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빠
"딩동~"
엄마가 대문을 열어주는 소리가 들리고, 누나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지금 몇시고?" 지금 시간은 새벽 1시, 아빠는 안방에서 술을 드시고 계신다. 나는 내 방에서 제발 별 일 없이 지나가기를 기도하고 있다. 16평 작은 빌라이기에 작은 소리도 집 어디에 있든 잘 들린다. "니 미친나? 시간이 몇시고?" 엄마 목소리만 들린다. 엄마는 최대한 화를 참는 듯하지만 짜증이 나고, 실망스러운 작은 떨림이 목소리에 담겨 있다. 단지 제발 아빠만 나오질 않기를..
"쾅~ 니 뭐 하는 놈이고?" 드디어 터졌다. 아빠가 나왔다. 이제 아빠 목소리 밖에 들리지 않는다. 제발 이러질 않기를 바랐었는데, 흥분한 아빠, 누나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왔으면 됐다. 씻고 자라" 급하게 상황을 마무리하려는 엄마의 노력이 보인다. 아빠는 취해있다. 악보의 크레셴도같이 아빠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그만큼 엄마의 목소리도 커진다. "빨리 잘못했다 해라." 하지만 얇은 내 방문 밖에 엄마와 아빠만 있는 듯한 누나는 침묵했다.
"아야~ 아프다!!" 누나의 목소리, 아빠의 화가 입에서 팔다리로 갔나 보다. 무섭다. 제발, 이러지 말기로 그토록 바랬는데,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 슬며시 문을 열고 나간다. 누나가 오기 전에는 어둠만이 있었는데,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에 유난히 형광등이 밝아 보인다.
누나는 대학교 3학년 나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집에서 대학교로 등하교를 했던 누나는 대학생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러나 밤 11시가 다가오면 엄마는 TV를 보는 건지 시계를 보는 건지... 주방 겸 거실에 있는 전화기를 붙들고 삐삐에 음성녹음을 한다. 하지만 전화기는 조용했다. 이 상황은 한 번이 아니었다. 거의 일주일에 한두 번, 시작은 엄마였고, 마지막은 아빠와 누나의 파이팅이었다. 그리고 나는?
나는 보릿자루처럼 아무 말 없이 서 있다. 아빠는 두 눈이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와 같이 부릅떠져 있고, 술냄새가 진동했다. 그렇게 누나를 잡아먹을 듯이, 팔을 휘두르고, 엄마는 필사적으로 아빠 팔다리를 잡고 있다. 드디어 누나의 목소리가 들린다. 울고 있다. 어떤 마음일까? 억울해서? 이 상황이 싫어서? 그렇게 아무 말 없이 눈물만 주르륵... 나는 그냥 서있다. 집안의 가구처럼.
주변인이었다. 선원이셨던 아빠가 선원을 그만두시고 집에서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하는 동안 늘 이렇게 불협화음이 발생했다. 누나와 아빠는 밥 먹을 때만 같은 공간에 있었고, 늘 누나방은 문이 닫혀 있었다. 항상 도화선은 새벽 12시였다. 파이팅은 새벽 3시까지 이어졌고, 나는 내 방에서 이불 안에서 울기도 하고, 귀를 막기도 하고 잠은 사치였다. 고3인데,,,
상황은 점점 안 좋아졌다. 엄마가 말리면 다시 방으로 가서 아빠는 소주를 드셨다. 제발 술 안 드시면 안 되나? 이 야심한 밤에 이웃들도 깰 정도로 큰 소리가 난다. 누나는 무릎을 꿇고 있고, 아무 말 없지만 마룻바닥에 물이 흥건하다. 눈물.. 난 "좀 그만해!!!!"라고 마음속으로만 몇 번 소리치지만 결코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아빠가 나오자 다시 파이팅이 시작된다. 허리가 안 좋은 엄마는 필사적으로 아빠의 팔다리를 붙들고 있다. 하지만 덩치가 좋은 아빠의 힘을 막을 수 없다. 그렇게 누나는 아빠한테 머리카락도 잡혔다가 어딘가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도 났지만 어디에서 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빠!! 폭력은 제발..." 집안 가구처럼 있던 나의 입에서 속으로만 삼켰던 말이 갑자기 발끝부터 입까지 쑤욱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엄마 그리고 아빠의 그 눈,, 아빠는 "니도 똑같은 놈이야, 어디 아빠한테..." 나의 몸이 자동적으로 움직였다. 누나와 그리고 엄마, 아빠와의 간격 1미터, 그 사이에 들어가서 누나 쪽으로 몸을 틀었다.
