 편지의 마지막을 “친구 사라가”로 마무리한다. 이 대목에서 에비게일은 혼자 있는 공간에서 눈물을 보인다.
그는 사라의 모든 것을 빼앗고 싶지만, 계획처럼 되지 않는다. 여왕이 야당의 손을 들어주고 내각이 개편되자 사라의 입지는 더욱 불안정해진다. 편지의 답변을 기다리던 사라는 결국 더 먼 곳으로 추방당한다. 몰려오는 군인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영국을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사라의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앤은 에비게일이 자신의 토끼를 학대하는 것을 목도한다. 다리를 주무르라 명령한 앤의 눈은 황망하고, 에비게일의 얼굴은 앤의 상처를 상징하는 토끼와 겹쳐진다.
두 여성의 야망은 역사적으로 “영화”라는 문화가 답습해온 남성 위주의 거대담론을 뒤집는다. 남성 위주의 철학과 사상을 기반으로 제작된 영화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은 거침없이 욕망하고 주장하는 일에 배제되어 왔다. 우스꽝스러운 화장을 하고 부인에게 의존하는 유약한 귀족 남성들은 과거 주로 여성캐릭터가 맡았던 역할을 수행한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득이나 헛된 욕정에 빠진 남성들은 에비게일과 사라에게 휘말려 존재감을 부각하지 못한다. 영화는 서사적으로, 시각적으로도 극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이 영화로 앤 역을 맡은 배우 올리비아 콜먼은 골든글로브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그 뿐만 아니라, 레이첼 와이즈의 내공과 엠마스톤의 민첩한 연기는 각 인물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이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도 역사 속에 존재했던 여성 인물들의 삶과 욕망이 다양한 형태로 재탄생되기를 바란다.
글.기획/상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