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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 NEED YOUR VOICE Apr 21. 2020

영화 <아틀랜틱스>

미래를 가진 아다

           

 

  2019년 칸 영화제에서는 다양한 화제작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마티 디옵 감독의 <애틀란틱스>는 흑인 혼혈 여성 최초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하며 칸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세네갈 국민들의 임금체불 문제와 이슬람 종교권 내에서 일어나는 여성혐오를 조명한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 주목 받으며 칸 내에 여성 감독의 영향력을 넓혔다.

  칸의 72년 역사 중 첫 흑인 여성 감독의 출현인데다 2등상 수상 또한 최초로 수상하게 된 마티 디옵은 “칸에 초청된 최초의 흑인 여성 감독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상당히 슬펐다. 최초라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내가 흑인 여성이라는 점이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닌 자연스럽고 평범한 일이 되기 위해서 아직 갈 길이 멀구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자랄 때 나에게 영감을 준 흑인 영화감독이나 혼혈 영화감독이 없었는데, 내가 젊은 세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 된다면 정말로 좋을 것 같다.” 라는 말을 남기며 칸의 보수성과 더불어 여성 영화의 지향점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사라진 사람들     


  영화의 첫 장면은 임금체불에 저항하는 세네갈 청년들의 모습이다. 흙으로 무성한 마을에 소떼가 돌아다니고, 제대로 된 안전장비 없이 빌딩을 세우는 그들은 끝내 제 몫을 받지 못한다. <아틀랜틱스>는 세네갈에 불어온 신자유주의 바람과 그로 인해 심화되는 사회 양극화 현상을 다룬다. 임금을 받지 못하고 마을에 돌아온 청년 슐레이만은 애인 아다와 함께 해변가에 간다. 다카르에 거주하는 아다는 정혼자가 있지만 슐레이만과 교제 중이다. 돈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곳에서 더 이상 비전을 찾지 못한 슐레이만은 마을 청년들과 함께 유럽으로 향하는 배에 오른다. 작은 배는 거친 파도에 금세 뒤집히고, 청년들은 모두 대서양 한 가운데에서 실종된다.



  세네갈은 서부 아프리카에 있는 국가로 이슬람교 비중이 전체 종교인 비율의 95프로를 차지한다. 아다가 거주하는 마을 사람들 또한 모두 이슬람 교인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굳건한 믿음을 지니고 있는 여성은 몸을 가리고 정숙을 지키고, 이를 거부하는 여성들은 자유로운 일상을 살아가고자 한다. 아다는 이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이다. 슐레이만이 사라진 직후까지 그는 자신을 분명히 정체화하지 못한다. 아다에게 슐레이만은 사랑하는 사람인 동시에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의 대상이다. 아다는 친구들과 어울리며 겉모습을 자유화 했지만, 밖에 나가기 위해 매일 밤 창문으로 출입하며 원치 않는 결혼을 준비한다.          



뒤집힌 눈동자


  아다의 결혼식을 기점으로 영화의 서사는 새로운 지점을 맞이한다. 아다의 신혼집 침대에 누군가 불을 지른 것이다. 열병을 앓는 몸을 이끌고 현장에 온 경위 이사는 아다를 조사하며 범인을 찾는다. 일부 사람들은 아다의 결혼식장에서 슐레이만을 봤다고 진술한다. 이사가 소속된 경찰은 사라진 청년들의 존재에 대해 침묵하고 아다의 정혼자가 권력계층이라는 이유로 수사도 철회하려 한다. 이사는 이들의 실종을 다시 되짚고, 아다와 슐레이만의 관계를 의심하며 조사를 강행한다. 처녀성 검사까지 받아야 했던 아다는 조사 직후 정혼자의 손길을 뿌리치고 완전히 독립한다. 그는 자신을 믿어주는 여성이자 바를 운영하는 디오르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그 무렵 마을에는 열병이 퍼진다. 이사의 증세와 같은 열병을 앓는 여성들이 밤마다 사라지기 시작한다. 그들은 임금을 주지 않은 사장의 집에 찾아가 경고한다. 청년들을 실었던 배처럼 여성들의 눈은 하얗게 뒤집혀 있다.

  다음 날 눈을 뜬 여성들은 자신들이 망령에 휩싸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코란이 담겨져 있던 성수를 뿌려보고, 색색의 천으로 몸을 가려도 병은 낫지 않는다.