"퍽~"
뭔가 커다란 게 내 어깨에 충격을 준다. 뒤를 돌아보니 이제 아빠가 나에게 맹수의 눈빛을 보내고 있고, 아빠 팔다리를 잡고 있는 엄마의 작은 뒷모습.. 밑을 보니 커다란 도마가 떨어져 있다. 도마.. 순간 공포감이 온몸을 감쌌다. "인수야, 너도 잘못했다고 해라.." 엄마의 흐느끼는 목소리.. 그렇게 나도 누나 옆에 다소곳이 무릎을 꿇는다.
모두 이해할 수 없다. 지긋지긋했다. 그땐 나만 정상인 것 같았다. 뭐가 잘 못되었을까? 이런 생각을 1초 동안 했었을까? 공포감과 원망의 감정으로 꽉 차버렸다. 새벽 4시, 누나와 나는 무릎을 꿇었고, 엄마는 아빠를 달래고 있다. 내일 학교 가야 하는데... 나는 누나 편이었다. 사실 엄마도 누나한테 화가 났지만 누나 편이었다. 그렇게 아빠는 혼자 세 명과 싸워야 했다. 물론 그땐 아빠가 너무 싫었지만 아빤 혼자였다.
그 후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어느 추석날이었다. 처갓집에서 작은 방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웅웅~" 전화기 진동이 느껴졌다. 누나 전화였다. 시간을 봤다. 저녁 8시 반, 이 시간에 누나가 왜?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전화 건너편에서는 익숙한 누나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아빠하고 엄마가 싸운다. 인수야.. 경찰에 신고했다.. 무섭다." 차키를 들고 주차장으로 뛰어갔다. 그렇게 광주에서 김해로 약 3시간이 되는 길을 음악도 들을 수 없었고, 온통 머릿속에 별 일 아니라고 되뇌며 운전에만 집중했다.
3시간이 30시간 같았지만, 어느새 김해 톨게이트를 지나가고 있다. 어떻게 이 먼 길을 왔는지 마치 정신을 읽은 것처럼 기억나지 않지만 온통 빨리 가야겠다는 간절함만 있었다. 이상한 번호로 전화가 온다. 난생처음 경찰과 전화통화를 해본다. 이상하게 밝은 목소리였던 경찰은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킨다. 자기가 잘 해결했다고 전해준다. 그런데 머릿속을 더 복잡해지고, 심장은 더 뛰었다. 어떻게 끊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빨리 도착하고 싶은 마음만 들었다.
"딩동"
누나가 문을 열어준다. 엄마는 힘없이 바닥에 털썩 앉아있고, 누나는 눈이 퉁퉁 부어있다. 아빠가 보이지 않는다. 엄마는 나를 보자마자 아빠 욕을 하기 시작한다. 듣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아빠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에게 전화를 하면서 온 동네를 뛰어다녔다. 전화는 무의미한 통화대기음만 들리고, 주위 편의점은 다 가보았다.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집 앞에서 어떡해야 될지 몰라서 서성이고 있는데, 저 멀리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아빠~"
아빠는 고3 때의 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어깨가 축 늘어뜨려져 있었고, 목소리도 다정했다. 경찰이 와서 놀랐던가? 이제껏 엄마와 누나의 이야기를 들어왔었는데, 처음으로 아빠와 함께 작은 벤치에 앉았다. 담배를 끊었던 아빠가 호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든다. 여전히 심장이 두근거렸고, 손이 차가웠지만 이상하리만큼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한 번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아빠에게 듣고 싶었다. 그렇게 부자는 벤치에서 1시간가량 이야기를 했다. 처음으로.. 아빠 이야기를.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아빠는 뱃사람이었다. 1년에 2~3주 정도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아빠가 너무 좋았고, 아빠가 돌아가는 마지막 밤에는 그리워서 울곤 했다. 아주 어렸을 적, 하지만 떨어짐의 간격이 너무 컸을까? 사춘기동안의 아빠가 없는 공간이 익숙해져 있었을까? 적응 기간 없이 실직자가 되셔서 집에 가면 담배 냄새와 작은 책상에서 무언가를 보고 있던 아빠의 뒷모습. 학창 시절동안 나에게는 아빠가 없는 환경에 적응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 말도 없었고, 나 또한 할 말이 없었다. 의도치 않았지만 아빠는 그렇게 주변인이 되어있었다.
