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잖아, 가족이라면 그렇게 해야 돼.
순간의 실수는 1초였다.
그 1초만 되돌릴 수 있다면......
발 밑에 닿아야 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했는데, 없었다. 그 자리에는 허공만이 있었고, 지탱할 게 없었던 나는 중력의 힘으로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편도체가 내 손을 움직였고 본능적으로 짚었다. 투둑~ 그렇게 나는 오른쪽 손으로 무언가를 짚었고, 옆구리에 강한 충격과 함께 오른쪽으로 넘어졌다. 무언가 잘 못되었다. 움직일 수 없었고 오른쪽 손목은 내 것이 아닌 듯했다. "학생, 119에 신고해 줘.."바닥에 몸을 누운 채 1초 실수를 한 계단이 보였다. 그리고 뿌옇게 흐린 날, 눈물인가? 부슬부슬 비가 흩어진다.
아침을 먹고 날씨는 흐렸지만, 조용한 집에 적적해서 일찍 집을 나섰다. 비가 오는 건지 마는 건지 보슬비가 주위를 감싸는 착잡한 거리를 뚫고 복지회관 셔틀버스 타는 곳으로 무거운 발을 옮겼다. 이게 무슨 비라고, 비를 피하려고 올라간 편의점 앞 계단, 여기서부터였다. 백내장이 더 심해졌는지, 뿌였게 보이는 풍경 속에 저기 셔틀버스처럼 보이는 노란색 미니버스가 보였다. "복지회관 셔틀인가?" 의식적 판단은 여기까지였고, 그 이후는 편도체가 이끄는 대로... 그렇게 나는 넘어졌고, 119를 타게 되었다.
"선생님, 저 많이 다쳤나요?" 친절한 119 대원은 안심시키는 말투로 위로했지만 딱 죽고 싶은 생각이다. 그냥 이대로 눈이 감겼으면, 그냥 다시 일어나지 않았으면... 참 빠르다. 어느새 어디인 줄 모르는 병원에 도착했고 파란색 옷을 입은 의사인지, 간호사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몸에 부착한다. 모든 게 정리하고 나서야 링거 주사가 몸에 박혀있었고, 시간의 인과관계를 판단할 수 없었다.
손목뼈 골절, 갈비뼈 4개 골절.. 약 2시간이 지난 후 흰 가운을 잎은 의사 선생님이 사무적으로 알려주신 상태였다. 낯선 얼굴.. 딸이 왔다. 딸의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놀라움, 안도, 걱정.. "괜찮아.." 많은 표정이 담겨 있지만 내 입은 이렇게 말할 뿐이다. 아프다. 숨쉬기도 힘들고 오른쪽 손은 내 것이 아닌 거 같다. 딸과 의사가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그냥 눈을 감았다. 눈에서 무언가 흘러내렸지만, 1초, 그 1초 전으로 돌아갔으면..
낮인지 밤인지 알 수 없는 환한 형광등만 보이는 병실에서 남편이 왔다. 표정이 없는 남편의 얼굴에서도 팔자주름이 보인다. 심각한가? 뻣뻣한 팔, 그리고 몸뚱이 그렇게 결박당한 느낌으로 잠만 온다. 그렇게 남들한테는 아무렇지 않은 평일 목요일에 이렇게 지나갔다.
손목뼈 골절은 어려운 수술이 아니라고 한다. 어려운 수술, 자기한테만 그렇지 나한테는 쉬운 게 있을까? 부기가 빠지자 수술실로 간다. 이렇게 빨리? 내심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제 보았던 흰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 부분 마취를 했지만 생전 처음 들어보는 소리에 가상의 아픔이 느껴진다. "선생님, 귀마개 쫌 씌어주세요." 그렇게 생전 껴보지 않는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듣는다.
슬프다. 억울하다. 후회된다. 1초만 그 1초만, 틀이 안 왔더라면, 계단 위로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집 안에 적적하지 않았더라면,,, 후회가 물밀듯이 왔지만 다 안다. 쓸데없다는 것을... 미간에 팔자주름을 한 딸은 내 옆에 있다. "미용실은 어쩌고..." 아무 말이 없다. 나도 더 이상 말할 힘도 없고, 그냥 딸에게 기댄다. 최근 여러 가지 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딸인데.. 날 걱정해 주는 마음을 그냥 기댄다.
송곳으로 찔리면 이런 아픔일까? 무통을 하면 속이 뒤집히고, 무통을 하지 않으면 팔이 떨어져 나갈 듯하다. 수술을 했지만 바람 들어간 고무장갑 같은 느낌이다. 잠이라도 와야 하는데, "선생님, 너무 아픈데예. 진통제 쫌 더 주이소." 무통은 안되고 기댈 곳은 딸과 진통제뿐이다. 하얀 천장 그리고 소리 없이 TV에 눈이 가 있을 뿐이다. 머리에 불이 꺼져있다.
딸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눈을 떴는데 작은 TV 음량만 들리고 주위는 온통 암흑이다. 언제까지 누워있어야 하나? 정신은 몽롱하면서 또렷하다. 머리는 정상인가 보다.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어느 때나 다름없이 복지관을 떠날 때 집이 생각난다. 먹을 것도 없는데.. 남편은 뭐 먹고 지내나? 원룸 세입자가 들어오는데 바쁠 시기인데 여기서 난 뭐 하고 있나? 점점 또렷해진다.
"띠리리리~" 전화벨 소리에 정신을 차린다. 남편이다. "띠리리리~" 부동산이다. "띠리리리~" 딸이다. "띠리리리~" 아들이다. 살아있음을 느끼는 동시에 한심하다. 할 게 산더미 같은데, 아프다. 옆구리도 아프고 팔도 아프다. 움직이고 싶다. 한 달이면 될까? 아니 석 달이면 될까? 탁구 라켓을 휘두르지 못해도 카운트 정도는 매길 수 있지 않을까? 집에서, 병원에서 이러고 있긴 지옥 같은 하루하루이다. 생각이 또렷해질수록 후회도 또렷해진다. 올해 어떻게 보낼까? 갈비뼈가 내장을 상하게 한 건 아닐까? "식사시간입니다." 달라고 하지 않는 식사가 나온다. 밥맛이 없지만, 의무적으로 숟가락을 들었다. 왈칵, 눈물이 나오려고 하지만 눈물샘도 말라버렸나? 숟가락을 내려놓고 다시 누웠다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