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빠
일어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스마트폰을 켰다. 블루라이트에 눈을 찌푸렸지만 기어이 SNS을 살펴본다. 그중 눈에 들어오는 뭔가.. 바로 '부고' 친구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친구와의 인연은 고등학교 2학년부터였다. 늘 보는 사이는 아니지만, 항상 봐야 하는데...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힌 그런 친구이다. 작년 말부터 보려고 했으나 우선순위가 계속 뒤로 뒤로 결국 부고 소식으로 만남이 이루어졌다.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 책을 들었다가 다시 가방 속에 넣었다. 그리고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을 보면서 어지럽게 옛날 생각이 난다. 독서실에서, 만화방에서, 당구장에서, 하굣길에서.. 20여 년이 훌쩍 지났고 생생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빛바랜 그림책 같은 기억이었다. 그 친구는 항상 전교 1등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우리 반 반장이었다. 처음에 어떻게 친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분명 공부 잘하는 친구를 옆에 두고 싶었던 나의 사심이었으리라.. 어려운 수학문제라 있으면 슬며시 그 친구가 독서실 자리에 있는지 쳐다보곤 했다.
기차에서 내리니 특유의 항구도시만에 으슬으슬한 바람이 있다. 오후 5시. 괜히 점심을 건너뛰었을까? 허기지다. 지하철로 향해 내려가던 계단 중간에서 다시 역사로 돌아온다. 급하게 어묵 한 개를 입안에 쑤셔 넣다 사래가 들렸다. 우리 아버지였다면 이렇게 어묵 한 개를 위해 다시 돌아올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퇴근 시간의 비족은 지하철 안으로 몸을 실었다.
"인수야~"
여기가 맞나? 두리번거리는데, 까만 양복무리들 사이에서 친구가 먼저 알아본다. 연거푸 멀리 와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안 쪽으로 들어간다. 친구의 뒷모습. 십 대에서 이제 사십 대 중반의 친구의 뒷모습을 따라 나도 안 쪽으로 들어간다. 자동적으로 향을 피우고, 두 번 절하고, 친구와 한 번 절한다.
"고생했다."
머뭇머뭇 무슨 이야기를 해야 되나. 이런 고민을 하는 찰나 밥이 차려진다. 익숙한 밥 차림. 친구는 밥을 먹으라고 하면서 아버님 이야기를 한다. 이 이야기를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했을까? 이때 친구 얼굴을 자세히 본다. 수염도 제대로 깍지 못하고, 푸석푸석하고 머리는 산발, 그래 네 모습이 모든 걸 말해주네. 친구는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안부를 묻고, 딸 이야기를 하고 사람 사는 이야기를 한다. 나도 내 이야기를 하면서 이렇게 약 1년 만에 만난 우리는 우리 이야기를 한다.
오랫동안 봐 왔던 친구지만, 오래 보지 못했다. 1년이 한번 볼까 말까. 하지만 늘 할 이야기가 있고, 행복한 필터로 필터링된 추억을 공유한다. 그래서 매일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했지만, 인스턴트 같은 관계와는 사뭇 다르다. 비록 친구 아버님 장례식장이지만 친구가 반가울 수 있었던 건 그 추억 때문이 아닐까?
"이제 일어나 볼게.."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내려오는 기차안과 다른 기분이다. 역시나 집중이 안된다. 창밖에 알지 못하는 도시의 야경이 지나가듯, 고등학교 시절 추억들이 반짝거렸다. 졸다 깨다 꿈인지 추억인지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