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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 NEED YOUR VOICE Jun 08. 2020

여성 인물 헌정글, 작가 정세랑

"바로 옆자리 퍼즐처럼 가까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데일리




바로 옆자리 퍼즐처럼 가까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제는 소설 <피프티 피플>의 작가의 말에서 가져왔다. 다정하고 안온한 말이다. <피프티 피플>은 모두 각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오십 여 명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작가의 마지막 한 마디는 안온하지만, 그가 써내려간 모든 인물들의 삶이 마냥 따뜻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이 소설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계와 닮아 있다. 방심한 채로 모퉁이를 돌면 빈번히 마주칠 수 있는 불행과, 비슷한 맥락으로 나타나는 행복이 오십 여 명의 삶 곳곳에서 도사리고 있다. 한 사람의 이야기도 쓰기 쉽지 않은데, 이 작가는 오십 개를 써냈다. 각 장의 주인공들의 빛과 어둠, 절정의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가 탄생시킨 이 책은 친근하지만 꼼꼼하게 잘 지어진 벽돌집 같다. 각자 모양도 색깔도 모두 다를 수 있지만, 섬세하게 쌓아 오르면서 하나의 벽돌도 흐트러지거나 빠져서는 안 되는 유기적인 구조를 띤다. 바로 이 책이 단단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번 헌정글을 통해 되짚어볼 여성 인물은, 이 책의 작가 정세랑이다.      


  내가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정세랑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미 장편 <피프티피플>, <보건교사 안은영> 등으로 많은 독자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생소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더 호기심이 생겼다. 민음사, 창비 등 많은 세션에서 그의 책들을 볼 수 있었다. 수상집과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위주로 책을 읽어오던 나에게 정세랑은 이름 자체로 또 다른 장르처럼 다가왔다. 책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앞으로 읽어나갈 새로운 작가의 세계를 무척 기대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 들어, 오래전부터 점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던 문학계의 흐름들이 보다 분명해졌다고 느낀다. 여성주의 문학의 폭이 확장되었고, 장르문학의 진입로가 보다 가시화되었으며, 소형 출판사를 비롯한 다양한 잡지나 월간지가 출판 형식의 다양성을 높이고 있다. 이 모든 지점에 맞닿아 있는 작가가 바로 정세랑이 아닐까.

  나는 <피프티 피플>을 시작으로 <보건교사 안은영>, <옥상에서 만나요>, <지구에서 한아뿐>, <덧니를 보고 싶어>, <목소리를 드릴게요>를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일찍 알지 못했다는 것을 후회하면서, 정말 즐겁게 읽어나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독자들이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그의 행적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인터뷰나 작품들을 본격적으로 찾아 읽기 전까지, 앞서 말한 책들이 전에 썼던 작품을 재출간 한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그가 다작하는 작가일 것이라고 추측해왔다. 그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자신만의 목소리로 세상의 작은 퍼즐들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월간중앙

 

  정세랑의 작품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불합리한 상황을 마주하고, 차별 당하고 억압당하며, 상대적으로 소외된 이들과 더불어 사회가 규정한 보편성에 멀어 보이는 독특한 이들도 많다. 정세랑은 그들이 헤쳐 나가는 삶의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그 속에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성을 면밀한 관찰을 통해 이야기로 탄생시키고, 유연하게 흘려보낸다.


  문학은 언제나 사회와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 작가가 살아온 시대와 당시 쓰인 작품은 그런 이유에서 닮아 있다. 독자는 그 지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고 파고든다. 허구의 인물과 상황이 현재의 “나”와 동시대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 혹은 비슷한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 작가는 빠르게 흘러가는 생의 흐름 속에서 그러한 지점들을 찾아내고, 다듬는다. 정세랑은 전형적인 “소설”의 구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시선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그의 시선은 장르를 뛰어 넘는다. 예기치 못한 상상력과 전혀 다른 시공간이 등장해도 그것은 변함이 없다. 정세랑은 우리 주변부의 인물, 상황, 사회, 관계성을 세밀하게 캐치해낸다. 그렇게 그는, 있을 법한 불행과 있을 법한 희망을 골고루 구현해낸다. 작품을 위해 설치한 작위적인 밸런스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닮은 자연스러운 삶의 현상으로 녹여내는 것이다.


  “적의에 대해 생각해.
적의에 오래 노출되고도 괜찮은 사람은 여기든 거기든 없을 거야.
 그 나쁜 입자들을 씻어낼 수 있는 샤워 비슷한 게 있다면 좋겠다고도 생각해.
간편한 에어샤워 같은 것.”

-『옥상에서 만나요』, 「효진」-
    

  그는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다. 그간 주류 문단계(정확한 표현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비유적으로 지칭한다)에 깊게 속하지 못했던 장르문학이 점점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SF는에는 미래와 현재가 공존한다. 미래의 이야기이자, 현재의 동향을 기반으로 자라난 세계이기 때문이다. 판타지도 마찬가지이다.   

  정세랑이 비춘 현재의 이야기는 언뜻 판타지 같다.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가 가장 판타지적이라는 감흥은 그럴 때 느껴졌다. 반대로, 그가 쓴 판타지와 SF는 현실 세계와 지극히 마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경계를 허물고 영역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지점에서 멈추게 되었다. 무감각하게 지나친 삶의 생경한 순간들을 놓치지 않는 그의 관찰은 탁월했다. 그러한 과정이 있기에, 그는 소설 속에서 장르를 끊임없이 허문다. 이야기 곳곳에서 그가 반복해서 쓰다듬었을 관계의 이음새를 오래도록 들여다보게 한다. 많은 것이 빠르게 급변하고 다양해지는 현 시점에 점점 더 절실해질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그를 오래도록 응원하고 싶다.





  6월 5일 그의 새 책 <시선으로부터>가 출간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전에 봤던 그의 인터뷰를 떠올렸다. 창비 유튜브 “나를 버티게 하는 건 너의 다정한 마음이야_정세랑 작가” 편에서 정세랑은 말한다. “소설이 구원이 될 수 없지만, 마음 속 작은 빛은 되어줄 수 있다.” 라고.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사람 사이의 연결성에 주목한다고 대답했다. 그의 말처럼, 소설이 바닥을 마주한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구원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먼 곳에서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작은 빛이 될 수는 있다. 그는 그 작은 빛 안에 “연대”를 심는다. 우리의 주변을 감싸는 이들과의 연대는 삶 속에 실재하는 생생한 빛이 될 수 있다. 누구보다 그것을 잘 아는 그는 한 단편소설의 말미에 이렇게 남긴다. “옥상에서 만나, 시스터.” 이 마지막 말을 천천히 되새기며, 우리의 시스터 정세랑이 앞으로 펼칠 옥상을 기대한다. 그곳이 어디든, 설령 먼 미래에 미지의 공간이라도.                

 


 유튜브 https://www.youtube.com/watch?v=Xba2Nwztz9w :

"나를 버티게 하는 건 너의 다정한 마음이야_정세랑 작가"          



글/기획. 상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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