디오르     


  방황하는 아다에게 버팀목이 되어주는 디오르는 마을에 남은 여성들에게 하나의 축처럼 존재한다. 신은 나 무서워해, 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는 그는 침묵하지 않는다. 그는 아다가 결혼식에 갈등할 때 현실적인 조언을 건넸고, 몸을 가리고 다니지 않아서 망령에 휩싸였다고 믿는 여성에게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절대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한 종교 사회에서 디오르는 존재 자체로 큰 반항이다. 엄격한 규율를 버렸지만 신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없는 다른 여성들과는 달리 그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는다. 대서양에서 실종된 남성들의 망령이 남겨진 여성들에게 향하고, 그들은 디오르의 바에 모인다. 그는 가장 먼저 그들을 알아보고, 아다에게 이끄는 인물이다. 자신을 옭아매던 것들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아다와 디오르의 관계는, 남겨진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준다.           



시선     


  <아틀랜틱스>는 연속적으로 바다를 비춘다. 아다가 슐레이만과 함께 봤던 빛나는 해변가를 마지막으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와 수평선은 다카르 다운타운의 기운을 전달한다. 날카롭지만 낮은 음으로 울리는 음악은 물결과 함께 독특한 서스펜스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이곳에 남겨진 여성들의 시선과 방향을 아다를 중심으로 따라간다. 카메라 워킹 또한 단순하다. 아다는 자주 홀로 걷는다. 흙먼지가 자욱한 거리 위 아다의 움직임을 관객은 함께 쫓는다.

  배를 타다 실종된 청년들의 이야기는 십년 전 마티 디옵 감독이 세네갈에 방문해서 알게 된  실화이다. 감독은 자신이 목도한 것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하늘로 높게 뻗어나가는 새 빌딩들, 그것들을 짓기 위해 기업에게 착취당하는 세네갈 사람들, 종교적 가부장제에 얽혀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해 갈등하는 여성들. 관객은 건축 기업 사장을 찾아가는 여성들의 섬뜩하고 망연한 눈동자에서, 자유주의와 어긋난 충돌을 마주한 사회의 리얼리즘을 본다.     



돌아온 슐레이만     


  영화 속에서 슐레이만은 이사의 몸을 통해 돌아온다. 이사는 아다에게 강압적인 진술을 요구하며 가부장 사회의 폭력성을 답습하고 있는 남성이지만, 기업과 경찰의 유착관계를 거부하고 신념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 이유 때문인지, 이사는 유일하게 열병에 걸린다. 슐레이만이 이사의 몸에 깃들었다는 것을 안 아다는 그와 성관계를 갖는다. 그들의 정신적 재회는 작품 속에서 이어온 서사의 선형적 흐름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다른 망령들과 달리 오직 슐레이만 만이 남성의 몸에 빙의되어 육체적 관계를 나누는 결말은 이성애적 담론이 다소 짙게 표방되었다고 느껴진다.



  <아틀랜틱스>는 잠시 돌아온 슐레이만과 아다의 재회를 보여준 뒤 끝난다. 아다 옆에서 정신을 차린 이사는 자신이 곧 슐레이만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사건을 종결시킨다. 아침을 맞은 바에서 디오르의 기척을 느낀 아다는 잠에서 깬다. 그는 거울을 보며 혼자 남은 자신을 마주한다. 지난밤을 기억 속에 새긴 아다의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 또렷하다. 그 안에는 앞으로의 삶에 대한 새로운 욕망이 들어 있다. 미래의 아다, 라고 말하는 그는 슐레이만도 가족도 없는 공간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른다.   





             

  마티 디옵은 전하고자 하는 장면을 분명히 전달했다. 열악한 노동법과 환경, 극심해지는 빈부 격차와 시대 변화 속에서도 뿌리를 견고히 하고 있는 종교계의 여성혐오까지. 한 시간 사십분의 러닝타임 안에 많은 것들이 담겨있다. <아틀랜틱스>를 통해 닿아본 적 없는 대서양 위에서, 혹은 그 너머 국가에서 생존을 위해 선택을 강행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본다. 불평등과 불의에 억압된 이들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여성의 시선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마티 디옵의 인터뷰 내용처럼, 앞으로 더 많은 여성 감독들이 도전하고, 주목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글.기획/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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