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 / dir. 贾樟柯
<임소요>에는 ‘몽고왕주’라는 술의 프로모션을 위한 댄서 모델로서 일하는 여성, 챠오챠오가 등장한다. <소무, 1997>의 메이메이와 마찬가지로 노래 부르는 일에 종사하는데, 그 종착점이 메이메이의 경우에는 개인이었다면, 챠오챠오의 경우에는 대중이다. 극중 누군가의 말을 통해 2001년 경찰이 매춘과의 전쟁을 선포했다는 시대 상황이 나온다. 메이메이의 경우와 같은 암암리에 실행되는 매춘업을 근절하겠다는 의도는, 실제 성매매를 줄이는 역할을 해낼 수 있을 가능성은 차치하고, 여성 인권 신장에 조금의 도움도 되지 못한다. 노래 부름의 종착지가 개인에서 대중으로 확장되었을 뿐, 챠오챠오는 메이메이의 경우와 동일하며, 볼거리로 전락해버린 그녀의 신체는 수많은 사람들의 관음을 견뎌야만 한다. 첫 공연이 끝나고 여러 남성들이 돌아가면서 사진을 찍고 악수하는 행위는 단순히 연예인을 대하는 팬의 태도와는 다르다. 대중의 앞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여성은, 권위자로서의 남성에게는 유희의 대상이고 성적 대상이요, 관음의 대상이다.
그녀의 신체는 주체성을 상실했다. 그녀의 애인으로 등장하는 챠오산은 전형적인 젠더 권력에 있어서의 권위자에 속한다. 그는 챠오챠오가 좋다는 샤오지에게 키스를 해주라고 명령한다.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 없이 신체가 소모되고 성적인 스킨십에 있어 주체성을 갖지 못한다. 샤오지와 계속해서 어울린 사실이 알려진 후 그녀는 폭행당하고, 버스 씬에서는 마음대로 내리지도 못하는데, 이는 여성이 보통의 경우 남성에 비하여 근력이 적다는 신체적인 우열에서 비롯된 상황이다.
그럼에도 챠오챠오는 끝까지 참고 견뎌낸다. 남성들과의 악수와 사진 촬영을 참아내고 끝끝내 돈 얘기를 꺼내고, 버스에서 챠오산에게 폭행당함에도 의상을 챙겨 공연을 뛰는 모습은, 가족을 위해 북경으로 떠난 메이메이를 방불케 한다. 자본은 여성을 창녀가 되도록 밀어 넣고 있다. 반대로, 그렇게 벌어온 돈이기에 그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떵떵거릴 수 있다. 병원에서 간호사에게 그깟 진료비 따위 지불할 수 있다고 분노하고, 달러를 들고 만나달라고 찾아온 샤오지 아빠를 돈이 적다며 타박하는 그녀의 태도는, 본인이 여성으로서 갖는 사회적 지위를 포기하며 생존을 위해 돈을 벌어야만 했던 현실에 대한 분노의 왜곡된 표출이라 할 수 있겠다.
<소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챠오챠오와도 수평적 관계를 이루는 남성이 존재한다. 샤오지와 챠오챠오의 첫 만남은 관객과 대상으로서의 만남이었고 관음의 주체와 대상으로서의 만남이었다. 시각적 대상으로서 챠오챠오를 바라보고 그에 열광했으며 그녀에 대한 태도 또한 강압적인데, 계단앞에서 챠오챠오의 앞길을 막아서며 신체적 우위를 십분 이용하여 그녀에게 접근한다. 챠오챠오에게 남성은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혹은 액세서리 정도로 간주하고 있는 존재다. 이런 주변 환경을, 살아남기 위하여 견뎌내야만 하기에 그녀는 매사 신경질적이고 날이 서있다. 귀찮게 하는 샤오지에게 차에서 키스 한 번을 해줌으로써 성적 만족을 주고 떠나 보내려 한다.
둘은 부모의 그늘이 부재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들이 사회에서 겪는 일련의 금전적 문제들은 부모의 경제력 부재라는 선천적 상황에서부터 기인하기에, 그것을 서로 알게 되는 병원에서의 사건 이후로부터 애틋한 감정이 생겨나는 듯, 식당에서 서로의 생년을 말하며 누나 동생의 관계를 형성해간다. 가부장제 이데올로기 내 권위자로서의 남성과 피권위자로서의 여성의 메커니즘을 벗어나 친구 혹은 남매의 관계를 형성해간다.
이는 연대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나이트클럽 시퀀스에서 총이라는 남근 권력 그리고 자본 권력의 상징물로 대변되는 챠오산, 그 챠오산이라는 강자에 의해 챠오챠오도 샤오지도 폭행당함은 여성인 챠오챠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부산물인 샤오지 또한 사회소외계층 정도로 여길 수 있는 약자로 영화가 설정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들의 연대, 사회적 약자들의 연대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다. 나이트클럽 시퀀스 이후 버스 안에서 챠오챠오가 이전에 담배 연기를 머금고 키스를 건넸던 방식을 이번엔 샤오지가 먼저 건네는데, 가부장제 내의 남성-여성 관계에서의 스킨십이 아닌 수평적 관계에서의 스킨십이다. 이후 모텔에서 옷가지를 다 던져버리고 맨몸으로만, 성적인 시그널 일체 없이 포옹하는 것은 인간을 구성하는 사회적으로 조작된 갖가지 이데올로기들을 벗어 던지고 하나의 인간으로만 당신을 대하겠다는 태도의 발현으로도 보인다. 장자가 말했던 나비가 되고자 했던 그들은, 젠더 권력에 의해, 그리고 자본 권력에 의해 소요(逍遙)에 기댈 권리를 빼앗겼음에, 서로에 대한 수평적 연민을 느낀다.