아빠는 자신을 제외하고 엄마와 누나가 어떤 일을 벌이는데, 신경이 쓰였다. 물론 의도치 않았지만 자신만 제외된다는 기분이다. 그 감정은 자신을 무시한다는 격한 감정으로 치닫고, 결국 엄마와 누나를 힘으로 분출했다. 결국 아빠는 외로웠던 것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내 편에 서 달라고... 그 표현을 하고 있는 거였다. 듣고 또 들었다. 사실 공감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지만 애써 무시했다. 오늘은 아빠 편이 되어주기로 작정했다.
아빠와 함께 집으로 들어왔다. 우리 가족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치 토크쇼 MC처럼 사회를 보는 느낌이지만 이 날은 달랐다. 처음으로 아빠 편이 되어 진심으로 아빠 생각을 나만의 말로 변형해서 엄마와 누나한테 이야기했다. 더 이상 아빠는 화를 내지 않았다. 새벽 3시, 역시 싸우면 새벽 3시는 기본이다. 아빠가 이렇게 점잖게 말하는 걸 처음 봤다. 나이가 드셔서 힘이 빠졌을까? 아니면 자기편이 있어서 그런 걸까? 여전히 헷갈렸지만 두 번째라고 애써 생각했다.
"나 이제 갈게.." 3시간 정도 잠을 잤을까? 늘 그렇듯 유난히 조용하고, 지친 아침이 돌아왔다. 다시 처갓집을 가려고 옷을 입고 있는데, 누나도 깨고 아빠도 깨서 나온다. 다시 일상이다. 이렇게 빨리 정리된 적이 없었는데.. 막상 가려고 하니 중요한 걸 놓아두고 오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뒤돌아보고 뒤돌아 본다. 우리 가족은 기어코 밑으로 내려와 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본다. 백밀러로 유난히 나이 들어 보이는 아빠, 엄마와 이제는 중년이 돼버린 누나의 모습이 괜스레 가슴이 먹먹해온다.
차가운 가을 아침공기를 맞으며, 텅 빈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2시간 정도 달렸을까? 전화벨이 울린다. 엄마였다. 엄마는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아빠라 미안하다고 하더라. 평생 미안하다는 소리 처음 듣는다. 이 양반이 늙었나?" 잘 모르겠다. 경찰이 와서 놀란 건지, 자기편이 되어서 풀어졌는지, 하지만 중요한 건 작은 내 방에서 두려움에 이불속에 벌벌 떨었던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아직도 아빠를 생각하면 뭔가 야단맞을 듯한 기분이 들지만, 이제 나도 한 아이의 아빠이다. 아빠와 아들이기보다는 성인 대 성인으로 아빠의 마음을 공감하려 했다.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았다. 변한 건 그리 없다. 여전히 누나와 아빠의 관계는 안 좋고, 늘 엄마는 우리 가족이 불협화음 없이 행복하기를 바란다. 행복, 물론 좋은데 솔직히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안 되는 건 인정하고 그걸 억지로 끼워 맞추는 건 서로에게 힘들다. 나이 드신 부모님께 전혀 통하지 않는 말이지만 아들, 딸이 아닌 그냥 동등한 성인으로 생각하고,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으면 그대로 내버려 두는 건 어떨까?
처갓집에 도착하니, 와이프가 날 껴안아준다. 긴장이 풀어졌을까? 눈물이 나오려는데, 처제도 있고, 장모님도 있어서 눈물을 다시 넣어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