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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 NEED YOUR VOICE Jul 20. 2020

책 『쇼코의 미소』

서늘한 미소와 청춘의 범위


쇼코의 미소│최은영│문학동네


 

  우리의 시절을 떠올려본다. “열일곱 살에도, 스물세 살에도. ‘언젠가는’이라고 말했”(9쪽)던 쇼코처럼, 단조롭거나 허황한 소망을 이야기하고 ‘언젠가는’이라는 말 속에 현재의 우울감을 밀어 넣었던 시절을 말이다. 사실 그 시절의 경계는 불분명하다. 우리는 기약이 없다는 인생의 특성을 이용하여 꿈을 꾼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렇다.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에 수록된 단편 「쇼코의 미소」는 주인공과 인물 간의 관계를 통해 인생의 환몽 같은 순간과 이상과 현실의 타협점을 보여준다. 또한 ‘가족’, ‘청춘’, ‘꿈’이라는 단어 속 고정된 감정들을 「쇼코의 미소」라는 서사를 통해 분해한다.

 

 


가족이라는 이해관계


  이야기는 쇼코와 주인공, 주인공의 가족들이 함께 했던 짧은 순간을 기점으로 뻗어 나간다. ‘한국 학생들과 일본 학생들의 문화 교류’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쇼코는 세 명의 여학생들과 함께 주인공의 학교로 견학을 왔다. 일주일 동안 주인공의 집에 머물게 된 쇼코는 주인공 가족에게 “이상한 활력”(14쪽)과 추억을 만들어 준다. 주인공에게 엄마와 할아버지는 “작동하지 않아 해마다 먼지가 쌓이고 색이 바래가는 괘종시계 같은 사람들”(같은 쪽)로 인식되어 왔다. “가족은 언제나 가장 낯선 사람들 같았다”(같은 쪽)고 느끼던 주인공의 감정은 쇼코를 만나고 “눈을 반짝이며 웃는 엄마와 말이 많은 할아버지”(같은 쪽)의 처음 보는 모습을 통해 증폭된다. 가족이라는 분류로 묶인 주인공과 엄마, 할아버지의 유대관계는 국적도 다른 낯선 타인인 쇼코의 개입으로 화목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주인공에게 이러한 화목함은 낯설게 다가온다. 그들의 관계를 들여다볼수록 결국 가족이라는 아이러니한 얽힘을 생각하게 한다.

  쇼코가 일본으로 돌아가고도 주인공과 할아버지는 쇼코를 유일한 화두로 종종 이야기한다. 쇼코는 주인공과 할아버지에게 “같은 날, 같은 분량의 편지”(16쪽)를 공평하게 보냈다. 작품 후반부에 이르러 할아버지의 영면을 앞둔 세 사람(할아버지, 주인공, 엄마)은 ‘쇼코의 편지’에 대한 이야기로 말문을 튼다. “마치 처음 사귀는 사람들처럼. 이제 막 말을 배우는 사람들처럼.”(46쪽) 대화를 이어간다. 후반부에 이르러 주인공은 할아버지가 그동안 쇼코에게 보낸 편지의 답장을 전달받으면서, 할아버지에게서 직접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를 알게 된다. 비록 더디지만, 주인공과 할아버지의 관계 회복에 쇼코가 영향을 끼친 것은 확실하다. 더 나아가 주인공과 엄마, 할아버지의 관계까지도 말이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가족의 형태는 무엇일까. 고작 10일을 함께한 타인보다 할아버지에 대해 모르는 주인공과 엄마의 무지는 무엇이며, 오랜 시간을 같이 산 가족보다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수월하게 털어놓는 할아버지의 심정은 무엇일까. 가족이라는 단위로 묶인 그들은 “언제나 가장 낯선 사람들”이라고 말한 주인공의 말처럼 쇼코의 개입이 있기 전까지 그저 ‘남’으로 자리한다. 소설은 가족이라고 서로를 향한 이해를 당연시하지 않고, 가족 간의 관계에도 여느 사람 간의 상호작용처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물들을 통해 보여준다.




