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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 NEED YOUR VOICE Apr 28. 2020

언제나 가까운 여성영화, 퍼플레이 단편선

<어떤 알고리즘>, <전학생>, <마더 인 로>

 

*본 게시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어떤 알고리즘>(2017) : 미성숙한 사랑을 직시하는 일


<어떤 알고리즘>(2017) 감독 민미홍


 <어떤 알고리즘>은 청소년기의 불완전한 사랑을 담은 퀴어 단편영화이다. 40분이라는 러닝타임 속에서 인물들의 감정 전개를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동성애자의 이야기로 ‘낙화유수’의 극본을 쓰고 있는 지원. ‘낙화유수’를 연기하는 배우이자 민아와 헤어진 애인인 윤정. 윤정과의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학교에서 안 좋은 시선을 받고 있는 민아. 세 인물의 미숙하고도 위태로운 관계를 따라가다 보면 누구도 쉽게 비난할 수 없는 비극을 맞이한다.


녹음되지 않는 감정

 

  지원은 동성애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채로 극본을 쓰고 있었다. 레즈비언 커플 속 남자 역할이니까 남성스럽게 연기를 하라고 지도한다던가, 머리가 짧은 민아에게 남자 역할 아니냐고 묻는다던가. 편견 가득하고 무지한 상태였다. 그는 단순히 동성애자에 대해 알아가겠다는 계기로 실제 레즈비언인 민아와의 인터뷰를 시작하지만 점점 민아를 좋아하게 된다.

  처음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지원은 민아의 말을 녹음하고, 민아는 지원의 귀에 이어폰 한쪽을 꽂아 음악을 같이 듣는다. 음악을 듣는 동안 녹음된 공백처럼, 민아를 향한 지원의 마음은 형용할 수 없는 새로운 감정으로 자리 잡는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정은 설레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마주하는 시선


  지원은 인터뷰 형식처럼 민아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는다. 지원의 카메라가 계속 민아를 향하다가, 민아가 그것을 갑작스럽게 뺏어 들고 지원을 찍는다. 카메라를 제대로 응시하지 못하는 지원의 모습은 자신의 정체성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카메라의 렌즈는 서로의 시점으로 대변된다. 작품 중후반부에 이르러 지원이 민아의 눈을 정확히 바라볼 때 둘은 키스를 나누며 마음을 확인한다.



  민아는 모든 사건의 중심에 놓여 있지만 작품은 그의 이야기를 말해주지 않는다. 극 후반부에 다다라 완성된 <낙화유수>를 연기하는 학생에 의해서 우리는 추측할 뿐이다. 그들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을 생각하며, 자신을 속이고 감추고 연기하며 잃었을 우리의 일부를 떠올린다.



<전학생>(2015): 일상의 범주 바깥에서


<전학생>(2015) 감독 박지인


  <전학생>은 북한에서 온 주인공이 남한의 학교로 전학을 가기까지의 상황을 담은 단편영화이다. 영화의 제목은 <전학생>이지만 학교는 후반부에 짧게 등장할 뿐 주요 배경이 아니다. 주인공 수향은 전학 갈 학교에서 말할 자기소개를 준비한다. 뉴스를 보며 남한 표준어를 따라 하고 틈이 날 때마다 연습한다. 작품 속에서 직접적인 차별이 연출되지는 않지만 수향에게 닿는 모든 평범함이 차별이고 폭력이다.


웃는 연습

 

  수향은 카페에서 일하는 언니를 찾아간다. 언니는 카페 사장이 웃는 연습을 시키는데 웃는 게 힘들다며,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웃을 수 없는 것은 언니뿐만이 아니다. 수향 또한 거울을 보며 어색한 모습으로 웃는 연습을 한다. 쉽게 툭 내뱉어진 음성들처럼 많은 것들이 그들을 웃지 못하게 만든다. 버스에서 수향을 친 남고생들이 던지는 사과, 교복 가게에서 수향의 북한 억양을 듣고 중국에서 왔냐고 묻는 주인. 작품 마지막에서 수향이 북한에서 왔다고 소개해버린 선생님의 말로 인해, 수향의 노력과 다짐은 물거품이 돼버린다. 그 순간 수향은 달라진 교실의 분위기와 아이들의 시선을 느낀다. 그럼에도 그는 억지로 웃어 보인다. 부자연스러운 수향의 웃음은 가혹하고 비참하게 다가온다.     

