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가요

남들이 다 가는 곳으로 안 가려고요. 아니 사실 저는 못 가요.

by 온음

중고등학교 때는 꽤나 공부를 잘했다. 그리고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때는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외국에서 유학 생활도 했다.

하지만 몸이 다 망가져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귀국을 해야 했다.

그리고는 20대를 다 바쳤던 길에서 벗어나 서른을 맞이했다.

두려웠다. 무서웠다. 어른들의 ‘라떼는 말이야’가 다른 의미로 이해되었다.

그때의 나는 과거의 빛났던 순간들만 추억 팔이 하며 현실의 나를 부정하고 있었다.

지금 당신들이 보고 있는 돈도 못 벌고, 건강도 안 좋은 나는 사실 엄청 대단했던 사람이라고.

하는 건 없었지만 마음은 늘 바빴다.

생업에 종사하고 있지도 않으면서 늘 버릇처럼 했던 말이 있었다.

‘아! 쉬고 싶어.’

내 길이 아닌 것 같았고 이미 출발한 버스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방향으로 계속 달렸다.

다들 그렇게 사니까. 열심히라도 해야 마음이 놓이니까.

다행히 일자리를 찾았다. 많지는 않지만 조금씩 돈을 벌 수 있었다. 일도 제법 내게 잘 맞았다.

하지만 그때까지 마구잡이로 사용했던 몸은 완전히 고장 나 버렸다.

다시 쉬어야 했다. 다시 부모님께 손을 벌려야 했다.

무너졌다. 이번엔 마음도 함께 급격히 무너져 내렸다.

한참을 누워 쉬며 생각했다.

‘나 왜 여기까지 왔지?’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오면 안 될 곳까지 와버린 것이다.

발밑이 무너져가는 것을 보면서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더 이상은 발버둥 칠 힘도 없었다. 그래서 그냥 포기했다.

한참을 떨어졌을까? 아니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것 같은데 포근했다.

가족들이 있었고, 친구들이 있었고,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그들은 거기에 있었는데 내가 믿지 못했던 것이었다.

괜찮다는 그 말이 진심이었는데도 나의 불안함은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었다.

달리지 않기로 했다. 이미 뛸 수도 없을 만큼 망가진 다리였으니.

때론 휠체어를 타고 때론 목발을 짚고 때론 그냥 앉아서 쉬기로 했다.

내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

사실 아직도 열심히 달려 나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럽다. 나도 그러고 싶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것이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기에

내 속도대로 내 길을 걷기로 했다.

‘언젠가 운이 좋으면 차든 비행기든 탈 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래도 나는 지금의 내 모습이 썩 좋다. 더 편하다. 더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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