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s Places>

2017 / dir. Agnes Varda

by Werther

20세기 프랑스, 쏟아지는 누벨 바그의 물결 속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았던 여성 감독으로서 아녜스 바르다는 어쩌면 본인의 생애를 혹은 필모그래피를 정리하는 뉘앙스를 풍기는 장편을 내기에 다다른다. 이 영화의 한국어 번역인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그녀가 사랑했다는 과거형의 표현으로써 그녀의 자취를 밟아가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허나 영화는 그녀의 과거 이야기를 다루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그녀가 행하고 있는 예술 활동에 주목한다.


협업하는 JR과 아녜스 바르다는 탄광촌 여인 혹은 농부, 바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개인들, 더욱 발전하여 하나의 노동자 집단 전체의 사진을 거대하게 프린트하여 그것을 추억한다. 공간이라는 거대함 속에 가려져 있던 개인의 역사에 집중하는 두 예술가는 그 개인을 새로운 거대함의 형태로 조각하여 물리적으로는 공간보다 작을지 몰라도 더욱 주목받을 수 있는 형태로 형상화한다. 그렇게 감상자는 형상화된 거대함을 통해서 공간 내부를 조망할 기회를 거머쥐게 된다. 어쩌면 68혁명에 가담하던 그녀의 정치관, 체제-개인의 모형에서 개인에게 더욱 큰 발언권을 부여하고 싶었던 바람이 가미된 것일지도 모른다. 공간을 가리는 거대한 개인의 모형이라, 퍽 낭만적이다.


개인에의 집중은 염소와 물고기로 이어지는 동물권 담론에도 닿으며, 그렇게 그들만의 혁명을 진행해가는 두 예술가는 역설적으로 루이스 부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 1929>를 말하고, 장-뤽 고다르의 <국외자들, 1964>를 오마주한다. 반복되는 거대 프린팅 작업의 흐름 속에 삽입되는 과거에 대한 조명에 더불어 서사가 끝으로 치달을 때 언급되는 장-뤽 고다르와의 관계는 순탄한 전개에 전환점을 부여한다. 개인적으로 고다르의 얼굴이 영화에 잠시라도 비추어지길 기대했던지라 그를 만나지 못한 바르다의 실망감이 십분 크게 다가왔는데, 집 앞까지 찾아갔던 그녀는 어떠했겠는가. 승승장구하던 영화 속 서사가 마지막의 실패로써 비틀어지는데, 그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안나 카리나와 고다르와의 기억을 반추한다. 새로움과 혁명이라는 언어로 치장한 채 고다르와의 관계라는 과거 누벨 바그 시절의 산물을 기리는 모순적인 행위는 그녀가 지금의 나이로서 느끼는 인생이라는 것이 아닐까. 공간이든 선글라스든 끊임없이 벗기려는 노인 바르다와 끊임없이 벗지 않으려는 청년 JR의 대립이 그 비유를 출중하게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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