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E NEED YOUR VOICE Mar 17. 2020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왜 루시는 죽어야 했나




  뮤지컬을 잘 모르는 사람도 <지킬 앤 하이드>라는 작품은 알고 있을 것이다. 라이선스 뮤지컬이며 한국 뮤지컬계의 스테디셀러이다. ‘지금 이 순간’이라는 넘버 또한 한국인들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는 뮤지컬 넘버가 아닐까 싶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인간을 선과 악이라는 양면성으로 분리할 수 있는가에 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서 드라마나 예능에서도 이러한 캐릭터를 착안해 소재로 이용하거나 유머로 사용됐다.



- 줄거리


  1885년 런던, 유능한 의사이며 과학자인 헨리 지킬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선악의 이중성을 약품으로 분리하는 연구를 한다. 임상실험의 대상을 구하지 못한 지킬은 본인에게 약품을 투여한다. 실험에 의해 지킬의 정신에서 악을 대표하는 하이드가 깨어나고 그에 의해 많은 사람이 죽게 된다. 결국 지킬이 죽음에 이르고 극은 끝이 난다.

 




- 여성 캐릭터를 표현하는 방식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는 크게 두 인물이다. 엠마와 루시. 두 인물을 설명하는 소개만 보아도 작품이 얼마나 여성 혐오로 점철되어 있는지 알 수 있다.  

  엠마는 지킬의 약혼자이다. 그는 순종적이고 한결같은, 소위 ‘성녀’의 이미지로 나타난다. 결혼을 앞둔 상황에서 지킬이 위험한 실험을 감행하고 자취를 감추고 이상 행동을 보여도 기다려주는 인물이다. 지킬이 자신의 목숨을 위협해도, 지킬의 추악함이 밝혀지고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고 그를 향한 사랑은 변치 않음을 드러낸다.

  루시는 술집에서 일을 한다. 남성들 앞에서 구경을 당하며 춤을 춘다. 괴상한 채찍을 들고 다니는 포주의 폭력으로부터 매 순간 도망쳐 다닌다. ‘모두 다 똑같아’라는 걸 알고 있지만 자신을 치료해준 지킬에게 마음을 열고 그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루시를 다치게 한 것도 해치는 것도 지킬의 또 다른 자아, 하이드이다.

  극 전체에서 가장 끔찍한 부분은 강간 장면이다. 하이드가 루시를 찾아가 겁을 주며 강간하는 장면이 너무나 자극적이고 적나라하게 연출된다. 루시는 지킬에 대한 사랑을 접고 새 인생(A new life)을 외치고 떠나려 하지만 하이드는 그를 끔찍하게 살해한다. 루시의 사랑과 다짐은 정말 쉽게 짓밟혔다. 극 중의 모든 장치들이 루시의 인생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기 위해 애쓰고 있다.

 




- 루시는 왜 죽어야 했나

 

  루시는 왜 죽어야 했고 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은 누구한테 있는 걸까. 하이드의 표적은 임상 실험을 반대한 귀족들이었다. 그중 예외는 가장 약자인 루시였다. ‘dangerous game’ 넘버에서는 루시가 하이드와 비슷한 인물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하이드는 ‘넌 날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며 루시를 가두려 하고 그가 도망치려 하자 살해한다. 죽은 귀족들은 ‘모순 덩어리의 위선자’로 그려지며 악한 면모를 보여준다. 그러나 루시는 누구보다 약자의 위치에서 모든 걸 포기하며 살아가다 새로운 인생을 꿈꿨다. 작품에서는 그의 죽음에 대해 분명한 이유도, 변명도 밝히지 않는다. 루시는 철저히 지킬과 하이드라는 인물을 극적으로 배치시키기 위해 이용당한 것이다.

  지킬과 하이드는 다른 인물이 아니다. 단지 헨리 지킬이라는 인물 안에서 악으로 분리된 인격에 ‘하이드’라는 이름을 갖다 붙인 것이다. 한 사람이 두 인격을 가졌을 뿐이다. 이것을 핑계로 작품 속에선 어떠한 도덕적 책임도 지고 있지 않다. 하이드는 그냥 극악무도하고 포악한 사람이라서 그렇다는 식으로 넘겨 버린다. 그런 끔찍한 일들을 벌이고도 엠마와 결혼을 하려는 지킬의 뻔뻔함은 조명하지 않는다. 그저 그를 죽임으로써 모든 일을 무마한다. 지킬의 죽음은 파멸의 이미지와 거리가 있다. 지킬은 스스로 선택하고 자신의 오랜 친구 어터슨의 칼에 몸을 던져 죽는다. 지킬의 죽음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며 슬퍼하고 그를 용서한다.

 




- In his eyes


  ‘in his eyes’라는 넘버는 루시와 엠마가 지킬을 사이에 두고 사랑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흔히들 ‘삼각관계’라고 말하는 구조가 딱 알맞겠다. 루시와 엠마의 사랑을 대조시키는 형태를 보면 두 여성 캐릭터가 오직 지킬을 부각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엠마는 순결하고 순수한 사랑, 루시는 삶의 마지막 희망인 사랑으로 말이다. 이러한 여성 캐릭터의 감정이나 사랑을 불필요하게 부풀려서 사랑에 지배적인 여성상을 구축한다.

  엠마와 루시의 무대 의상 차이만 보아도 여성 캐릭터의 전형성을 확인할 수 있다. 엠마의 의상은 주로 무채색으로 정적이고 지고지순한 그의 특징을 나타낸다. 루시의 의상은 피폐나 타락의 이미지로 자주 사용되는 붉은 계열의 노출이 심한 드레스이다.






  <지킬 앤 하이드>가 한국에서 2004년 초연을 시작했을 때와 지금 사회는 많이 바뀌었다.  현재에도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지만 작품 속 문제점과 혐오들은 개선되지 않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강간 장면도 수정되지 않았다. 여성의 죽음과 불행을 하나의 소재거리로 써버리는 작품을 고전이라는 이유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작품 속 깊게 박혀 있는 사회의 불평등과 여성 혐오를 아름다운 넘버와 빼어난 연기에 속지 말고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 이러한 작품의 불매는 곧 여성들이 이끄는 뮤지컬의 판도를 열어줄 것이다.  





기획·글/ 산하

작가의 이전글 뮤지컬 <노틀담 드 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