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위한 휴직일까? 휴직을 위한 육아일까?

대기업 부장님과 함께 사는 육아 아빠 이야기 [아빠편]

by 워리치

중증 난치성 질환 환자가 되었다. 의료보험에도 난치성 질환으로 등록되었고 회사에도 통보되었다. 이제 보험은 못 드는걸까? 이미 벌어진 일, 그냥 일상이 되었다. 회사에서 중증 질환으로 분류되어 각종 야근 및 주말 출근이 제외되었다. 하지만 업무량은 동일하다. 단지 시간만 줄어든 셈이다. 일과시간 내 일을 끝내려고 휴식시간도 반납했다. 괜한 눈치가 보였다. 24시간 돌아가는 업무이기에 금요일까지 일이 끝나지 않으면 주말출근을 해야했지만 이제 할 수 없다. 만약 주말에 출근하려고 하면 부서장 승인이 필요했는데, 그만 두었다. 서로 불편했다. 하지만 마감은 정해져있었기에, 은근히 불편해 하는 분위기를 감지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도 익숙해졌다.


강직성 척추염 진단을 받은 때가 체리가 1살 때였다. 와이프는 육아휴직중이었으나, 복귀할 날이 멀지 않았다. 1년 6개월간의 외벌이 생활이 드디어 끝이 나려고 했다. 어떻하지? 사람을 구해야 하나? 양가 부모님은 너무 멀고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다. 엘리베이터 옆에 붙어있는 '가사도우미 구함'이라는 출력물이 예사롭지 않게 보였다. 와이프와 육아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마치 어두컴컴한 긴 터널 속에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결국 뒤로뒤로 결정을 미루다가 아빠 육아휴직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와이프가 복귀할 날, 약 2개월 전 부서장과 면담을 신청했다.


"부장님, 면담드릴게 있습니다."

내향적인 나는 말 보다는 메신져가 편했다. 이렇게 메신져를 남기고 조마조마,, 얼마 지나지 않아 부장님이 오시더니 잠깐 나가서 이야기하자고 하신다. 결국 모든 걸 이야기했다. 요약하면, 아이 키워줄 분이 없어서 내가 육아휴직을 써야한다는 이야기였다. 부장님은 한참 듣다가 이야기하신다.


"과장 6년차인데, 부장진급때까지 중요한 시기야, 지금 4월이니깐 11월에 휴직을 쓰면 어떻겠니?"

이해할 수 있었다. 11월에 인사고과가 끝나는 시점이니 올해 고과까지는 신경쓰고 휴직을 가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커리어를 위해서는 충분히 부장님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고, 공감이 갔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실 인사고과에 그리 신경쓰지 않는 편이었다. 인사고과,, 진급을 위한 회사의 평가이다. 인사고과에 대한 관점은 과장진급할 때 깨달은 점이 있었다. 고과는 상대적이고, 내 권한 밖이라는 걸 알았다. 내가 아무리 뛰어난 결과를 남겨도 내 생각과 고과권자의 생각이 다르다. 그래서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었고, 그 이후로 신경쓰지 않았다. 좋던 나쁘던 받아드리는 수 밖에.


"부장님, 신경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이는 부모가 키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지금 아이한테는 제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이기는 싸움이었다. 몇 번 이야기하면서, 아쉬워하는 부장님의 말씀이 있었지만 내 생각을 거두어들이지 않았다. 팀장님 면담이 잡혔다.


진정 아이를 위해 휴직을 쓰는걸까? 아니면 나를 위해 휴직을 쓰는걸까? 헷갈린다. 난치성 질환이기에 업무외 근무를 하지 않는걸까? 아니면 업무외 근무를 하기 싫어서 난치성 질환을 이용하는 걸까?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스스로에게 높은 기준을 두는 성향이다. 그래서 자책을을 많이 한다. 이룰 수 없는 높은 기준을 마련해놓으니 실패하게 되고, 그 실패에 힘들어한다. 그 땐 그랬다. 힘든 업무 때문에, 남의 일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핑계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국 문제는 '나' 안에 있었다. 높은 기준, 그것 때문에 회사생활이 버거웠다.


"팀장님, 육아휴직을 가야합니다." 당시 팀장님은 나를 좋게 보고 계셨다. 그래서 만류하셨지만, 내 마음을 이해하시는 느낌이었다. 결국 12개월을 가려고 했던 육아휴직은 10개월로 단축하는 걸로 결정되었다. 육아보다는 2개월 뒤면 회사업무에서 멀어질 수 있구나.. 그 생각을 하니 가슴속에 가득차 있던 응어리가 내려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팀장님이 있었던 사업장에서 내가 일하던 사업장을 내려오는 셔틀버스 안에서 편하게 잠이 들었다. 기쁘다.


사무실에 소문이 퍼진다. 300여명이 되는 팀에서 첫 번째 아빠 육아휴직이었다. 사실 그 자체도 조금 뿌듯했다. 아빠 육아휴직의 첫 관문을 1등으로 통과한 그런 느낌이랄까? 휴직때까지는 2개월 여 남았지만 휴가 전 날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일에서 빠지면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일을 인수인계하는 식의 업무만 남았다. 육아휴직 가는 날이 다가올수록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 가끔 이 정도의 업무면 그냥 있어도 될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육아를 위한 목적보다, 휴직을 위한 목적이 더 컸음이 증명되었다.


회식을 하고, 그렇게 육아휴직을 했다. 해외여행을 갈 때 비행기를 타려고 인천공항으로 새벽에 차를 타고 갈 때 그 느낌, 나는 이때가 가장 좋았다. 막상 비행기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그 만큼의 감흥이 안 생긴다. 딱 그랬다. 이제 와이프는 출근하고, 나는 2살 아이 옆에 있다. 실전이다. 휴직에 설레임은 사라지고 아이와 나, 어색한 시간이 흘러가면서 결코 쉽지 않았던 육아휴직에 첫 발짝을 내밀었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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