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험한 세상을 알려준 순진한 형님에게..

장기기억 속 작은 에세이

by 워리치

이 녀석과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초등 아니 국민학교 2학년 때부터였는지, 아마도 그 정도이지 싶다. 같은 중학교로 진학했고 고등학교 때는 아쉽게 헤어졌다. 그리고 대학교, 아마 그 이후로 그 녀석의 소식은 들을 수 없었다. 그 녀석도 나를 가끔 떠올릴까? 고등학교 시절 33번 버스를 타야 하는데 128번 버스를 탔다. 33번은 도서관으로 가는 버스였고 128번은 그 녀석 집으로 가는 버스였다. 약 1시간, 주말에 도서관 가는 척 집을 나와서 곧장 그 녀석 집에서 휴식을 취했다. 비디오도 보고, 짜장면도 시켜 먹고..


사실 10여 년 간 그 녀석을 떠올린 적이 없다. 글감을 찾으면서, 문득 떠올랐다. 어떤 하나의 기억! 아픈 기억이지만 그 시절 때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만한 기억! 바로 무서운 형님을 만난 기억이다. 설렘이라는 게 참 그렇다. 설렘은 현실이 되는 순간 없어진다. 그 녀석과 부산 초읍에 있는 어린이회관을 그 녀석과 그 녀석 동생, 나 이렇게 3명이서 가기로 했다. 참 그게 뭐라고, 일주일 전부터 설레는 기분이란, 아무튼 그날이 왔다. 국민학교 5학년 즈음이었다.(정확히 기억이 안 나지만,) 햇살이 따뜻하고 완전한 봄날씨! 날씨가 너무 화창해서 더울 지경이었다. 하얀색 사파리 잠바, 기억난다. 유일하게 가지고 있었던 사파리 잠바, 이해되지 않지만 때 타지 않는 복장을 좋아하는 어머니가 어떻게 이런 색깔을 사줬는지... 장기기억 속에 저장되지 않을 정도로 사소했을까? 여하튼 흰색 사파리 잠바만이 기억 속에 있다.


아무튼, 버스를 타고 초읍에 있는 어린이회관에 갔다. 성지곡수원지라는 곳은 1980년대 부산에서 유원지로는 유명했고 지금으로 치면 형편없지만 부산에서 놀이동산으로는 아이들의 1순위였다. 입구에서 놀이동산으로 가는 길은 초등학생의 짧은 다리로는 꽤나 먼 거리다. 5월의 부산, 나무 위에 벚꽃은 없지만 비로 인해 바닥에 눌어붙어 있는 벚꽃들이 종종 보인다. 더웠다. 수많은 유치한 놀이를 하면서 우리는 그곳에 도착했으리라. 기억난다. 가장 처음 탄 놀이기구는 '다람쥐통'이라는 것이다. 동그란 원통 안에 4명이, 2명씩 마주 보고 타면 원통이 빙글빙글 돌아간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으면서 침을 흘리기도 하고, 여러 원통 중에 유독 잘 돌아가는 통, 그렇지 않은 통이 있었다. 물론 우리는 잘 돌아가는 통을 기대하며, 녹색통이 잘 돌아간다니, 노란 통이 잘 돌아간다니 의미 없지만 꽤나 진지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놀이동산에서 1시간 정도 지났을까? 우리는 화장실로 간다. 그때였다. 그 녀석 어깨에 누가 어깨동무를 한 팔이 보인다. 누구지? 아는 사람인가? 그러는 찰나, 나의 어깨에도 누군가의 팔이 감싸 안는다. 처음 보는 얼굴, 그 얼굴에서 조용한 음성이 들려온다. "그냥 따라오나, 죽는다.."


걸렸다. 그래 처음으로 걸려들었다. 말로만 들었던 삥. 그렇게 우리는 화장실로 순순히 걸어간다. 마치 아무렇지도 않은 듯, 며칠 전에 계속 봐왔던 친구처럼. 이 형님이 사랑하는 연인도 아는데, 심장 뛰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올 정도로 팔닥거린다. 그래, 무서웠다.


각자 배정된(?) 화장실 칸에 들어갔다. 어떤 대화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몸이 휘청거린다. 머리를 맞은 듯하다. 아픈지도 모르겠다.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지나고 나니 알게 되었지만 그때는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다 꺼내!!" 그래 네가 원하는 건 그거지, 그렇게 다 털렸다. 그 당시 일주일 용돈이 약 1,500원, 이 날 초등학교 5학년 작은 청바지 안에 2,000원이 지폐와 동전으로 있었다. 다 드렸다. 깔끔하게.


형님들은 원하는 목적을 이루고 나니, 문을 열어준다. 여전히 심장이 목에 걸린 것처럼 얼굴 가까이 뛰고 있는 느낌이었고 출구로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가려는 찰나... "야!!!" 뛸까? 그냥 저 입구까지 뛸까? 하지만 어느새 뒤를 돌아보고 있다. "쨍그렁~" 발밑으로 무언가가 떨어진다.


100원짜리 2개가 내 발밑에서 원을 그리면서 돌고 있다. "차비." 그래, 이 형님들 양심은 있다. 집에는 가라는 배려였다. 형님들 놀라지 않게, 마치 내가 떨어뜨린 것처럼 천천히 앉아서 동전을 줍는다. 그리고 화장실 밖으로 나오니 여전히 햇살은 따뜻했고, 바람은 시원했고,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인수야~" 잊고 있었던 그 녀석이다.


그날 놀이동산의 화장실은 '삥'의 천국이었을게다. 나뿐만이 아니라 혼자 온 여럿 초등학생들이 제물이 되지 않았을까? 놀이동산에 도착한 지 1시간 만에 우리의 일정은 끝이 났다. 200원, 그 녀석도 200원 형님들은 한 파였고 200원이라는 룰이 있었나 보다. 마치 멀리서 장례식장을 찾아준 조문객에 차비를 주는 부산의 전통처럼...


왜 200원이었을까? 그때 어린이 차비는 100원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이 또한 배려였을까? 우리는 슈퍼마켓에 들어가 피크닉(음료수)을 하나씩 사 먹는다. 여기까지다. 그날의 기억은 희미하지만, 어린 나에게 세상은 참 험하다는 것을 알려준 소중한 경험이다. 그리고 귀엽고 순진한 경험이다. 귀여움은 그래도 나들이라고 피크닉을 사 먹은 작은 아이이고, 순진함은 큰 형님들의 배려이다.


그땐 그랬다. 지금과 다른 그런 순진함이 있었다. 너무나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요즘 아이들, 가끔은 어른과 같은 행동을 하면서 아이의 위치를 이용한다. 그때도 무서운 세상이지만 지금은 살벌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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