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물을 마셔도
독사는 독을 만들고
젖소는 우유를 만든다
나는 독사보다는 젖소가 되고 싶다
돌이켜보면 아픈 기억이 참 많다.
태아 때부터 부모님의 다툼으로 유약하고 섬세하게 태어난 내가
초등학교 시절부터 부모님의 다툼 속에서 동생들을 감싸 안고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스스로를 향한 판단을 지나
원치 않는 꿈을 향해 최선을 다해 달리다가
병을 얻고
이제는 도움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도 다행이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많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은 나의 최악보다의 다행이었을 뿐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다면 나의 다행조차도 최악으로 비춰졌을지 모른다.
사실 독사가 되지 않고 젖소가 되려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살 수 있는 방향'으로의 선택을 하다보니 결과값으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원망도 해보고 세상을 미워해도 보고 부모님 탓도 해봤지만 그게 내심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상처의 의미를 알고 있기에 상처를 주는 일이 그 무엇보다 싫었다.
그리고 사회적인 기준에서 많이 미달인 내가 그나마 나아질 수 있는 부분은 '인성'밖에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좋은 사람'은 되고 싶었다. '부자'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래서 참 많이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다.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일생을
그 안에서 취할 것은 취하고 버릴 것은 과감히 버렸다.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래야 했고 그러고 싶었다.
적어도 나는 언젠가 만날 내가 사랑할 사람에게 상처가 되는 사람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더더욱 나의 트라우마를 그대로 마주하고 겪어내고 치유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아!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것을 이렇게 이해하는 구나!'
'이 부분이 아프기에 마음에도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하는 구나!'
그렇게 하나하나 배우가 모니터링을 하듯 내 삶을 돌아봤다.
그리고 이제는 조금은 나아졌다. 아니 많이 나아졌다.
아직도 부족한 부분은 차고 넘치겠지만 그래도 나는 내 스스로가 마음에 든다.
이제 조금은 사랑할 준비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