청춘의 시작과 끝


  어떠한 보편은 폭력이 될 수 있다. 작품은 주인공의 ‘청춘’에 정확히 머무른다. ‘십 대 후반부터 이십 대에 걸치는’이라고 사전적으로 명시된 청춘의 시기를 따르며, 주인공의 고등학교 시절부터 서른에 이르는 시간까지 흐름을 전개한다. 우리는 ‘청춘’이라는 단어 속에 담긴 보편적으로 향유되는 이미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고통의 과정을 성장통으로 미화하거나 좋았던 한 때로 그려진 ‘청춘’의 정의는 폭력으로 다가온다. 주인공이 겪은 청춘을 어떤 누가 성장통이라는 단어로 함축할 수 있을까. 위선으로 포장된 청춘은 주인공이 삶의 과도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더욱 잠식되게 만들었다. “그래서 꿈은 죄였다. 아니, 그건 꿈도 아니었다.”(33쪽)고 자기 파괴를 하며,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34쪽)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세워둔 ‘꿈’이라는 목표가 허울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순간 벗어나기보다는 외면하고 잡아먹힌다. 이러한 주인공이 “괴물 같은 자의식만 몸집을 키워”(33쪽)가던 연속을 끊어낼 수 있었던 것은 할아버지의 죽음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가 주인공의 서울 자취방에 찾아오고, 엄마의 전화로 할아버지의 투병 사실을 알게 된 경로의 시작에도 ‘쇼코의 편지’가 있었다. 쇼코의 편지를 빌미로 할아버지가 주인공의 자취방을 찾지 않았다면, 주인공은 “병에 대해서 수치심을 느끼”(43쪽)는 할아버지의 투병 혹은 죽음을 뒤늦게 알게 됐을지도 모른다.

 

 


미소 짓는 쇼코


  그렇다면 이토록 주인공의 삶에 많은 파동을 일으킨 쇼코는 어떤 사람일까. 주인공은 쇼코의 미소를 자주 목격한다. “쇼코의 미소에서 알 수 없는 이질감을 느”(12쪽)끼기도 하고, “어린 시절에는 차갑고 어른스럽게 보이던 그 웃음에서 쇼코의 나약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읽”(26쪽)기도 하고, 다시 “어린 시절 쇼코의 미소를 보았을 때처럼 서늘”(64쪽)해지기도 한다. 쇼코의 미소에 대한 감상은 철저히 작품의 화자인 주인공의 것이다. 우리는 쇼코가 이질적으로, 또는 나약하게, 서늘하게 웃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파도처럼 격변하는 주인공의 심리에 따라 그가 미소 짓는 쇼코의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엿볼 수 있다. 처음 쇼코를 알게 됐을 때, “변화할 의지도, 아무런 목표도 없”(14쪽)는 집안과 환경에서 주인공에게 쇼코는 동경의 대상이자 새로운 탈출구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더군다나 “언젠가는 바다를 떠나서, 사방을 둘러봐도 빌딩밖에 없는 도시에서 살”(9쪽)거라는 쇼코의 계획은 주인공이 자신과 다른 듯한 이를 향한 선망에 빠지기 쉽게 만든다. 그렇게 주인공이 일본으로 찾아가 다시 마주한 쇼코는 도시가 아닌 마을 도읍의 대학에 들어갔고 “겁쟁이”(27쪽)같은 이면을 보인다. 그런 쇼코의 모습에 할 말을 잃은 주인공은 “더이상 널 볼 일은 없을 거야. 애처럼 굴지 마.”(29쪽)라는 말을 남기고 한국으로 돌아간다. 시간이 흘러 이번에는 쇼코가 한국을 방문해 주인공에게 할아버지의 편지를 통역해 주며 둘은 평정을 찾는다. 감정적인 궤도를 거쳐 서로의 모순적인 양면을 확인한 둘은 비로소 서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이다. 동경의 대상도 질투의 대상도, 비난의 대상도 아닌 비슷한 아픔과 삶을 이끌며 살아가는 사람 그 자체로 말이다.

 



 

  거짓말 같은 평온한 시간은 순간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은 오히려 쇼코가 부재한, 주인공의 불안정한 일상에 치우쳐 있다. 주인공과 쇼코가 함께 보냈던 10일의 시간은 쇼코가 찍은 필름 사진의 한 칸처럼 찰나이다. 그래서 더욱 낯설게 느껴지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게 아득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우리는 쇼코처럼 한때 입 밖으로 쉽게 뱉었던 “언젠가는”(9쪽)을 모두 기억하지 않는다.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같은 쪽)를 오랜 시간을 바치지만 그 위치를 인정하게 된다. 「쇼코의 미소」는 이러한 삶을 관통하는 비애를 그려내며 주인공의 시절을 훑는다.




기획·글/ 산하



#박원순_시장을_고발한_피해자와_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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