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일하지?

이기적인 삶

by 워리치

고등학교에 올라와서 첫 번째 수학시험의 점수는 60점이었다. 성적에 실망해서 조용히 서랍 속에 시험지를 넣어두었다. 주위가 어수선했다. 내 주위를 살펴보니 앞자리가 대부분 1에서 3 사이였다. 내 생각에 상위 5% 이상이었던 것 같다. 약 1분 사이로 부끄러운 점수에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점수로 바뀌었다. 이후 수학점수 12점을 받았을 때도 평균은 5점이었다. 이과, 문과를 갈 때 거침없었다. 남들의 기대처럼 당당히 이과를 선택했다.


건축학과가 탑이었다. 의대, 법대를 제외하고 공부를 좀 하던 사람들은 대부분 건축과를 염두에 두었다. 내 성적은 '너 진짜 공부 잘하구나'도 아닌 그렇다고 '너 공부 안 하는구나'도 아닌 이러지도 않은 적당히 놀 수 있고, 적당히 선생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성적이었다. 그렇게 공대진학을 하게 된다.


전공은 재미가 없었다. 정말 재미있었던 수업은 학점이 절망이었다. 아이러니하게, 친구들과 인가가 좋았던 수업의 점수는 그럭저럭 볼 만했고, 흥미로워서 혼자 들었던 수업은 만회가 힘들었다. 그래서 계절학기를 대학교 3학년 때부터 꾸준히 들었다. 학점 관리를 위해서,, 계절학기를 듣는 사람치고 잘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나 또한 아슬아슬하게 취업 서류전형에 지원할 수준, 토익도 마찬가지였다.


운이 좋았다. 수십 개의 원서를 넣었으나 딱 한 군데! 성실하고 말 잘 듣게 생긴 관상을 보았을까? 난 그렇게 대기업 엔지니어로 입사하게 되었다. 사실 그때 한창 붐이었던 벤처를 가고 싶었지만, 수강신청할 때처럼 튀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결국 졸업생들이 선호하는 그런 직장에만 타겟팅했었고, 딱 한 군데!!! 합격을 줬던 그곳에 의심 없이 입사했다.


17년을 일하고, 정확하게 버텨냈다. 그리고 퇴사를 했다. 퇴사를 위해 생애 최초로 사주라는 것도 보고 부모님 앞에서 그리고 와이프 앞에서 울기도 했다. 너무나 힘든데, 너무나 맞지 않는데, 미래는 마치 따뜻한 겨울에 몰려오는 미세먼지 만큼 흐렸다. 퇴사를 했지만, 길을 잃었다.


'넌 뭐가 되고 싶어?' 중학교 2학년, 비가 와서 체육을 하지 못하고 교실에서 체육수업을 하던 체육선생님이 이렇게 물어봤다. '외교관이 되고 싶어요.' 학교 동급생들의 조금은 비꼬는 듯한 느낌의 탄성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난 왜 외교관이 되고 싶었을까?


수학을 잘했다고 이과를 선택했다. 많은 사람들이 건축공학과를 가니깐 건축과를 가고 싶었다. 벤처를 가고 싶었지만 주위에서 대기업을 지원하니 그렇게 했다. 한 번도 왜 이과를 가려고 했어? 왜 건축공학과를 가고 싶었어? 왜 대기업을 가려해? 왜? 왜? 왜? 이런 질문들은 교과서에 나와 있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나 자신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다.


'왜'가 아닌 '무엇'에만 집중했다. 동사가 아닌 명사만을 보았다. 퇴사를 하고 이제야 원점부터 생각하게 된다. 유치원 때 한글을 배울 때 그토록 많이 사용했던 '왜'라는 단어를 잊고 살았었다. 왜 책을 읽어? 왜 작가가 되려고 했어? 왜 퇴사를 했어? 머리가 아프다. 그냥 바로 나오지 않는다. 몇 십 년 동안 잊고 있었던 단어였기에 그 해답을 찾기 위해 기웃거린다.


기웃거림..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참 줏대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제부터 '나'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세상 사람들이 어디가 좋다고, 그것을 해라고 해도, 스스로의 생각과 판단을 기웃거린다. 그게 아니면 다시 돌아오면 되고 재미있으면 노력하면 된다. 삶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지 남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조금은 이기적으로 충분히 남을 위한 삶을 살았으니,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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