 

흰 바람벽이 있어


  우리에게 지극히 따분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낯설다. 똑같은 교복이 싫어서 수선하는 학생들의 모습은 수향이 느낄 수 없는 소속감이다. 그는 새 교복이 너무 비싸서 친구 라옥의 교복을 빌려 입는다.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아 별이 없다는 수향의 말에 그래도 불빛이 많다고 라옥은 답한다. 그들은 불빛이 가득한 아파트 단지를 바라본다. 별을 찾는 수향과 별을 불빛으로 타협하는 라옥의 모습은 수향보다 남한의 생활을 잘 알고 있는 라옥의 현실로 비친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찼다.” 수향이 집으로 돌아와 읊는 백석의 시 <흰 바람벽이 있어>는 수향의 상태를 상기시킨다.  





  전학생이라는 수식어로도 벅찬 수향에게 너무 많은 주석들이 딸려 있다. 작품을 다 보고 나면 과연 우리도 수향에게 무심한 차별을 행하는 그들과 다른가, 질문하게 된다. 차별과 폭력을 웃는 얼굴로 직면하는 수향을 통해 섣부른 판단과 배려가 사회가 지정한 ‘평범함’과 구별 짓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간다.



<마더 인 로>(2019): 종이의 모난 부분을 잘라가며


<마더 인 로>(2019) 감독 신승은


  <마더 인 로>는 현서의 애인 민진과 현서의 엄마 형숙의 대면을 담은 단편영화이다. 민진은 딸의 자취방에 김치를 주러 온 형숙과 처음 마주한다. 딸이 레즈비언인 것을 모르는 형숙 앞에서 민진은 현서와 친구 사이라고 속인다. 자취방에 현서가 올 때까지 둘이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동성 애인의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샐리와 오드리

 

  형숙은 딸의 자취방에 얹혀사는 민진의 첫인상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어색함을 풀어나가려는 민진의 노력에 대화를 이어나간다. 민진은 자신이 현서의 애인인 것을 들킬까 봐 노심초사한다. 삐거덕거리는 자취방 속 의자처럼, 뚜껑이 맞지 않는 반찬통처럼. 뻣뻣한 둘의 관계는 민진이 영어를 가르쳐주면서 서서히 풀려간다. 자취방 바닥에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 둘의 영어 이름인 샐리와 오드리가 나란히 적힌 공책은 동등한 시선을 제시하고, 인물과 인물의 만남 그 자체를 집중하게 한다.

 

mother-in-law


  형숙은 친구 딸의 결혼식을 갔다가 영어를 못해서 외국인이었던 사위랑 한마디도 나누지 못했다고 토로한다. 영문과인 민진은 간단한 인사를 영어로 알려준다. 시어머니가 영어로 무엇이냐는 형숙의 물음에 민진은 공책에 ‘mother-in-law’와 한글 발음 ‘마더인로’를 써주며 알려준다. 장모님도 똑같은 호칭을 쓴다는 민진의 말은 한국의 호칭 언어 속 문제점에 봉착한다. ‘장모님’, ‘시어머니’ 같은 복잡한 이해관계를 야기하는 언어들을 되돌아보고, ‘동성 애인의 어머니’를 부를 호칭의 부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마더 인 로>는 주고받는 대화 속에 가볍지만은 않은, 해결해야 할 과제 거리를 안겨준다. 기존 이성애 체제의 언어들은 소수자들을 너무나 쉽게 배제한다. 호칭 정리는 곧 관계의 간결성으로 다가올 것이고, 누구도 제외하지 않는 평등한 언어를 구축할 것이다. 민진이 울퉁불퉁한 종이의 가장자리를 가위로 정리하는 일은 곧 우리 모두가 함께 다듬어야 할 문제이다.



*<어떤 알고리즘>, <전학생>, <마더 인 로>는 여성 영화 플랫폼 서비스 ‘퍼플레이’에서 5월 20일까지 무료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기획·글/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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